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상 19세기 초에 '아리랑'과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 천주교 순교자 이승훈은 '만천유고'에 '농부가'(1790)를 남겼다. '호미매여라 호미매여라 / 황혼월색이 만기간(滿旗竿)일세 //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啞魯聾) / 일석노담재주환(日夕農談載酒還)'. 후렴구 '아로롱'은 말 안하고(啞) 우둔하게(魯) 귀막고(聾) 지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로롱'이 아리랑과 같은 의미를 지녔는지는 다소 논란이 남아 있다. '아리랑'이라는 분명한 명칭은 생각보다 늦은 19세기말에 등장하고, 그 배경의 주인공은 고종이었다. 황현(黃玹·1855~1910)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고종은 매일 밤마다 궁궐에 전등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광대와 재인들을 불러들여 아리랑타령(阿里娘打令)과 같은 신성염곡(新聲艶曲)을 연주하며 놀았다.(…) 이제는 다름 아닌 궁궐에서도 하는 것이다.' '아리랑' 할 때의 '랑'을 '아가씨 娘' 자로 적어고, 그리고 이를 '염곡'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염곡은 이른바 남여상열지사의 노래를 말한다.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가 묻어나고 있다.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임금은 이것을 전담하는 원임대신으로 하필이면 민영주(閔泳柱)를 임명했고,
충북을 포함한 충청도에도 아리랑이 존재했다. 그러나 국내 음악계에서 '충청도 아리랑'이라고 개념화시켜 놓은 것은 없다. 그렇게 볼 정도의 음악적인 틀과 정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 만주 정암촌에서 불려지는 아리랑이 '청주아리랑' 또는 '충청도아리랑'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는 강력한 견해가 있다. '청주아리랑'은 임동철 전 충북대 총장이 처음 발견, 지난 2003년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날 가라네 날 가라네 날 가라네 / 삼베질쌈 못한다고 날 가라네 // 삼베질쌈 못하는 것 대단하고 / 아들딸 낳아준 건 대단찮나.(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시아버지 죽서어 좋댓더니 /왕골자리 떨어지니 또 생각난다 // 시어머니 죽어서 좋댓더니 / 보리방아 물저놓니 또 생각나네.' 후렴은 앞과 같다. 정암촌의 노랫자락이 '청주 아리랑'으로 인정받으려면 우리고장 청주 주변에 비슷한 노랫가락이 조금이라고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자의 음악적인 혈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암촌 아리랑의 핵심적인 노랫말은 '날 가라네 날 가라네 날 가라네'다. '날 가라레'는 '나를 집밖으로 나가라'라는 뜻이다. 이 노랫말이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선정 이유를 "아리랑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됐으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는 15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리랑 하면 가장 궁금한 것이 어원이다. 현재 무려 40개의 어원설이 있으나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없다. 대신 '무어원설'이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이 설은 '노랫말 아리랑은 의미 없는 사설로, 흥을 돕고 음조를 메워 나가는 구실한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아리랑이 생겨난 시점도 궁금하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고대, 고려, 조선초기, 근대 발생설 등 대략 4가지 설로 구분되고 있다. 고대 발생설은 이병도 박사가 주장했다. 그는 아리랑의 '아리'는 낙랑을 뜻하고, '랑'은 한자 '고개 령'(嶺) 자의 변형으로, 바로 평양(낙랑) 아래에 있는 '자비령'을 의미한다고 봤다. 고려시대 발생설은 고려속요에 선이 닿아 있다. 고려속요의 하나인 '청산별곡'에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애 살어리랏다 /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신종 외래해충인 '미국선녀벌레'(Metcalfa pruinosa)는 중부지역 고속도로 축을 따라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심축 한 가운데 충북이 위치하고 있어, 대규모 확산이 예상되는 내년 가을 이전에 총력 방제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얼마전 도서지역 염소, 미국선녀벌레, 미국흰불나방, 미국실새삼, 족제비싸리, 만수국아재비 등 5종을 이른바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지정했다. 이는 5종의 개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그에 따른 국내 생태계 위해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환경부는 5종 중 미국선녀벌레의 지정 사유에 대해 "2011년 조사결과를 통해 전국 14개 지역에서 농작물 3종, 과수 12종 등의 상품성을 저해하는 등 총 51과 107종의 식물에 피해를 준 것이 확인됐다"며 "다만 산림 분야에서는 피해 사례가 없어 평가 결과 2급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선녀벌레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 대해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 이상계 연구관은 '미국선녀벌레 및 꽃매미 방제대책' 논문에서 "뛰어난 부착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관은 "미국선녀벌레는 다른 해충과 달리 어떤 대상 물체에 한번
아비가 묘터를 스승이 비문을, 제천 정보연 정철은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 2대 문호로 일컬어지고 있다. 정철의 가계는 아들 정종명(鄭宗溟), 손자 정양(鄭瀁), 증손 정보연(鄭普演·1637∼1660) 순으로 이어진다. 정종명과 정양은 문벌의 자손답게 문관의 벼슬을 했다. 증손 정보연도 처음에는 그 길을 걸었다. 특히 부친 정양의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했다. 정양은 1600년생, 송시열은 1607년생이다. 따라서 송시열은 생전에 정양을 '형'이라고 호칭했다. "송시열은 정형 안숙(어릴 적 이름)의 영구가 서울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충주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병들어 깊은 산골에 엎드려 있는 처지이므로, 몸소 조제(노제를 지칭)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고 삼가 아들 기태(基泰)를 보내어 대신 영연(靈筵)에 곡하게 하면서 고합니다."- 송자대전 행간에는 정보연이 지조가 있었으며, 청아하고 고매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로 그려져 있다. 대범하여 세속의 일들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송시열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우암은 일찍이 그의 단아한 인품을 칭송하여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연(顔淵)에 비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감옥이 열악한 환경을 지녔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죄인들에 대한 복지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요사이 장맛비가 너무 많이 내리니 필시 옥사가 지체되어 갇혀 있는 죄수가 있기 때문에 화기를 손상시켰을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감옥의 죄수로 강도 이외에 장형 80대 이하는 모두 석방하고, 장형 80대 이상으로 연로한 자는 보방(保放)하도록 하라" 하였다."- 인용한 문장 중에 '보방'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보방은 '보석'(保釋) 제도의 일종으로, 보증인은 세워야 한다는 점은 오늘날과 같았다. 그리고 당시는 영구 보방 외에 한시적인 보방도 존재했다. "의금부·형조·사헌부에 전지 하기를, 지금 추위를 당하여 여러 날 구속되어 있으면 바람과 추위의 엄습을 당해서 혹시 목숨을 잃는 데까지 이를까 염려되므로 (...) 겨울 기간을 한하여 보방해서 추국하도록 하여 나의 흠휼하는 뜻에 부응하라."- 옥이 너무 비좁아 보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는 '"본부에 갇힌 사람이 모두 1백 70여 인이고 전옥서에 옮겨 가둔 자도 40여 인이라, 갇힌 사람은 많고 옥은 좁아서 갇힌 사람들이 앉아 눕지 못합니다. (…) 전교하기를, "처녀의 가장 및 양부에게 시집가서
조선시대 청주옥(獄)은 철당간과 흥업백화점 사이에 둥근 담장 모습으로 위치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조선전기 청주옥에 갇혔던 유명 인물로는 이색과 권근이 있다. 이들은 이른바 '윤이·이초 사건'에 연루돼 청주옥에 갇혔다.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이성계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자, 파평군 윤이(尹彛)·중랑장 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달아났다. 그리고 이들은 이성계가 장차 명나라를 치려 한다고 밀고했다. 이는 명나라의 세력을 끌어들여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한 음모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이색·우현보·권근 등 많은 대신들이 연루 혐의를 받고 청주옥에 갇혔다. 실록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에 우현보·권중화·경보·장하·홍인계·윤유린과 최공철(崔公哲) 등을 순군옥(巡軍獄)에 내려 가두고, 이색·이임·우인열·이인민·정지·이숭인·권근·이종학·이귀생 등은 청주(淸州)의 감옥에 가두고 이를 국문하게 하였다.'- 이어지는 문장은 "그해 여름에 이색 이하 여러 폄소에 있던 자가 모두 청주의 옥으로 잡혀 와 갇혔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큰비가 내려, 물이 넘쳐 성안에 들어와서 공해가 모두 물에 잠겼었다"라고 돼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중앙공원 압각수 설화다. 익
경기도 의왕시 원통사(圓通寺)가 세종비 소헌왕후의 원찰이었음을 확인하는데는 충북 영동출신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지은 '식우집'(拭우集)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식우집의 보다 자세한 내용과 그 저자인 김수온의 생애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7일 수원대박물관 양정석 교수가 이끄는 발굴팀은 의왕시 청계산 중턱에 존재하는 원통사 절터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가 발원해 중창한 조선왕실 원찰이었음을 확인됐다고 밝혔다. 발굴팀은 문헌사와 고고학적인 근거로 △식우집에 '소헌왕후가 발원해 중창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원통암중창기'(圓通菴重創記)'에 소헌왕후의 막내아들 영응대군(永膺大君.1434-67)이 이를 더욱 크게 중창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점을 들었다. 이밖에 이번 발굴조사에서 '홍희'(洪熙)라는 연호를 새긴 기와가 발견된 점 등을 들었다. 이와 관련, 양 교수는 "홍희는 1425년 한 해만 사용한 중국 명나라 연호"라며 "바로 이 연도는 바로 김수온의 원통암중창기에서 말하는 소헌왕후가 원통암을 창건하기 시작한 그 해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현재 식우집은 종손이 원본을, 그리고 성균과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이 영인본을 소장하
호랑버들이 탁월한 토양정화 기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이같은 연구 성과를 담은 '환경정화용 산림유전자원-호랑버들'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수백개의 폐광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폐광의 대부분은 높은 농도의 중금속의 함유, 주변 토양을 지속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나라가 중금속 오염 토양을 정화시킬 수 있는 재료나 기술을 획득하는데 심혈을 기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버드나무과 소교목인 호랑버들이 뛰어난 중금속 정화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국립산림과학원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연구팀은 경북 봉화의 한 폐광을 선정, 주변 소나무·물푸레나무·신나무·호랑버들·아까시나무 등의 중금속 축적 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호랑버들 잎에서 카드늄(Cd)과 아연(Zn)의 축적량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카드늄의 경우 다른 수종의 5배, 아연은 무려 10~40배의 높은 축척도를 나타냈다. 호랑버들의 카드늄 함유량은 평균 5.92㎎/㎏인데 비해 소나무 등 다른 나무는 0.43~0.66㎎/㎏에 불과했다. 아연은 이보다 함유량 편차가 훨씬 커 호랑버들이 782.2㎎/㎏인데 비해 신나무는 135.8, 소나
정철의 묘는 그의 손자인 정양(鄭瀁·1600∼1668)과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 의해 1665년 경기도 고양에서 우리고장 진천 문백으로 이장됐다. 손자 정양은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현재 문백에는 정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정종명의 묘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바로 정종명의 아들이 정양이다. 정양은 진천현감을 역임하기도 했고, 또 병자호란 피난일기인 '강도피화기사'를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도피화기사'는 강화도로 피난을 가는 도중에 청나라 군대를 만나 온갖 고생을 한 경험을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특히 일기에는 여인들이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자결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정양 자신도 청나라 군사의 공격을 받아 이때 한쪽 눈을 잃은 것으로 돼 있다. 피난도중 아내가 배위에서 출산을 하면서 가족들이 이중의 고초를 겪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양의 묘는 진천이 아닌 우리고장 제천 금성면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송시열이 쓴 정양의 묘표(비석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부인 이씨는 덕화를 받아 공을 섬기는데 매우 예법이 있었는데 불행히 먼저 죽었다. 두 번째로 그의 묘를 옮겨 제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