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총애'(寵愛)를 '남달리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총애 중 임금이 특별히 총애하는 것을 '은권'(恩眷)이라고 부른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김세적이 비록 무재는 뛰어나다 하더라도 기간(器幹)이 없고 또 조행(操行)이 없었다. 그러나 은권이 매우 높아서 영광이 그 어버이에게 미쳤다" 하였다.'- 기간과 조행 역시 지금의 거의 사용하지 않는 조선시대식 표현이다. 전자는 재기와 도량을, 후자는 몸가짐 즉 품행을 일컫고 있다. 이밖에 은권과 비슷한 표현으로 '권우'(眷遇)라는 단어도 조선시대에 유통됐다. 두 단어는 큰 차이는 없지만, '권우'에는 행동의 의미가 보다 강조된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임금이 김세적이 장재(將才)가 있다 하여 가려서 승지에 발탁시키고 배우지 못했다 하여 학문을 배우게 하였고, 이제 또 은혜가 그 부모에게 미치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그 권우가 지극하였다.'- 인용문에 김세적(金世勣·?∼1490)이라는 인물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은권', '권우'라는 표현이 잇따라 등장한 것으로 봐 성종 임금이 김세적을 무척 총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관은 그런 모습에 무척 질투를 느꼈는지 '무재
짙은 안개가 드리운 호숫가 풍경은 아스라이 몽환적이다. 그 풍경에 취해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 쉽상이다. '이 길이 틀리네 저 길이 맞네' 분분함을 네비 탓 안개 탓으로 돌리는 타박조차도 즐거운 '레저토피아 탐사단'의 하루는 신상동(바깥아감) 버스 정류장 앞에서 시작된다. 호숫가에 머물던 찬바람이 와락 덤빈다. 춥다. 하나같이 걸음들이 종종 걸음이다. '조선 한방오리집' 마당을 끼고 도는 길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다. 아스라이 잡히는 호수너머 풍경이 바다같다. 턱밑까지 차오른 물수위는 가득찬 포만감을 노래한다. 호숫가를 따라 40여분 만에 흥진마을 앞. 지독한 가뭄으로 타는 듯한 갈증의 속내를 드러냈던 봄풍경 속 광활한 초지는 물속에 잠겨있다. 물길을 가르듯 줄을 긋던 제방길도 물 속에 잠겨있다. 초원 위를 걷던 제방길을 걷던 우리들의 흔적도 물 속에 잠겨있다. 물속에 잠겨버린 길을 대신할 길을 찾아야 했다. (구)고속도로의 우직한 가리마가 물 위를 가른다. 이용하는 차량들의 수는 적지만 한가하기에 차지하는 질주본능은 제맘대로다. 갓길을 이용하여 조심스레 건너야 한다. (구)고속도로의 다리끝에서 신선바위 산사면을 따라 이어진 우회길
성과 관련된 범죄로는 간통죄도 있다. 간통죄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을 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다. 강간죄와 간통죄 모두 형법의 영역이지만 간통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친고죄인 셈이다. 조선시대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간통녀로는 어을우동(於乙宇同·? ~ 1480)이 있다. '어우동'으로 많이 알려진 여인으로, 성종실록에 총 27번 언급된다. 어을우동 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섹스 스캔들 메이커가 있다. 바로 어을우동보다 조금 앞선 시기를 산 유감동(兪甘同)이다. 그녀의 생몰년 미상으로 돼 있다. 다만 세종대에 남자 40여 명과 간통했고, 이로 인해 처벌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종실록에 관련 기사가 정확히 17번 등장한다. 유감동의 남편은 평강현감 최중기(崔仲基)였다. 그가 무안군수로 부임할 때 유감동을 현지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유감동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서울로 올라와 방종한 생활을 하게 되고, 이에 최중기가 그녀를 버린 것으로 돼 있다. "본 남편은 지금 평강현감 최중기(崔仲基)입니다. 중기가 무안 군수가 되었을 때에 거느리고 가서 부임했는데, 이 여자가 병을 핑계하고 먼저 서울에 와서는 음란한 행실을 마구하므로 중기가 이를 버렸습니
조선시대에는 강간범을 명나라 형법인 대명률(大明律)에 의해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특히 10대 여아를 강간한 경우 교수형에 처했다. 교수형과 참형은 같은 사형이지만 신체가 훼손되는 참형을 보다 무겁게 여겼다. '형조에서 계하기를. "평해(平海)에 있는 죄수 김잉읍화(金仍邑火)는 여덟 살 난 계집아이를 강간했사오니, 율(律)이 교형(絞刑)에 해당합니다"하니,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같은 강간범이면서 참형보다도 더 혹독하게 처벌되는 경우가 있었다. 남자종인 '노'(奴)가 상전의 아내를 강강한 경우로, 이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인 능치처참형에 처해졌다. 아래 인용문에 등장하는 '내은이'는 양민의 딸이다. '내은이는 굳세게 항거하다가 5경(五更)에 이르러 힘이 빠지니, 이에 박질이 그의 손발을 묶고 강간(强姦)하였다. 내은이가 도망하여 한성부에 호소하였다. 한성부에서 실구지 형제와 박질을 잡아다가 국문하니 사실대로 토설(吐說)하였다. 의정부에 보고하여 계문하니, 율(律)에 의하여 능지처참하였다.'- 지금까지 거론한 인물은 남자종이거나 양민남자다. 이와 달리 양반 남자가 강간범이 되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도 궁금한 대목이다. 답을 미리 말하면 태반이 유권무죄(有權無罪
"천천히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가세요. 그래야 뒤에 따라오는 분들도 쉬엄쉬엄 올라오죠."산행을 할 때면 '완행'에 목적을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충북일보가 주관하는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참가자들은 완행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밟는 땅, 마시는 공기,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을 모두 가슴 속 깊이 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풍경만 감상하는 것에 그치치 않는다.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클린 마운틴'이란 아카데미의 의미도 살린다.지난 17일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대청호 둘레길 12구간을 탐사한 20여명의 참가자들은 영하 8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렸다.누구도 앞서 가려 하지 않았다. 둘레길에 펼쳐진 눈 덮힌 산과 어느 때보다도 청량한 호수의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대청호 둘레길 12구간은 군북면 대정리 방아실 마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국사봉을 오른 뒤 어부동으로 하산 도로를 따라 회남대교와 남대문교를 건너 보은군 회남면에 이르는 12.5㎞의 트래킹 코스다. 눈 덮힌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코스를 반대로 바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명관이었다. 국사봉 정상에 올라 잠시 우측 산능을 내려서면 벼랑 끝에 선 탁트인 전
지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때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92년 개성 왕건릉에서 출토된 고려 태조상이었다. 조각상은 발견 초기에는 단순 청동불상으로 알려졌으나 그후 고려 태조의 동상으로 확인됐다. 문헌추적 결과, 태조상은 951년 제작돼 개성 봉은사에 봉안됐고 이후 고려 전시기에 걸쳐 국가의례 때마다 주된 숭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성리학 제례법과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1429년(세종 11) 개성 왕건릉 옆에 매장됐다. 당시 서울에 왔던 태조상은 머리에는 통천관(通天冠)을 썼고 몸체는 벌거벗은 나상(裸像)이었다. 이밖에 남근(男根)이 2㎝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축소된 모습이었다. 따라서 일부 신문은 이를 '번데기'로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노명호 교수는 "왕건상이 앉은키는 84.7cm로 성인 남자와 비슷한 크기인 데 반해 남근은 유아의 것처럼 표현했다"며 "이는 색욕을 멀리하는 불교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왕건 조각상에 대한 언급은 조선시대 세종실록에도 등장한다. 이와 관련, 우리지역 청원 문의도 언급돼 있어 지역적인 관심을 크게
은밀한 숲길을 따라가던 자동차는 개심사 입구에서 멎는다. 단박에 뛰어오른 듯한 높이감에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판암동 큰길에서 한지병이를 거쳐 개심사까지 걸어오려면 소요될 50여분의 시간을 날로 먹는 기분이라니... 어짜피 오르기 위해 찾아온 산이건만 예기치않은 꼼수로 생긴 공짜 같은 시간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지 다들 싱글벙글이다. 그렇지만 한지병이에서 개심사 이르는 숲길 또한 작은 수고로움과는 견줄 수 없는 걷기 좋은 청정 숲길이다. 털털거리며 스쳐가는 차창밖 풍경에 두리번거리다 곧추선 듯 차오른 길의 끝이 개심사 입구다. 30도, 45도는 될까· 눈어림으로 짐작되는 가파름은 그보다 더한 것 같다. 어찌나 길이 가파른지 멈추어 선 차도 서있는 사람도 지탱하기 힘든 쏠림으로 취한 듯 비틀거린다. 개심사 입구에서 몇걸음 되짚어 내려선 뒤 길가에 서있는 안내 팻말을 따라 식장산을 오른다. 산길도 숲도 좋다. 안내 팻말과 계단, 쉼터등 편의시설도 친절하다. 도심 속에 위치한 산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체력단련실이요 공원이요 산책로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사람들의 고물거림이 헐렁해진 숲 작은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한달음에 오른 능선 쉼터에서 잠시 숨고른
전회에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대가 끊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손자 '숙길'(淑吉)을 봤고, 이후 점쟁이의 말에 따라 친모가 아닌 유모(乳母)에게 젖을 물리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양아록은 시간 흐름에 따라 발육과 유년기 학습 과정도 시형식을 빌려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始立', 즉 '일어서기를 시작하며'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두 손으로 다른 물건 잡고 / 양다리에 의지해 쪼그리고 앉는다 / 한 달을 이와 같이 하더니 / 점점 제 스스로 오금을 펴고 일어선다 / 동지가 되어 양의 기운이 다시 생기려 하니 / 이날에 맞추어 네가 일어서는구나.'- 앞서 언급한대로 숙길이에 대한 할아버지 이문건의 기대는 일반의 상상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이문건은 숙길이가 유교적 소양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조선의 문신답게 공자를 이상형으로 삼았다. '너의 조급하고 경망한 마을을 제거하고 / 성현의 발자취를 쫓아야지 / 마음에 잘 간진해주고 상실하지 않는다면 / 이것은 孔子를 잘 배우는 것이다 / 네 자신에게 잘 머무르게 하면 어찌 조상의 복을 받을른지 알겠는가 / 亨達은 정말 운명에 달려있고 / 富貴는 얻기가 어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묵재일기 외에 양아록(養兒錄)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양아록은 글자 그대로 '아이 양육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이상주 박사가 발굴·소개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내용은 할아버지 이문건이 손자 '숙길'(淑吉)의 출생~16살 기간의 성장과정, 질병내용, 공부시키는 과정 등을 한시 형태로 적었다. 전체 분량은 60여쪽으로 이중 성장과정과 질병·사고와 관련된 것이 각 16건, 교육에 관한 것이 8건 등이다. 보통의 경우 육아일기는 부모가 아이를 대상으로 쓴다. 그러나 양아록은 특이하게도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상으로 썼다. 가정사의 굴곡이 많았다. 이문건은 충북 괴산 태생 안동김씨 부인(돈이)과 사이에 6명의 자녀를 얻었다. 그러나 '온'이라는 아들과 '순정'이라는 딸만 성인으로 성장하고 나머지는 일찍 병으로 잃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 '온'도 이문건 나이 64살 때 '숙길'을 포함해 1남3녀를 남긴 채 병사했다. 이문건은 가문의 대가 끊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고, 때문에 하나 남은 친손자 '숙길'에게 집착하게 된다. 참고로 숙길의 셋째 누이는 동래부사 순절도로 유명한 송상현의 부인이 된다. 이문건은 손자 '숙길'이 태어나
전회에 이문건이 유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괴산에 집을 신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괴산 새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상주목사와 경상도관찰사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문건은 전직 승정원 도승지 직함도 갖고 있었다. 때문에 관향 성주지역에서 나름의 예우를 받고 있었다. 묵재일기에는 성주 사족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음은 1562년 9월 27일자 일기 내용이다. '내가 손자를 데리고 유향소에 가자, 참석한 사람이 30명이었다. 이유가 통문을 돌려 물품을 거두어서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은 것이다. 나를 대접하는 것을 명분삼아 모였다.'- 이문건 부의 원천은 노비와 전답이었다. 그는 많을 때는 남자종 83명, 여자종 50명 등 총 130여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물론 이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신공노비'였고 때문에 괴산서 멀리 떨어진 충주, 보은 등에도 거주했다. '신공노비'는 주인집과 떨어져 사는 대신 매년 추수한 곡식의 절반 정도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를 말한다. 이문건은 신공노비가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기르던 소를 끌어오기도 했다. 그렇다해도 노비 130여명은 매우 많은 규모다. 이문건도 당시 여느 양
전회에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유배지 경상도 성주에서 노비들을 원격조종, 처가가 있는 우리고장 괴산에 집을 신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1551년 7월 15일자: 서동이 괴산에서 돌아왔다. 목재를 계곡 근처로 끌어다 놓았으나 계곡의 물이 없어서 내려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듬해 4월 25일자: 오늘 괴산에서 기둥을 세운다고 하는데, 비가 오니 일이 좋지 않겠다.8월 12일: 집을 덮는 철장물을 가져갔다.'- 일기를 보면 26칸 기와집으로, 규모가 꽤나 큰 편이었다. 새로 지은 괴산집이 지금의 어느곳에 위치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지금의 문광면 일대에 위치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문건이 귀양을 가자 부인 안동김씨(김돈이)가 한양에서 친정집이 있는 괴산 문광면으로 내려와 이문건가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또 조카 이휘를 포함한 성주이씨 묘역이 문광면 유평터널 부근 야산에 존재하고 있다. 이문건은 성주 유배생활 중에 3번이나 괴산을 찾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번째가 바로 새 집이 완공된 후였다. 그는 1552년 5월 22일부터 7일 동안 괴산에 머물다 성주로 돌아간다. 이밖에 그는 집수리를 할 때(1561)와 아들 장례를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조선 성종과 명종 사이를 산 인물로 호는 묵재, 본관은 경상도 성주다. 그는 그의 호를 딴 '묵재일기'를 32년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학계에서는 조선전기 양반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3종류의 개인일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문건의 묵재일기, 유희춘의 미암일기,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그것이다. 이들 일기의 행간을 하나하나 살피면 당시 양반들의 사유체계와 부축척 방식, 그리고 가정사의 시시콜콜한 사연을 손금보 듯 알 수 있다. 그는 73살 생애에 두 번의 유배생활을 경험한다. 그는 영남사림의 거두인 조광조 제자였다. 1519년 그 유명한 기묘사화가 일어났고, 이때 다른 제자들의 외면과 달리 이문건 형제는 조광조를 문상했다. 이것이 빌미가 돼 2년 후 훈구파에 의해 형 충건은 유배당한 후 사사됐고, 이문건은 전라도 낙안으로 유배를 가야 했다. 이문건에게는 조카 이휘라는 인물이 있었다. 장래가 촉명했던 그는 택현설, 즉 "어진 임금을 선택해서 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문건도 택현설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지금의 성주로 '본향안치'를 당해야 했다. 본향안치는 유배형 중 가장 약한 형으로, 고향에서
[충북일보] 최근 청주시 미호강변에서 아주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에 수백여 명의 인파가 강변 공원 앞에 줄을 서있는 낯선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젊게는 30대에서 많게는 70대 노인까지 행렬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충북일보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미호강 파크골프장에서 '2025 생활스포츠지도자' 실기·구술 시험을 보러온 응시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줄을 서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파크골프 종목 생활스포츠지도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식 시험장이 전국에서 청주 딱 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서로 연습기회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응시자에게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냐고 묻자 "밤 11시부터 줄을 서도 새벽 5시 30분 파크골프장 개장시간에 대기번호 후순위를 받을 정도"라며 "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춘천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응시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하루 1번 겨우 연습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날부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