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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1.11 17:13:32
  • 최종수정2023.01.11 17:13:44

이상식

전 충북도의원

인조와 소현세자를 다룬 영화 '올빼미'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소현세자가 비정한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당한 정황을 다룬 영화다.

인조는 붕당정치를 이용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정변(政變, 구테타)의 장본인이다. 쿠데타 이후 인조는 광해군의 측근세력과 집권 반대 정파(북인)를 심하게 탄압했다. 물론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도 적지 않았다. 지나친 정적제거에 집권 정파(서인)에서도 반대가 많았었다. 하지만 절대권력에편승하기 위해 서인들 또한 북인 탄압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요즘의 정당정치 행태가 당시를 꼭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인조의 자기중심적 왕놀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인조의 쿠데타 공신이자 북방경비의 책임자였던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인조는 도성을 버리고 공주 공산성으로 파천(播遷)하였다. 이것이 도피생활의 전주곡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괄의 난에 동원되었던 북방경비군이 진압되면서 국경 방어력이 약화된 것이다.

국력이 약해진 조선은 친명배금(親明排金)의 편향적 외교로 정묘호란을 맞게 된다. 후금(청)은 쉽게 조선을 점령해 왔고, 인조는 강화도로 두 번째 도피를 하게 된다. 이쯤에서 찌질한 피난생활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세 번째 도망을 가는 일이 발생한다. 정묘호란 후에도 존명배청(尊明排淸)의 무능한 외교는 지속되었고, 결국 병자호란을 맞은 것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몸을 숨긴다. 남한산성에서의 46일은 저항이 아닌 감금이었다.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을 겪게 된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조선의 왕이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 한국사 최고의 치욕이었다. 지도자 인조의 무능과 무지, 아집이 낳은 참극이었다.

이 사건으로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볼모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인조는 아들을 지키지 못한 못나디 못난 아비였고, 약 50만 명의 국민을 노예로 내어 준 무능한 왕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에 끌려 간 소현세자는 노예로 사고 팔리는 조선인을 최대한 구해냈다. 또 서구문물을 접하며 새로움에 눈을 뜨게 되었고, 청에 대한 정치력도 높여갔다. 이러한 인간 됨됨이와 영특함의 명성은 조선의 인조에게까지 전해졌다. 때문에 인조는 인질생활 9년 만에 귀국한 소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소현세자는 자식이 아니라 정치적 정적이었던 셈이다. 결국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인조에게 독살당한다. 인조는 정치가라기 보다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조선시대 최악의 암군(暗君)이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 현재의 정치와 정확하게 오버랩(Overlap)되기도 한다. 역사의 순기능을 승계하고, 정책적 차이를 채워 나가야 하는 정치의 순리가 거부되는 현실. 국민의 안전과 민생에 대한 위정자들의 허언과 망언이 반복되는 현실. 생활고를 호소하는 국민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정치 부재의 현실. 인조의 역사가 반복되는 극악의 현실이 아닌지 불안하다.

지도자는 무릇 화합과 포용, 애민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인조에 의해 부정되고 조선의 국격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지도자 한 명 때문에 그러했다. 작금의 외교 또한 미·중 사이의 실리외교는 찾아볼 수 없다. 전 정권이 이뤄낸 국방력 세계 6위의 자긍심 또한 온데간데 없다. 안보에 대한 지도자의 무지, 국방에 대한 군의 책임회피, 전쟁에 대한 공포분위기 조성. 국민의 안전을 걷어차 버린 인조의 데자뷔가 아닐지 걱정스럽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 하지만 성찰을 통해 이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과연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새겨듣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 올빼미에서 '모르는 척, 안보이는 척 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작금의 시대를 보면 암울했던 역사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 지금도 국민들에게 눈과 귀를 닫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서글픔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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