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내 역사·문화단체들이 2013년 1월을 전후해 다양한 장르의 학술서를 잇따라 출간했다. 특히 이번 학술서는 주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분량도 많은 편이어서, 여느해보다 '학술 풍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학술서를 펴낸 곳은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소장 박걸순 교수), 청주문화원(원장 류귀현), 충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 충북학연구소(소장 김양식), 호서사학회(회장 최병수 충북대교수) 등 5곳이다. 이들 단체는 앞서 서술한 순으로 '중원문화연구', '청주의 뿌리를 찾아서', '충북문화재연구', '충북학', '역사와 담론' 등의 학술서를 각각 출간했다. 제 18·19집을 합쇄한 '중원문화연구'는 '삼국의 증평지역 진출과 이성산성'(양기석), '백제의 중원지역 진출'(오옥진), '중원지역 철생산 유적에 대한 성격'(조록주), '조선시대 황간의 사족동향'(고수연), '조선말기 회인현의 신분·직역과 남정책'(강민식)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밖에 '광무양안을 통해 본 1890~1900년대의 영춘군'(정경임), '대한제국기 영춘군 유암리 농민층의 토지소유와 경영형태'(김의환), '1930~40년대 홍기문의 역사연구'(정민영), '한국 여래상의 착의
충북도내 3개 국립공원 중 지난해 월악산 국립공원의 탐방객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속리산, 소백산 등 2개 국립공원은 지난 2010년을 정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최근 2012년 전국 20개 국립공원의 탐방객수를 집계한 자료를 발표했다. 그 결과, 제천시 한수·덕산면과 충주호를 끼고 있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탐방객수가 2011년 73만명에서 104만7천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43%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각각 2,3위의 탐방객수 증가율을 기록한 태안해안 34%, 다도해해상 22%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특히 월악산국립공원은 지난해 104만여명의 탐방객수를 기록, 드디어 '탐방객 100만 시대'를 맞게 됐다. 이처럼 월악산국립공원의 탐방객이 급증한 것으로 △여름~가을철 일기상황 △오토캠핑장 대중화 △탐방로 신설 △저지대 탐방객이 많은 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월악산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011년은 여름~가을철에 걸쳐 주말마다 비가 왔기 때문에 탐방객이 적었다"며 "그러나 지난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급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전회에 우리고장 문의(청원)가 관향인 고려말 대신 박의중(朴宜中·1337~1403)이 억정사 대지국사탑비(보물 제 16호·충주 엄정면 괴정리 )의 글을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대지국사(大智國師)는 고려후기 우리고장 충주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속명이 한찬영(韓粲英)으로, 본관은 청주(淸州)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복직장에 재직했던 한적이고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부모 모두 청주를 관향으로 가졌다는 점이 우리고장과의 밀착도를 더 높이고 있다. 그는 1341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를 은사로 삭발하고 계를 받았다. 이후 승과에 응시한 23세 전까지 보우에게 5년, 정혜국사에게 3년, 수자화상에게 1년간 공부를 했다. 보우에게서 법을 받았고, 정혜국사로부터는 수행을 배웠으며, 수자화상을 통해서 참선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배웠다. 그는 1353년 승과에 장원 급제, 대흥사의 주지가 되면서 사판승(事判僧)의 길로 접어든다. 그 결과, 왕명에 의해 석남사, 월남사, 신광사, 운문사 등 중요한 절의 주지를 맡아 선법을 설하고, 1372년 공민왕으로부터 '정지원명무애국일대선사(淨智圓明無石+疑國一大禪師)'라는 호와 함께 금란가사, 바리때, 묘
13. 조선인 차별과 탄압의 화신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세이난전쟁에서 오른손 부상을 입어 경례도 왼손으로 했다. 보직도 전투지휘관보다 행정과 교육부문을 맡았다. 그는 프랑스에 유학한 후 1887년 중좌 계급으로 일본육사 교장이 된다. 그는 특이한 교장이었다. 퇴근 뒤에도 망원경으로 생도들을 감시할 만큼 꼼꼼했다고 한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히로시마 대본영의 병참과 통신책임자로 상석참모와 병참총감을 겸한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 1848~1899)의 지휘를 받았다. 가와카미는 사쓰마 즉 가고시마파의 두목급이었으나 1899년 참모총장 현직에서 병사를 했다. 가와카미 인맥은 그 후 힘을 쓰지 못했다. 야마구치파인 데라우치의 견제 때문이었다. 데라우치는 대본영 근무 중 처음 조선과 악연을 맺었다. 일본군의 병참·통신망은 조선땅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정부의 허락 없이 군용전신선을 설치하거나 부산과 서울, 서울과 평양을 잇는 병참기지는 그가 추진한 일이었다. 병참망 일대의 동학농민군을 대거 학살한 사건의 배후에는 실무책임자인 데라우치가 숨어 있었다. 청일전쟁 이후 1사단 참모장과 참모본부 1국장을 지내고 1898년 초대
고려 공민왕은 1361년 홍건적이 수도 개경까지 쳐들어오자 복주(福州·지금의 안동)로 몽진했다. 몽진은 임금이 외침을 당해 급하게 피난길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안동에는 2개월 정도 머물렀다. 안동시는 이를 기념, 매년 '공민왕 헌다례' 축제를 열고 있다. 그러나 안동보다 더 오래 머문 곳이 있다. 바로 우리고장 청주로, 136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5개월 가량 청주읍성에 체류했다. 고려사는 공민왕이 청주에 들어오는 모습을 이렇게 적었다.'임진에 어가가 청주(淸州)에 이르렀다. 처음 상주에 행차하였을 때 호종한 신료들에게 인가에 우거를 허락하고 그 주인으로 하여금 피하지 말게 하였더니…'- 공민왕은 체류가 길어지자 청주에서 과거 시험를 실시했고, 이때 취경루(지금의 망선루) 방목(榜目)에 장원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박의중(朴宜中·1337∼1403)이다. 합격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朴實(박의중의 초명), 金濤, 金祗,(이상 을과), 鄭履, 李崇仁, 金仲權, 朴希道, 康好文, 趙德謙, 許時(이상 병과)'. 李猷 등 나머지 23인은 진사 합격자였다. 박의중은 조금은 낯설은 인물이나 매우 유능하고 강직한 성품의 관인학자였다. 그리고 우리 고장과도 적
가장 단순한 농기구의 하나인 '호미'도 지역에 따라 모양이 크게 차이가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현대화된 농기구에 밀려 많이 사라졌지만, 그 와중에도 진화의 길은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이 '충북민속의 해' 기념사업의 일환인 '길에서 길을 만나다' 특별전을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갖고 있다. 도문화재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민속문화의 교차로, 충북'을 부제로 한 특별전의 도록을 발간했다. 호미는 논·밭의 풀을 제거하거나 흙을 북돋아주는데 사용되는 농기구로, 날은 대체로 '역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록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인 호미에 지역적인 특성이 가미되면서 그 외형은 보다 세분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습형 호미'는 쟁기의 모습처럼 날끝이 다소 뾰족하고 위는 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날끝을 흙에 박아 젖히면 흙이 쉽게 뒤집어져 논을 매는데 적당하다. 충북을 비롯한 경기와 전북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낫형 호미'는 날이 날처럼 너비에 비하여 길며 그 끝이 매우 날카로워 자갈이 많은 땅에서 주로 사용된다. 경상도 등 산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세모형 호미'는 양변에 비하며 바닥의 길이가
충북도내 고라니(학명 Hydropotes inermis)의 기생충 감염률이 80%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고라니와의 접촉이 잦을 경우 인간의 감염도 자연스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슴과의 고라니는 국내에서 보신용으로의 식용 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애용하면서 줄곧 불법 수렵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자연 적응력이 뛰어나고 여기에 다산(2~6마리)하는 특성으로 인해 개체수가 꾸준히 증가, 지난 2005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고라니는 조밀한 숲과 초지를 선호하면서 산간 저지대를 주된 서식공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근래들어서는 개체수 증가로 인해 평야지 강가는 물론 농가 근처의 경작지에도 자주 출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충북대 의과대학과 수의과대학이 공동으로 '충북지역 야생 한국고라니의 내부 기생충 감염률 조사'를 실시했다. 충대 조사팀은 지난해까지 충대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 내원한 고라니 20마리의 분변을 기생충학적인 방법으로 검사했다. 검사 대상이 된 고라니는 청주·청원에서 포획과 구조 그리고 길죽음(로드킬)을 당한 개체로 모두 성체였다. 그 결과, 20마리의 고라니 중 85%에 해당하는 17마리에서 1종류 이상의 기생충
'대풍(大風)을 앓는 집에서 마침 오사가 술동이 안에 빠진 것을 모르고 그 술을 마셔 마침내 병이 낫기도 했다.'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오사'(烏蛇·먹구렁이)의 약효를 적은 글이다. 2013년은 흑사띠인 '오사'의 해이기도 하다. 그는 인천부사, 상주목사 외에 우리고장 연원(충주) 찰방과 단양군수 등을 역임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림경제'를 저술했다. 산림경제는 농업 저술이면서 주택·건강·의료·취미 등 농촌생활적인 내용까지 아우르고 있다. 따라서 종래의 농서들에서 볼 수 없는 종합적인 농가 경제서이자, 일부 과학성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저술량에 비해 그의 문집, 연보, 행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현령이 지은 묘갈 문장과 실록, 송자대전, 범옹집(泛翁集) 등에 단편적인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긔의 유일한 전기 자료가 되고 있다. 범옹은 그의 부친 주국(柱國)을 말한다. 홍만선의 할아버지는 대사헌 이상(履祥)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 영(霙)이며, 어머니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의 딸이다. 말 그대로 명문가 집안이다. 사료를 보면 그의 아버지 주국은 1674년(숙종 즉위년) 제
광복-50년대'한번 뭉쳐 민국수립, 다시 뭉쳐 실지회복'(정부수립)'못살겠다 갈아보자'에 '갈아봤자 더 못산다'(선거)60년대'엄마는 신고하고 아빠는 잡아내자'(반공) 전국민 11시 55분만 되면 모두 재건체조(보건) 70년대'절미하는 우리엄마, 밝아오는 새마을'(물자절약)'찬장과 밥상덮개 만들어 파리를 막자'(생활개선) 80년대 이후'아빠가 담배를 끊었어요 하얀연기 검은생명' (건강)'낳을수록 희망가득 기를수록 행복가득'(출산장려) 역대 정권의 국정운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중 당시 정부가 내건 각종 정책구호도 중요한 열쇠말이 될 수 있다. 곧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차기 정부의 정책 구호가 어디에 방점이 찍힐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지난 시절과 정치와 사회의 다양화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나면서 비교 자체가 무리일 수는 있다. 자료는 국가기록원(원장 박경국·전 충북도 행정부지사)의 도움을 받았다. ■광복-1950년대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때 '한번 뭉쳐 민국수립, 다시 뭉쳐 실지회복','대한민국 주권하에 남북을 통일하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6.25 한국동란의 전장
2013년은 뱀띠해, 그것도 60년만에 돌아오는 흑사(黑蛇·검은 뱀)의 해라고 한다. 인터넷 상에는 젊은 주부들 사이에 "2세를 낳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2013년을 흑사띠로 보는 것은 십간·십이지의 주역적인 해석에서 연유하고 있다. 먼저 금년이 뱀띠해가 되는 것은 '계사년'(癸巳年)의 '뱀 巳'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십이지(十二支)이다. 나아가 뱀 중에도 흑사띠인 것은 십간(十干)과 관련이 있다. 십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다. 주역상 이 십간은 둘씩 쌍을 만들어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등의 오행(五行)으로 묶을 수 있다. 오행 중 갑을에는 청색, 병정은 붉은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흰색, 임계는 검은색이 일대일로 대응한다. 따라서 계사년에 해당하는 계(癸)는 검은색(黑)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2013년은 '흑사띠'다. 흑사하면 생각나는 것이 '먹구렁이'이다. 구렁이의 어원은 순우리말 '굵'(굵다)에 호칭어 '엉이'가 붙은 맡이다. 굵엉이가 굴겅이-궁렁이-구렁이 순으로 변했다. 이중 먹구렁이는 표피가 검은색을 띠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렁이의 또 다른 종류인 능구렁이는 이와 다소 다르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