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손짓한다. 내게 오라고. 봄은 때론 청순하게, 혹은 섹시하게 시선을 자극한다. 지나간 청춘도 되살릴 것 같은 설렘이 봄바람을 타고 콧잔등을 스쳐간다.지난 29일 대청호 둘레길 8구간을 찾은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회원들 35명의 마음도 봄소식에 들뜨긴 매한가지였다.봄은 둘레길 곳곳에 노랗고 빨간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연한 쑥이 꼬무락대며 올라오고, 만개한 진달래가 바람에 일렁거렸다. 마치 생명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이날 내내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했지만, 이미 봄에 매료된 회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대청호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특히, 숲길과 동네길을 오가는 완만한 산책 코스에 회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렇게 자연을 벗 삼아 걷기를 십여분. 마티고개에 도착했다.마티고개는 지형이 말머리와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했다.가는 길목마다 작은 개울이 보였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촌스러움이 나름의 멋을 완성했다.한 여성회원은 "비가 와서 땅이 질퍽거렸지만 그 나름의 운치가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둘레길 8구간 길은 '석탄리 피실~능선 갈림길~석탄리
세조의 1464년 충청도 순행은 신미(信眉·1403-1479) 대사가 주지로 있는 속리산 복천암이 'U턴', 즉 반환점이 됐다. 그러나 당시 실록은 충청도 순행의 본래 목적이 온양행궁 거둥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임금이 온양(溫陽)에 행행(行幸)하고자 하여, 봉원부원군 정창손·예조 판서 박원형 (…) 공조 참판 강희맹을 수상(守相)으로 삼고…'- 그러나 세조는 곧바로 온양행궁으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한참 더 내려가 속리산 복천암을 방문했다. 그렇다면 세조의 어가는 한양도성을 나서기 직전, 거둥 코스를 긴급히 바꿨거나 아니면 경호문제 등으로 인해 '연막'을 피운 것이 된다. 세조가 원래의 목적지를 한참 벗어나 복천암 신미대사를 만난 것은 둘 사이의 인간적인 친밀함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와 승려를 탄압했다, 심지어 도첩제라는 것을 실시, 승려의 도성 출입도 금지했다. 이런 환경에서 왕과 승려가 '서로 꼭 봐야 할 사이'가 됐다면 그 전에 뭔가 특수한 인연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 특수한 인연의 중간매체로 훈민정음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골수 중화주의자인 대신들의 반대가 뻔
청주향교는 5성과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5성은 공자, 맹자, 안자, 증자, 자사자, 송조 6현은 송나라 주자 등 6명을 말한다. 18현은 설총,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안유,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 김인후, 이황, 성혼, 이이, 조헌, 김장생, 송시열, 김집, 박세채, 송준길 등이다. 청주향교는 역사적으로 10세기쯤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있다. 고려 성종은 즉위 2년(983)에 청주, 충주 등 전국에 12목을 설치했다. "진실로 백성들의 희망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우서(虞書·요순시대 지칭)의 12목(牧) 제도를 본받아 지방관들을 설치하였노니, 주나라의 국운이 8백년간 계속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운이 장구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때 청주, 충주 등 전국 12목에 향교도 함께 설치되면서 중앙에서 경학박사가 파견됐다고 밝히고 있다. 세종대왕은 초정약수에 행차를 할 때 청주향교에 여러 권의 서적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청주향교에 하사된 책은 통감절요, 통감훈의, 집성소학, 근사록, 통감강목, 성리군서, 사륜집 등 9권이었다. 세조의 어가는 1464년 2월 25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청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때
세조 어가는 1464년 2월 26일 청주를 출발하여 피반령(皮盤嶺·360m)을 넘어 회인에서 1박했다.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와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를 남북으로 잇는 피반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고갯길이 아홉 번 꺾이어 가장 높고 위험한 곳이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역사성이 오래 됐다. 세조 어가는 27일 보은 동평을 지나 병풍송에서 1박했다. 이때 복천암 주지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79)가 영접나와 호종하는 군사들에게 떡을 대접했다. '거가가 보은현 동평(東平)을 지나서 저녁에 병풍송(屛風松)에 머물렀다. 중 신미가 와서 뵙고, 떡 1백 50동이를 바쳤는데, 호종하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조 어가는 그 다음날(28일) 충청도 순행의 맨 남쪽 꼭지점인 속리산 중턱의 복천암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속리사(俗離寺)를 경유하기도 했다. '임금이 속리사에 행행하고, 또 복천사에 행행하여, 복천사에 쌀 3백 석, 노비 30구, 전지 2백 결(結)을, 속리사에 쌀·콩 아울러 30석을 하사하고 신시(申時)에 행궁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 1'결'은 대략 3천평 정도로, 이날 복천암이 세조로부터 받은 전토는 60만평이나 됐다. 위 인용문은 눈여겨 볼
세조의 어가는 1464년 2월 23일 청주에 도착해 이틀간 머물렀다. 이때 세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실록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유생, 창기의 노래 환영이 있었고, 104살의 문원(文原)이라는 노인이 시를 바친 것으로 나타난다. 세조는 그 노인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했다. '노인에게 주육을 하사하였다. 문원(文原)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나이 1백 4세이나 기력이 오히려 건장하므로 임금이 그 노인을 가상히 여기어 특별히 포와 술 및 의복 한 벌을 하사하였다.'-당시 세조의 어가를 호종, 경호군사를 총괄 지휘한 인물은 병조판서 윤자운(尹子雲)이었다. 그는 경호군사들의 군기와 관련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청주도착 이틀째 되는 날 갑자기 인원 점검을 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왕의 순행과 관련해 가장 풍기문란적인 내용이 적발됐다. '이어 종친에게 명하여 길을 나누어서 적발하게 하였더니, 의정부 사인 성윤문이 민가에 투숙하였고, 사대장 김처의가 군을 버리고 마을에 들어갔으며, 예조좌랑 이수남·이길보는 기녀를 데리고 민가에 투숙하였고, 또 충찬위 이세정은 술에 취하여 길가에 누워 있었다.'- 경호원들의 행동을 유형별로 요약하면 △민가 투숙 △기녀와 동침
세종대왕 때 청주목 초수리 행궁을 건립한 사람은 김흔지(金人+完之)라는 인물이다. 그는 세종의 어가보다 한달 먼저 초수리에 내려와 행궁 건립을 시작했다. 이때가 1444년(세종 26) 1월 27일이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장차 거둥하여 안질(眼疾)을 치료하고자 하여 내섬시 윤(內贍寺尹) 김흔지를 보내어 행궁(行宮)을 세우게 하고….'- 그의 이름은 같은 해 2차 초정약수 거둥 때(음력 7월 22일)도 등장한다. 이때는 행궁 건립이 아닌 기존 행궁의 수선이었다. '내섬시윤 김흔지를 청주에 보내어 초수 행궁(椒水行宮)을 수선하였다.'- 김흔지는 내섬시윤으로 출발해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부윤(정2품)에 오를 정도로 행정 능력이 뛰어났던 인물이었다. 단종은 그가 졸하자 손수 관까지 내리기도 했다. '한성부윤 김혼지가 졸하니, 관곽(棺槨)과 부의로 종이 1백 권을 내려 주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머물렀던 초수리 행궁은 그로부터 4년후인 1448년 3월 실화로 화염에 휩싸였고 범인은 하옥됐다. 세종은 이런 범인을 "지금 농삿달을 당하여 여러 날 옥에 가두어 두는 것은 심히 불가하니'(세종실록 30년 5월 21일자)라며 석방토록 했다. 이후 초수리 행궁은 세종대왕
1464년 2월 22일 초수리(초정약수)를 떠난 세조의 어가는 다음날인 23일 청주에 도착했다. 초정약수~청주는 한나절 거리로 그렇게 먼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걸린 것은 세조가 중도에 사냥놀이를 하고 천변에서 신하들과 작은 술자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위사(衛士)로 하여금 면령(免嶺)에서 몰이하게 하고, 어가를 천변에 머물러 작은 술자리를 베풀었다. 어서를 세자와 신숙주·홍윤성 등에게 내려서 이르기를, "내가 종훈 ·여러 장수와 더불어 적은 것을 베어서 나누어 마시는 것은…"'- 세조가 청주에 도착하자 사장이 쌀을 바치고, 창기들은 가요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사장'은 조선조 때 사창의 곡식을 나누어 주고 거두어 들이는 일을 맡아 보던 사람을 일컫는다. '어가가 청주(淸州)에 이르렀는데, 사장(社長) 40여 인이 노상에서 향안(香案)을 베풀고 쌀 70말을 바쳤으며, 한 중이 목탁을 어가 앞에서 쳤으나 임금이 모두 다 이를 물리쳤다. 노인·유생(儒生)·창기(娼妓) 등이 가요(歌謠)를 바쳤다.'- 조선전기 청주목을 경유한 임금은 태조, 세종, 세조 등 모두 3명이다. 이 부분에서도 세 임금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세종은 자신 때
세조의 어가가 우리고장 청주목 초수리(초정약수)에 당도한 것은 1464년 2월 21일이었다. 세조의 어가는 이날 진천~초수리 구간을 단 하룻만에 이동했다. 따라서 세조의 어가가 초수리에 도착한 시간을 늦은 오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의 어가를 맞은 당시 청주목사는 고태필(高台弼)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1465년 청주목사가 되어 정사를 엄정히 집행, 아전들은 그를 두려워 했으나 백성들은 편안히 여겼다. '충청도 관찰사 김진지가 글로써 아뢰기를, "청주 목사 고태필·온양 군사 이신효·임천 군사 박휘는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우며 상세하고 공명하여, 관리는 두려워하고 백성은 편안하니, 승직(陞職)할 만하고…"'- 초수리에 도착한 세조가 다음날 한 일은 사냥과 천변에서 가진 작은 술자리였다. '임금이 위사(衛士)로 하여금 토령(吐嶺)에서 몰이하게 하고, 어가를 천변(川邊)에 머물러 작은 술자리를 베풀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우리민족의 기록문화 꽃으로, 국보 제 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이런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에 의해 한글로 완역돼 있어, 일반인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부분은 번역상 적지 않은
세종과 세조는 20년 시차를 두고 우리고장 초정약수를 찾았다. 그러나 움직이는 속도는 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세종 어가는 한양도성~초정약수 구간을 닷새에 주파한데 비해, 세조의 어가는 하루 이른 사흘 걸렸던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세조는 '오고'(五鼓)에 일어나 하루 거둥을 시작했다. '5고(鼓)에 어가(御駕)가 거둥하였는데, 어가 앞의 횃불이 혹은 꺼졌다가 혹은 밝아졌다가 하였으므로 횃불을 없애도록 명령하고…'-조선시대 한양에서는 종각의 북을 쳐서 통금의 시작과 해제를 알렸다. 이를 '파루(罷漏)라고 불렀고, 이를 어긴 자는 경수소(警守所) 곳에 구금하였다가 그 다음날 위반한 시간에 따라 곤장을 차등있게 때렸다. 이밖에 조선시대는 저녁 무렵부터 새벽까지를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그리고 다섯 마디의 시간을 각각 일고(一鼓)~오고(五鼓)라고 부르고, 그 숫자만큼 북을 쳤다. 다섯 단계의 맨 마지막인 '오고'는 새벽 3시부터 5시까지를 뜻했다. 한여름에 새벽 5시면 날이 훤하게 새나, 겨울철은 그렇지 않다. 음력 2월말도 많이 어두운 편이나, 세조의 어가는 그 시간에 거둥을 시작
한양도성을 출발한 세조의 어가는 사흘만에 우리고장 충청도 경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당시 충청도 관찰사 신영손이 세조 어가를 맞이했다. '충청도 관찰사 신영손(辛永孫)이 어가를 맞이하고, 절제사 권언이 군사를 거느리고 결진(結陣)하였는데, 군대의 장비가 매우 성하였다. 임금이 우상대장 김질에게 명하여 용천산(湧川山)에서 몰이하게 하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구경하였다.'- 세조실록은 신영손이 도계 어느 곳에서 세조의 어가를 영접했는지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천 광혜원에서 맞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시대 광혜원에는 충청도 신·구 관찰사가 임무를 교대할 때 인장을 주고 받는 교구정(交龜亭)이 존재했다. 당시 관찰사 인장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이것을 교환했기 때문에 그 장소를 '교구정'이라고 불렀다. 경상도 교구정은 한양애서 봤을 때 그 초입에 해당하는 문경새재 동쪽 사면에 위치했고, 지금도 현존한다. 세조의 어가가 좀더 남행(南行)을 해 진천 광석(廣石)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어가가 진천 광석(廣石)에 머물러 종재 및 승지 등을 불러서 장전(帳殿)에 들어가 술자리를 베풀었다.'- 진천 광석이 어느 곳인지는 지명 추적이 잘 안 되고
세종대왕은 눈병 치료를 목적으로 1444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우리고장 초정약수를 찾았다. 조선의 7대 임금이자 세종의 아들인 세조도 그로부터 20년후 초정약수를 찾았다. 세조가 초정약수를 찾은 것 역시 치료 목적이었으나 병명은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가려운 증상의 피부병을 '아양'이라고 불렀다. 세조는 이 '아양' 치료를 위해 충청도 순행에 나섰다. 세조는 권력 찬탈 과정에서 조카 단종과 동복동생 안평·수양대군을 죽인 까닭에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가지가 저절로 올라갔다'는 정이품송 전설도 정통성 시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각종 야사도 세조가 얻은 피부병을 그의 정통성 시비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가 자신을 꾸짖었다. "네가 내 자식을 죽이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라며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이후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이 잠을 자다가 가위눌림으로 비명했고, 세조는 피부병을 얻었다.' 피부병 치료를 위한 세조의 충청도 순행은 1464년 1월 하순부터 시작됐다. 당시 조정은 이와 관련한 '특별 경계령'을 충청병영에 내렸다. '충청도
추위가 한풀 꺾인 2월의 마지막 주말,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회원들은 대청댐 둘레길을 걸으며 겨우내 움츠렀던 몸과 마음을 녹였다. 지난 22일 오전 8시30분께 67차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참가자 40여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대청댐으로 향하면서 올해 첫 클린마운틴의 막을 올렸다. 올해로 8년째 이어지는 클린마운틴 아카데미는 올해부터 '산 쓰레기 줍기 운동'이라는 본래 취지로 돌아왔다. 우리 지역의 둘레길을 돌면서 미관을 해치는 쓰레기를 줍고 우리 둘레길을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명품길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오전 9시30분께 청원군 문의면 현암정 휴게소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쓰레기 봉지를 하나씩 받고 기념촬영을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이날 코스는 현암정을 시작으로 구룡산, 현암사, 문의대교, 청소년수련원, 문의향교로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자연을 즐기자는 클린마운틴 아카데미의 모토에 맞춰 참가자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오전 9시50분께 구룡산 현암사에 오른 회원들은 잠시 쉬면서 물안개가 자욱한 대청호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이어 1시간 가량 들쭉날쭉한 돌계단과 가파른 산길을 거쳐 구룡산 정상에 오르자 나무로 만든 용이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