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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와 백두대간 충북의 옛고개 - 괘방령

추풍령만큼 중요한 고개로 인식 "남쪽의 자물쇠"

  • 웹출고시간2011.06.22 15:55:1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괘방령 GPS고도표이다. 주변의 산세를 알 수 있다.

괘방령(掛榜嶺)은 황악산(1,111m)과 가성산(730m)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백두대간 고개로, 행정적으로는 충북 영동 매곡면 어촌리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를 연결하고 있다.

해발고도는 그리 높지 않은 300m 정도로, 현재 제 906호 지방도가 활처럼 휘어진 모습으로 지나가고 있다. 정상을 기준으로 우측이 휘어졌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이용하던 괘방령 부근 지도이다. 추풍령과 그리 멀지 않다.

백두대간 영로(嶺露)인 만큼 역시 물을 나누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사면의 물은 영동 어촌천→초강천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간다. 반면 북쪽사면의 물은 김천 직지천→감천을 경유, 낙동강으로 유입되고 있다.

괘방령은 영동 매곡면에서 남쪽 방향을 향해 달리면 "이곳이 백두대간 고개인가" 할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남쪽사면은 다르다.

주행거리 2㎞ 사이에 해발고도가 120m로 낮아질 정도로 경사도가 다소 가파른 편이다. 따라서 고개맛을 느끼려면 남에서 북쪽 방향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이 좋다.

◇대동여지도 속의 영로

대동여지도(철종 12년·1861)는 경상도 金山(지금의 경북 김천)과 전라도 무주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는 선 위에 괘방령 표시를 해 놓았다. <그림참조>

대동여지도의 괘방령이다. 그러나 괘방령(원안)은 황악산 위로 지나가는 것이 맞다.

이것이 맞다면 당시 경상도 북부(김천) 사람과 전라도 북부(무주) 사람이 우리고장 영동을 경유해 두 지역을 오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조선후기 괘방령이 공로(公路)보다는 상로(商路·혹은 私路) 기능이 강하면서 보부상의 왕래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동여지도보다 약간 앞서 작성된 여지도서(1757~1765)의 내용이 이를 어느정도 입증하고 있다. 다음은 여지도서 황간현 편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추풍령 골짜기를 지나 불끈 일어나서 수락산이 되고 서남쪽으로 달리다가 황악산 중간에 짤룩한 곳이 바로 이 영이다. 금산군으로부터 영동현을 지나가려면 반드시 이 길을 경유해야 하니 사행이나 장사치들이 모여 다녔다.'(秋風嶺過峽後 突起爲水落山 西南走爲黃岳山 中間退缺 爲是嶺 自金山郡 經往永同縣者 必由是嶺故 私行及商賈集走之)

인용문에 등장하는 '사행'(私行)과 '장사치'(商賈)는 보부상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공무 수행시 거의 관로(혹은 공로)를 이용했다. 관찰사가 관내 목·군·현을 순찰할 경우 현(縣)과 현을 연결하는 관로를 이용했다.

이에 비해 보부상들은 관로 이용을 가급적 꺼렸다. 관(官)의 간섭이나 '어떤 요구'를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관로 옆에 간로(間路·샛길)나 첩로(捷路·지름길) 등을 별도로 개척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멀지 않은 곳의 추풍령이 관로 역할을 했고, 괘방령은 장돌뱅이들이 개척하고 주로 이용했던 백두대간 영로였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金正浩·?~ 1866)는 괘방령 위치를 부정확하게 그려놓았다. 괘방령은 백두대간 줄기를 남에서 북으로 따라갈 경우 황악산 북쪽에 위치하는 것이 맞다.

지금의 국립지리원 지도도 북쪽방향의 그림을 삼도봉-우두령-황악산-괘방령-추풍령 순으로 그리고 있다.

김정호는 이것과는 다른 삼도봉-우두령-괘방령-황악산-추풍령 순으로 그렸다. 황악산과 괘방령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이는 김정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지리정보를 취합,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 역사속의 사건

괘방령을 하늘에서 내려단 본 그림이다. 십자가로 만나는 부분이 경북과의 경계이다.

괘방령 정상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의병장 박이룡(朴以龍·1533~?)의 위패를 모신 황의사(黃衣祀)가 길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박이룡은 충주가 본관으로, 임진왜란 때 괘방령을 근거지로 일대 전투에서 왜군을 섬멸했다. 왜군들은 한양 진격 때는 추풍령을 넘었지만 퇴각 때는 괘방령을 이용하다 박이룡 장군 등과 마주쳤다.

학계에서는 이를 지례전투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 박이룡은 황간 의병장 자격으로 지례전투에 참가했다. 그의 위폐를 모신 사당은 지난 1997년에 건립됐다.

이같은 경험탓인지 괘방령은 추풍령 못지 않게 국방의 요처로 인식됐다. 국역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황간 지칭)남쪽 10리쯤 되는 곳에 괘방령(掛榜嶺)이 있어 추풍령과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산과 계곡이 험준하여 하나의 요새라 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그곳의 평지에다가 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여 중요한 통로에서 막고 있는다면 남문(南門)이 자물쇠를 채운 것과 같이 든든하여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고종 15년 7월 19일자>

괘방령에서 멀지 않은 황악산 남쪽 사면에 고찰 직지사가 위치하고 있다.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출가를 했고, 세납 서른 나이에 주지를 맡기도 했다. 사찰내 사명각에는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직지사는 전각의 하나로 명부전도 갖고 있다. 이곳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위패가 봉안돼 있기도 하다. 박 전대통령은 생전에 사명각 현판 글씨를 쓰는 등 직지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괘방령 산장 앞에 서있는 표지석으로, 종주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주변의 명소와 콘텐츠 개발

남쪽사면의 직지사를 제외하면 괘방령 주변에는 명소가 많지 않은 편이다. 영축사라는 작은 암자가 눈에 띄고, 영로 초입에는 강진 저수지가 지도 위에 그려져 있다.

고개정상의 우측으로는 매일유업 관련 시설도 보이나 이는 목장이 아닌 공장이다. 전회 소개한 우두령 목장의 우유를 이곳에서 가공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사람에게 어떤 일을 알리기 위하여, 길거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을 '방'(榜)이라고 불렀다.

괘방령도 같은 한자를 쓰면서 과거를 보러가는 영남 유생들이 이 고개를 크게 선호한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이것과 고개정상 충북사면 쪽에 남아 있는 주막 흔적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괘방령 정상은 백두대간 남북 종주자들의 쉼터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괘방령 정상에는 흔치 않은 고갯길 산장도 위치하고 있다. 이런 그림을 삼위일체 식으로 조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걷기+주막+산문화의 만남이다.

/ 조혁연 대기자
자료도움: 영동군문화원, 산림청,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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