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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순

시인·배바우도서관장

나무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조용히 그늘을 짓는다. 대패 대신 바람을 쓰고, 망치 대신 햇살의 각도를 잰다. 가지를 벌리고 잎을 다듬으며, 그날의 빛이 머물 자리를 설계한다.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눈을 뜨고, 몸을 비틀어 하루의 균형을 맞춘다. 잎맥 하나하나는 못질 자국처럼 정교하고, 가지의 방향은 날마다 새로 짜인 도면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는, 나무가 평생 그려온 구조물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누구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깎는다. 단단하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몸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몸은 중심이 아니라, 기울어짐 속에서 균형을 찾는다는 걸 나무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찢기고 꺾여도 다시 몸을 펴는 법을 익힌다. 해마다 굽고, 다시 곧아지며, 손끝처럼 섬세해진다. 한결같은 자리에 서서, 매일 다른 햇살을 받아내는 일이 그에게는 곧 삶이자 일이다.

그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몸이 먼저 굽고 기울어야 생긴다. 굽은 몸이 견디고, 버티고, 낮아지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앉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 곁에도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었다.

겨울이면 마당에 나가 삐걱대는 대문을 기름칠하던 사람. 못 하나를 박을 때도 몇 번이고 각도를 재던 손.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던 그 사람은,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다듬고 조용한 숨결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빛나지 않았지만 가장 따뜻했던 그 사람은, 어쩌면 진짜 목수였는지도 모른다. 단단한 마음 하나를 대패로 밀듯, 매일 무언가를 갈고 다듬던 손끝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고, 흔들릴 때마다 그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자리는 너무 익숙해서, 고맙다는 말조차 생략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오래 그 자리를 당연히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그늘은 누군가의 오랜 수고와 침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역시, 누군가의 굽은 뒷모습이 깔아준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나도 언젠가 그런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다그치지 않고, 재촉하지 않으며, 말없이 몸을 틀어 누군가의 마음에 쉼을 건네는 사람. 한 조각의 햇살을 막아주는 그늘이 되어, 조금은 늦게 배운 그 고요한 이름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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