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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12.29 16:08:0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지금의 청원군 문의면은 과거에는 현(縣)이 설치돼 있던 곳으로, 그 현은 비교적 늦은 대한제국기까지 존속됐다. 이와 관련,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의현에 현감이 파견됐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문의현에는 현령(縣令)이 파견됐다.

현감과 현령은 다같이 외직(지방직)의 밀단 기관장이나 품계에서 차이가 났다. 현감이 종6품인데 비해 현령을 종5품의 품계를 지녔다. 현령이 1등급 더 높은 셈이다. 조선시대 현감은 태종 임금 때 처음 도입됐다.

'각도의 단부(單府)) 고을을 도호부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현감으로 고치고…'-<태종실록> 현령제도가 언제 도입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현령은 삼국시대에 이어 고려 때도 그 이름이 보인다. 따라서 조선의 현령제도도 이를 계승한 측면이 있다. 다만 현의 규모가 중요도에 있어 현감과 차별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따라 대현에 현령, 소현에 처음에 감무를 두었다가 후에 현감을 두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문의는 규모가 큰 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감이 아닌, 현령이 파견된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문의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본래 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인데, 신라 때에 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옛 이름을 인습(因襲)하여 청주(淸州) 임내로 삼았다가,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고종(高宗) 말년 무오에 위사 공신(衛社功臣) 박희실(朴希實)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문의 현령(文義縣令)으로 승격하였는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지리지>

바로 문의는 땅이 넓어서 현이 된 것이 아닌, 박희실(?~?)이라는 특별인물 때문에 현령이 파견되는 지역이 됐다. 일종의 특별 케이스로, 조선시대 충청도에서는 문의에 유일하게 현령이 파견됐다.

무신인 박희실은 1258년(고종 45) 신의군도령낭장(神義軍都領郞將)으로서 임연(林衍) 등과 함께 최씨무신정권의 최의를 죽이고 정권을 왕에게 되돌려 놓았다. 그는 이때의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에 봉해졌다.

이후 1259년(원종 즉위) 몽고사신 어산(於散)이 개성 환도가 지연됨을 문책하자, "내가 황제를 알현할 때 궁실을 짓는다면 3년이 걸릴 것이라고 하였고, 또 사왕(嗣王·원종)이 몽고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하여 말을 더 못하게 했다고 고려사는 적고 있다.

문의현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또 한명 있다. 바로 장록수(張綠壽·?~1506)의 아버지 장한필이다. 사료 국조문과방목을 보면 그는 예종 1년에 실시한 과거시험에서 병과 4위로 합격했다. 그후 그가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우리고장 '문의현'이다. 그의 이름은 이때 딱 한번 등장한다.

'전교하기를, "장한필은 어느 때의 조사(朝士)인가" 하매, 승지 이자건이 아뢰기를, "장한필은 문과출신으로서 신이 무신년에 경차관으로 충청도에 갔을 때 장한필이 문의 현령이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장한필의 내력을 상고해서 아뢰라" 하였다. 장한필은 숙원 녹수(祿壽)의 아비인 까닭으로 물은 것이다.'-<연산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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