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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칼럼니스트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 영동으로 가는 국도변에 묘소 한 기가 있다. 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고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유모헌비지묘(乳母獻菲之墓)'라고 각자되어 있다. 유모 헌비는 누구이고 어떤 내력을 담고 있을까.

비석을 확인하니 더 많은 각자가 보인다. '贈 領議政 睡翁 宋公...' 영의정을 증직 받은 수옹 송공이다. 이 비석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우암송시열이 제주도로 귀양 가기 전, 부친 수옹(睡翁) 송갑조를 키운 유모 노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송갑조는 젖먹이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마침 헌비도 아이를 출산 했는데 그녀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부터 아이는 유모가 너무 힘들게 농사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좋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유모는 다 헤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소년은 자라면서 그녀가 집안의 노비인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은 그것이 가슴이 아팠다. 소년은 장성하여 헌비를 노적(奴籍)에서 풀어주고 따로 살게 했다. 자신을 키워준 유모에 대한 보은이었다.

그리고 간혹 헌비의 집을 찾았다. 헌비가 차려주는 음식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헌비는 찾아 온 송공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주었다. 가난한 집에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송공은 '가장 맛있게 먹었다'고 하며 헌비를 기쁘게 했다. 송공은 평생 자신을 키워준 유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어머니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출산 중에 많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송공의 어머니도 시집올 때부터 몸이 쇠약했다고 한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율곡(栗谷) 이이, 백사(白沙) 이항복, 관수정(觀水亭) 송흠도 소년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율곡은 19세, 백사는 16세, 송흠도 소년시절 모친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공유했던 셈이다.

율곡은 어린 시절 어머니 사임당의 철저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사임당은 남편이 이루지 못한 학문의 대업을 아들에게 기대했다. 백사도 9세에 부친을 잃고 역시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 최씨는 비뚤어지기 쉬운 아들을 아비 없는 호래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바르게 키웠다.

이들이 모두 크게 성공한 이유는 바로 생전에 못다 한 효를 실천하기 위해서 였을까. 세 분은 모두 소년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밤낮으로 학문에 정진한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린 백사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면서도 항상 고생만 하고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상을 치른 후 2년, 동료인 신생원(申生員)에게 모친을 그리는 심경을 편지로 보냈다. 어머니를 졸지에 잃어 물가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 탄식한 것이다.

효란 무엇일까. 효경에서는 효를 '덕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하늘이 정한 불변의 기준이며 땅의 떳떳함'이라고 가르쳤다. 서경에서는 '아비는 친하고(父親), 어미는 자애롭고(母慈), 자식은 효도(子孝), 형은 우애(兄友), 아우는 공순(弟恭) 해야 한다'고 정의한다.

오늘날은 이러 정의가 퇴색하고 가정의 질서마저 깨지고 있다. 이번 대선 후보들 가운데는 한국의 전통윤리를 회복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이들이 없다. 혹 효를 낡은 생각이자 구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젖을 물려 키워준 부모는 생명의 은인이다. 송공의 애틋한 유모 헌비에 대한 보은고사나, 생전 어머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보답한 율곡, 백사의 효 얘기를 들어보면 왠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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