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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주년, 잊으면 안 될 민간인 학살

24일 충북학연구소 포럼서 거론
충북도내서 사망·학살·납치·행불 등
민간인 7만여명 군·경에 희생돼

  • 웹출고시간2020.06.24 21:17:12
  • 최종수정2020.06.24 21:17:12

6.25전쟁 70주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 뉴시스
[충북일보]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흘렀다. 70주년이 됐지만, 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하다.

한국전쟁 70주년이자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전몰군경을 기리는 국민은 많지만,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쟁 당시 충북지역에서도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6·25한국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6·25전쟁 70년 충북의 기억과 의미'를 주제로 충북연구원 중회의실에서 열린 2020년 충북학포럼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포럼에서 양영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부장은 충북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발제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은 보도연맹 사건이다. 충북에서도 보도연맹 사건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이유도 모른 채 숨졌다.

대표적으로는 △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 △청원 오창 창고 국민보도연맹 사건 △괴산·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 △충북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이다.

청원 국민보도연맹사건은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청주경찰서 경찰과 헌병대·청주CIC(방첩대) 등은 청주·청원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 검속자들을 청주경찰서와 각 지서·청주교도소 등에 소집·구금했다. 이후 경찰·헌병대·방첩대 군인들은 이들 165명을 예비검속·부역 혐의 등으로 살해했다.

1950년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청원군 오창면(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과 진천군 진천면 일대에서는 400여명의 주민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등의 이유로 군인·경찰 등에게 사살당했다. 이들 중 223명이 숨지고, 92명이 현장에서 생존했다. 이 사건이 청원 오창 창고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다.

비슷한 기간 벌어진 괴산·청원 국민보도연맹사건도 괴산과 청원(북일·북이)지역 보도연맹원을 포함한 예비검속자들이 경찰·헌병대·방첩대에 의해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옥녀봉과 괴산군 일대에서 살해된 사건이다.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만 170명, 뒤늦게 알려진 희생자는 7명이다.

충북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도내 전역에서 벌어졌다. 당시 충주·제천·단양·옥천·영동·보은·음성·진천 등 충북지역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발발 뒤 경찰들에게 살해당했는데 희생자는 175명, 희생 추정자는 8명이다.

이처럼 전쟁 직후 수많은 민간인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군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힌 민간인도 수를 셀 수 없다.

충북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군 제1기병사단 제7연대 예하 중화기중대가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위에 민간인 300여명에게 기관총을 발사해 200여명 이상을 살해한 노근리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1년 1월 공식 인정됐고, 2004년 2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명예회복 사업이 추진됐다.

보은군 등 6개 군지역에서는 1950년 7월부터 1951년 4월까지 군경에게 43명의 민간인이 살해됐고, 1951년 1월 5일에는 후퇴하던 국군 6사단이 음성군 대소면 오산리에서 최소 59명의 민간인을 집단 총살했다. 1951년 1월 7일 미군이 단양군 가곡면 도로를 봉쇄하자 곡계굴로 피신한 피난민들은 같은 달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대다수 숨졌다. 폭격 이후 곡계굴 밖으로 나오는 피난민들은 미군의 기총사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청주에서는 1950년 9월 24일 청주교도소·청주내무서 및 정치보위부에 수감된 우익인사 970명 중 청주 서문교에서 240명, 산성리 토굴에서 90명 등 모두 710명이 학살당했다. 이날 밤 10시께부터 수감된 이들이 끌려나가 교도소 뒷산인 당산에서 학살당했다는 당시 생존자 증언도 있다.

김양식 충북학연구소장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충북의 인구가 감소한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념 칼날에 숨져간 민간인 피해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최종 집계된 자료를 보면 충북에서 모두 7만여명이 전쟁으로 사망·학살·납치·행방불명됐다"고 설명했다.

/ 강준식기자 good1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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