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충주목 출신 유수원(柳壽垣·1694-1755)의 주장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초등교육 기회 균등론'이다. 조선의 교육은 서원과 서당이 중심이었지만 구한말이 되면 그 명칭이 달라진다. 변천사를 살펴보면 1895년 '소학교', 1906년 '보통학교', 1941년 '국민학교' 등의 명칭이 등장했다. 일제는 '충량한 일본국의 신민(臣民), 곧 국민(國民)'을 만들려는 교육적 목적으로 1941년 3월 '보통학교'를 '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이 명칭은 반세기 넘게 사용되다가 1996년 3월 1일부터 지금의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18세기 중반까지 생존했던 그가 초등학교라는 명칭을 구사했을리는 없다. 그는 '나이 4-5세', '15세 이전' 등 학령(學齡)의 개념을 구사했다. 그의 초등교육 기회 균등론은 중국과의 비교에서 출발한다. 유수원은 중국의 교육관습 가운데 공부를 하다가 그쪽에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농(農)ㆍ상(商)ㆍ공(工)으로 전환하는 것을 무척 높이 샀다. 한 마디로 모두가 선비가 되려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아들의 나이 4~5세가 되면 곧 글방 선생에게 나
[충북일보] 한국의 자본주의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라는 물음은 지금도 논쟁이 되고 있다. 일부 사학자는 구한말에 자본주의 맹아(싹)가 움트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내지 자본주의 내적 발전론이다. 반면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군은 일제가 자본주의를 이식했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그러나 충주목 출신이면서 단양군수를 지낸 유수원의 《우서》(迂書) 일고나면, 적어도 구한말의 한반도에서 자본주의의 '새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수원은 점포 자본주의라는 매우 독특한 이론을 주장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점포를 육성·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이다. 그는 《우서》에서 '마판자(馬販子)와 배부상(背負商)들이 하루가 다하도록 분주히 다녀도 별로 팔지 못하고, 서울 입전(立廛)의 상인들이 눈이 빠지도록 손님을 기다려도 팔을 내젓고 지나가는 사람이 10이면 8~9나 되니, 이로써 보아 비록 공상(工商)을 성행시키고자 해도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우서 제1권)라고 자문했다. 인용문의 마판자는 말짐장수, 배부상은 등짐장수를 의미하고 있다. 그는 영세 규모로는 상업을 번창시킬 수 없다고 봤다. 나아가 그는 점사(점포)가 있어야
유수원이 언제부터 귓병을 앓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의 나일 30대 중반 무렵일 가능성이 높다. 영조는 무신란(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후 본격적인 탕평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조는 소론의 경세가인 유수원을 경상도사, 태천(지금의 평북)현감 등에 잇따라 임명했다. 그러나 유수원은 귓병과 노모 숙환을 이유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청각 상실로 인한 실의를 《우서》 저술 등으로 극복했다. 《우서》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유수원의 또 다른 저서로 《관제서승도설》(官制序陞圖說)이 있다. 관료 선발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 책은 1741년(영조 17)에 쓰여졌다. 특히 그 내용이 탕평책과 관련돼 있으면서 영조의 즉각적인 주목을 받았다. 영조는 유수원을 경연(經筵) 에 참석하게 했다. 경연은 임금이 신하와 더불어 유교 경전이나 국정 현안을 논의하던 제도를 일컫는다. 영조와 유수원 사이에 대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의 유수원은 청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임금이 말을 하면 배석한 신하가 한자로 써서 유수원에게 보이고, 유수원 역시 답변을 붓으로 한자를 써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금이 유수원을 소견하였다. 유수원은 유봉휘(柳鳳輝)
[충북일보] 조선의 실학파는 대략 농업을 중시하는 중농학파와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학파로 대별된다. 유형원·이익·정약용 등은 중농학파, 유수원·박지원·박제가·홍대용 등은 중상학파로 분류된다. 중상학파는 달리 이용후생학파 또는 북학파라고 불렀다. 이용후생은 중국 고문헌 《상서》에 나오는 표현으로 풍요로운 경제와 행복한 의·식·주 생활을 뜻하고 있다. 중상학파와 이용후생학파는 달리 북학파라고 칭했다. 북학파의 북학은 청나라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알기 쉬우나 그렇지는 않다. 『맹자』의「등문공장구(騰文公章句)」에서 유래했다. 남쪽의 낮은 문명 지역에 살던 초나라 사람인 진량(陳良)이 북쪽의 선진 문명을 배웠다는 의미에서 '북학'(北學)이란 표현이 생겨났다. 박제가가 자신의 실학서를 《북학의》(北學議·1778)로 이름지은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 박제가의 《북학의》와 유수원의 《우서》는 모두 조선후기 중상주의를 대표하는 실학서이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박제가의 《북학의》는 대륙을 방문하고 와서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롤모델로 했다. 이에 비해 유수원의 《우서》는 스스로의 탐구와 직관을 바탕으로 서술했으면서도 한층 진보적인 상업이론을 담고 있다. 유수원이 《우서》
[충북일보] 조선시대 사간원 소속의 정언(正言)은 정6품으로 관품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그러나 임금에게 간쟁과 봉박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로, 권력은 막강했다. 따라서 정언으로 벼슬을 시작하면 고속 승진이 보장되면서 관료들 사이에 엘리트 코스로 인식됐다. 간쟁은 임금의 옳지 못한 처사나 잘못에 대해 직언하는 행위, 봉박은 임금의 잘못된 지시를 되돌려 공박하는 것을 일컫는다. 뿐만 아니라 정언은 임금과 국정을 논하는 자리인 경연에 참여했고, 인사문제와 법률 제정에도 관여했다. 유수원이 문과에 급제하고 처음 나간 벼슬자리가 정언이다. 그는 정언이 된지 얼마 안 되어 당시 영의정이자 소론의 거두인 조태구(趙泰耉)를 공격했다. "조태채(趙泰采)가 복법(伏法)될 때는 감히 천 리 길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짐바리에 가득하게 부의물을 보냈으니, 만약 일분이라도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을 차마 했겠습니까. 결단코 조적(朝籍)에 둘 수 없으니, 빨리 사판(仕版)에서 삭제하는 법을 베풀게 하소서."- 조태채라는 인물이 죄를 지어 사형(복법)을 당했는데, 그런 범법자에게 어찌 부조를 짐바리 가득히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조태구와 조태채는 사촌간이다. '사
[충북일보] 오늘부터 농암(聾菴) 유수원(柳壽垣·1694-1755)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주제이지만 1728년 무신란(이인좌의 난)과 정치·사회적인 흐름이 연결돼 있다. 그는 조선후기 이용후생(利用厚生) 학파의 선구적 인물로, 《우서》(迂書)라는 실학서를 남겼다. 유수원은 호를 '농암', 즉 귀머거리라고 지을 정도로 신체적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충추 출생, 단양·문의현감 역임 등 우리고장과 큰 인연을 지니고 있으나, 지역 차원의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수원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남로(南老)이다. 그는 형조정랑을 지낸 유성오(柳誠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간 유상재(柳尙載)이고, 아버지는 유봉정(柳鳳延)이며, 어머니는 김징의 딸이다. 이처럼 유수원家는 명문사족의 DNA를 지니고 있었으나, 문제는 당색(黨色)이 소론 그 가운데서도 준론(峻論)이라는데 있었다. 서인은 숙종대에 이르러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노장파인 송시열의 노론과 소장파인 소론으로 분화됐다. 이후 소론은 다시 영조에 강경했던 준론(혹은 준소)과 완론(완소)으로 나뉘었다. 유수원은 충청도 충주목에서 유봉정의 맏아들로 출생했으나 유년기는 한양에
[충북일보] 영조 39년(1763) 이번에는 내륙이 아닌 섬 제주도에서 이른바 '심내복(沈來復) 역모사건'이 발각됐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심내복, 조영득(趙榮得), 유동혼(柳東渾), 이익좌(李翼佐), 윤몽정(尹夢鼎), 신정관(申正觀) 등 십 수 명이 결탁, 반역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심내복은 과거 답안지에 역모의 글을 적어낸 심정연의 조카이고, 경술년 사건으로 흑산도에 유배된 심익년의 아들이다. 경술년 사건은 무신란 사건과 관련에 그 잔존세력이 또 다시 국문을 받고 절도 등으로 유배된 사건으로 당시 아버지 심익년은 흑산도로, 아들 심내복은 제주도로 유배됐다. 심문 과정에서 "군대를 모집하여 장사치로 위장시켜 바다를 건너가서 먼저 호남의 고을을 습격하고 거기에서 군기와 군량을 취득한 다음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묘사(廟社)를 범하여 불을 지르고 귀양가 있는 종신 이훈(李壎)을 추대키로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서두에 거론한 인물은 대부분 연좌죄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를 온 인물들로, 이중에는 신정관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그는 1728년 무시란 때 이인좌에 의해 충청병사에 임면된 신천영(申天永)의 조카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연불만지율'(年不滿之律)이라는 법이
[충북일보] '과거시험 답안지에 정답대신 역모의 글을 써내다.' 이 희대의 사건은 나주괘서 사건이 정리된 영조 31년(1755)에 발생했다. 그것도 임금 영조가 친림하여 과거를 보는 가운데 발생, 당시 조정에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줬다. "임금이 바야흐로 친림하여 시사(試士)하는데 한 시권(試券)이 처음에는 과부(科賦)를 짓는 것처럼 하다가 그 아래 몇 폭에다가는 파리 머리만한 작은 글씨를 썼는데 모두 난언패설이었다. 고관이 앞으로 나와 그 글을 진달하니, 임금이 열어 보기를 명하였는데…."- 인용문의 시권은 과거시험 답안지를 의미하고 있다. 이날 과거에서는 시권 뿐만 아니라 역모의 내용을 적은 상변서(上變書)도 함께 발견됐고, 이 내용을 본 영조는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또 위소(衛所)의 하리(下吏)가 시권을 축(軸)으로 만들 때 과제(科題)를 쓰지 않은 한 종이를 보았는데 첫 행에 '상변서(上變書)'라 쓰여 있었으나 그의 이름은 없었다.(…) 임금이 다 보지 못하고 상을 치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한과 분노의 감정이 뒤범벅이 된 영조는 "종이 가득히 장황하게 쓴 것이 음참(陰慘)하기가 헤아릴 수 없어 비단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충북일보] 무신란(영조 4년·1728)은 일단락 됐으나 여진은 계속 됐다. 영조 31년(1755) 전라도 나주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1월 20일 나주객사 망화루(望華樓)의 동쪽 두번째 기둥에 흉서가 내걸렸다. 괘서에는 "백성들은 곤궁한데 더욱 침학을 당하고 있으니 구제하고자 한다. 군사를 움직일 것이니 백성들은 놀라지 말라"는 내용이 익명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전라감영은 윤지(尹志·1688∼1755)라는 인물을 괘서의 범인으로 자연스레 지목했다. 마을 사람들이 윤지의 짓이라고 수군거렸고, 가노(家奴)들 또한 자기 상전의 짓이라고 진술했다. 윤지는 소론의 가문으로 낙인찍혀 제주에서 10년, 나주에서 20년 등 당시 3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하던 인물이었다. 소론의 영수였던 그의 부친 윤취상(就商·?-1725)은 영조가 즉위하면서 김일경 당여(무리)로 지목돼 국문을 받고 처형됐다, 그는 유배생활이 길어지자 점술사 정수헌(丁壽憲)이라는 인물을 가까이 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는 시기를 예상해 보는 점을 자주 쳤다. 《추안급국안》이라는 당시 수사 기록에 의하면, 술사 정수헌은 윤지가 '田'자를 고르자 "'口' 자가 '十'자를 머금고 있으니 10년 동안 헛
분무원종공신이 선전된지 1년 후 영조 임금에게는 《서정록》이라는 책자가 올려졌다. 이 책자는 분무원종공신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추가로 공신에 포함시키는 명담을 담고 있다. 공신 제외자들의 불만을 달래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우의정 이태좌(李台佐)는 관료로서 불만을 쏟아냈다. "조정에서 공을 논하여 상(賞)을 행한 것이 이미 충분한데도 군교(軍校)들이 모두들 별단자(別單子)에 들지 못한 것을 가지고 원망하고 있으니, 상을 바라는 것이 너무 지나칩니다."- 영조는 이에 대해 "전례에 따라 만들어 군정(軍情)을 위로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로 《서정록》을 작성하도록 하명했다. 그 결과 무신란의 본산지인 청주지역 등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공신록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또 다시 크게 증가했다. 그 유형은 ①현재의 관품에서 승진하는 경우(가자·加資), ②노비 등 천민의 위치에서 면천되는 경우, ③국가부역을 일정기간 면제받는 경우, ④중인에서 양반이 되는 경우 등으로 분류됐다. ①과 관련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청주(淸州)의 토포 군관 고윤창(高允昌)에게는 가자하며, 군뢰 이왕산(李往山)에게는 미포를 제급하라."-. 인용문 가운데 '토포'는
공신은 국가에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리는 칭호로, 정공신(正功臣)과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구분된다, 정공신은 대개 3등으로 나뉘고, 그 수는 적으면 5~6인 많으면 100여명까지 이르렀다. 정공신은 등급에 따라 공신에게 내려지는 특전·토지·노비 등의 지급 정도가 차이가 있었다. 이에 비해 원종공신은 그 공이 정공신에 미치지 못하나 다소의 공이 있는 자들을 역시 3등급으로 나눠 녹훈하였고 그 수는 적으면 9백여명, 많으면 최대 9천여명에 이르렀다. 조선 태조(이성계) 집권기에 발생한 개국원종공신의 경우 그 수가 무려 1천2백여명에 이르렀고 1등급에게는 토지 30결과 노비 3口가 주어졌다. 전통시대에는 노비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名이 아닌 口로 호칭했다. 이밖에 개국원종공신 2등급에게는 토지 15결, 3등급에게는 물질적인 혜택은 없고 특전만 내려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원종공신에 대한 토지와 노비의 지급은 없어지고 특전만 3등급으로 나누어 내려졌다. 영조 4년(1728) 무신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에게는 분무공신(奮武功臣)의 공신호가 주어졌다. 분무공신 1등에 오명항(吳命恒·1673~1728), 2등에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
"전전하여서 문의의 茂陵亭에 갔었는데, 또한 李愼의 집 앞뒷산에 피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았 습니다. 內外 松谷의 5, 6 촌락이 소요스러웠던 일이 과연 있었습니다. 兵營에서 저를 체포한 것은 제가 이 말을 전한 때문인 것 같은데 이는 너무나 원통한 일입니다. 저는 박취림에게서 들었습니 다만, 言根은 12인을 거쳤습니다."-인용문은 문의 괘서사건 혐의자의 한 명인 우규장이 신문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그는 향리 출신의 사족으로 '松谷의 5, 6 촌락이 소요스러웠다'고 밝혔다. 그의 공초에서 보듯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됐으로 최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략 두 가지가 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첫째, 저항을 준비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조직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괘서 후에 구체적으로 저항을 이끌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둘째, 자금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거사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군사적 뒷받침이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지서는 20년 전에 청주에서 일어난 무신란(이인좌의 난)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고, 또 이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는 '무신란'이라는 명칭을 두 번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지서가 말하기를, '
[충북일보] 청주국제공항에 조류 대응을 위한 드론이 투입된다. 이와함께 향후 사망자 발생 사고를 일으킨 항공사에는 1년간 운수권(항공기 운항권)을 배분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30일 공항시설, 항공사 정비·운항 체계, 항공 안전 감독 강화 등 항공 안전 전반에 대한 개선 대책인 '항공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공항 안전성 증대를 위해 충돌 시 큰 피해로 이어지는 둔덕 형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을 제거하고, 경량 철골구조로 전면 교체한다. 종단안전구역 권고기준(240m)에 미달되는 김해, 무안, 원주, 여수, 울산, 포항경주, 사천 등 7개 공항 시설은 부지확장 또는 활주로 시단 조정을 통해 종단안전구역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연장이 불가한 경우 EMAS도입을 통해 활주로 안전을 확보한다. 조류 충돌 재발 방지에도 나선다. 무안공항에 조류탐지레이더를 시범설치해 레이더 운용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전·김포·제주 등 민간 공항은 이번 달 부터 순차적으로 설계 등을 거쳐 2026년 도입을 추진한다. 청주공항을 비롯한 민·군 겸용공항은 군 등 관계기관과 기술적 고려사항, 추진일정 등 협의를 거쳐 하반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충북 지역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각 정당은 '대선 모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가 후보로 확정되면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 본격 착수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본선 조직을 구성하는 등 전열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29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충북도당은 다음 달 초 선대위 구성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충북선대위는 도당을 중심으로 전·현직 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폭넓게 아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광희(청주 서원) 충북도당위원장과 도내 현역 국회의원 등이 공동으로 선대위원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현역 중 이연희(청주 흥덕) 국회의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 총괄본부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도당은 5월 황금연휴가 지난 뒤 선대위 첫 회의를 발대식을 겸해 열기로 했다. 공직선거법에 선거일 전 30일부터 선거일까지 당원 집회 등을 열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선대위 구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다음 달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만큼 인선
[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