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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1.12 16:57:4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충주시 이류면의 행정명칭이 2012년 1월 1일부터 '대소원면'(大召院面)으로 공식 변경됐다. 이류면은 그 동안 한자가 '利柳'(이류)로 다름에도 불구, 어감상 '이류'(二類)를 자주 연상시켜 왔다.

따라서 충주시는 지난 2010년 10월의 실태조사, 2011년 3월의 명칭변경추진위 구성 등 그 동안 면이름을 바꾸기 위한 절차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시민공모를 통해 들어온 '국원', '대소원', '다인', '서충주', '중원' 중 인지도다 높은 '대소원면'으로 정하고 주민의견 조사와 시의회 조례 개정을 통해 이를 최종 확정했다.

이로서 이류면이라는 행정명칭은 97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류면이라는 명칭이 처음 생겨난 것은 경술국치(1910) 이후의 일로,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일제는 지난 1914년 이안면에서 '이', 유등면에서 '유' 자를 따서 '이류면'으로 작명했다.

당시 이안면에는 대소원리, 금곡리, 마치리, 성종리, 본리, 노옥리, 흑평리, 불방리, 하검리 등 19개 리가 속해 있었다. 반면 유등면에는 팔봉리, 수주리, 하담리, 월은리, 기동, 매산리, 장승리, 수현리, 산정리, 용두원, 만적리 등 18개 리가 포함돼 있었다.

이류면이 역사서에 처음 언급되는 것은 고려사로, 충주목조에 '익안현'(翼安縣)이라는 행정명이 나온다. 바로 '익안'은 '이안'을 의미했다. 이류면의 바탕이 됐던 이안면과 유등면은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 1898년에 발행된 충청도읍지에도 그 지명이 계속 등장한다.

이류면이 대소원면으로 개명된 데는 과거 원(院)이 있었고, 또 대소리에 장시가 섰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료를 보면 17세기에는 매월 5, 10일에, 1917년부터는 4, 9일에 장이 열려 주위 물산이 집산됐다.

이같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어설픈 작명 때문에 주민들은 그동안 매우 언짢해 왔다. 그러나 이류면 역사에 일류적인 요소도 많았다. 일제 강점기하의 농민들은 더욱 팍팍한 삶을 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농민들 사이에 노동쟁의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923년 이류면 소작인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계약서를 발표했다, 그 목적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문제'였다. 이같은 움직임은 매우 이른 것으로 '일제하사회운동사료집'에 실려 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그 파고는 3달여만에 충주에까지 도달했다. 이에 동조한 대소원보통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백여명의 면민은 1930년 2월 7일(장날) 한인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930년 2월 7일 충북 충주군 이류면 대소리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날 주동생 10명이 경찰에 피검됐다'. -<1930년 2월 12일자>

동아일보는 속보 '충주 청년2명 인치취조중' 제목의 기사에서 '충주 대소리 공립보통학교학생 동요사건의 관계로 동리청년 두명도 인치 취조중이다'(3월 2일자)라고 적었다. 대소원면은 주덕읍과 충주 달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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