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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 - 지리산

운무 속 천상의 화원 …여름빛으로 물든 비경

  • 웹출고시간2016.08.18 17:53:13
  • 최종수정2016.08.18 17:53:13

지리산 산행코스

성삼재~노고단~돼지령~피아골삼거리~임걸령~노루목~반야봉~노루목~임걸령~피아골삼거리~돼지령~노고단~성삼재

노고단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이불처럼 드리운 구름이 비상한다. 노고단 고개에서부터 데크길이다. 정상까지 이어져 하늘길이 된다. 있는 대로 하늘을 다 열어준다. 새하얀 구름바다를 선물한다. 저 멀리 섬진청류가 흐른다.

[충북일보] 8월의 지리산은 구름바다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녹색의 숲이 조화를 이룬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기분이다. 가도 가도 경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지리산은 그저 화두(話頭)를 위해 품만 내준다. 산행 내내 스스로 묻고 답하길 반복한다. 즉문즉답을 저절로 터득한다. 나무람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 되돌아보며 홀로 하는 깨침이다. 말이 필요 없다.

지리산에 들면 모든 게 예사롭지 않다. 그냥 사소한 나무와 풀과 돌이 아니다. 모든 게 작은 떨림과 울림을 준다. 그리고 마침내 장쾌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산객들은 그 위에 선 연주자들이다.

2016년 8월14일 새벽 지리산에 든다. 성삼재에서 노고단(1507m)까지 길이 너무 좋다. 새벽 공기가 시원하다. 길옆으로 우거진 나무가 함께 한다. 정갈하게 잘 정비된 길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길이다. 바닥의 촉감이 좋다. 하늘로 가는 기분이다.

완만하고 너른 길을 따라 50여분을 걷는다. 노고단이 여명에 어슴푸레 보인다. 노고단대피소가 새벽하늘 아래서 빛난다.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지리산에 들 때마다 저미는 감정이다.

동자꽃.

노고단 고개는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백두대간 종주꾼들의 성지다. 고갯마루에서 노고단 쪽으로 간다. 산길 풀 섶마다 꽃이 핀다. 수백의 나무계단을 터벅터벅 오른다. 동자꽃과 산오이풀이 환하게 반긴다. 어수리와 동자꽃도 아직 한창이다.

여름철 노고단은 천상의 화원으로 변한다. 운무가 겹쳐 환상적이다. 그 덕에 한낮 가족단위 행렬이 많다. 노고단 들꽃과 운해를 보기 위해서다. 섬진강의 습한 기운이 몰려든다. 갑자기 사위가 구름바다로 변한다.

산 아래까지 내려온 구름바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야말로 노고단 정상에서부터 드리워진 노고운해다. 새벽까지 감추고 있던 비경을 일출과 함께 선물한다. 마치 꿈과 현실을 오가는 기분이다.

노고단 풍경.

노고단고갯길로 내려선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임걸령까지는 비교적 쉽다. 큰 굴곡이 없다. 쉬지 않고 반야봉으로 향한다. 노란 원추리가 하늘거리며 손을 흔든다. 미역줄나무가 길을 좁힌다.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돼지령에 닿는다. 그런데 돼지가 없다. 시원한 산길이 계속된다. 지리산 주능선 중 가장 편안한 곳이다.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물맛이 달다. 노루목에 도달한다. 반야봉으로 가는 길목이다. 역시 노루가 없다.

노루목에서 왼쪽 길로 가면 반야봉이다. 직진하면 삼도봉 가는 길이다. 삼도봉을 버리고 반야봉 쪽으로 오른다. 고사목지대를 지난다. 자꾸만 늘어나는 고사목들이 안타깝다. 천왕봉 쪽으로 구름이 넘실거린다. 반대쪽으로 노고단이 희미하다.

반야봉 (왼쪽) · 노고단 표지석

반야봉은 지리산의 중앙부다. 지리산 3대 주봉 가운데 천왕봉(1915m) 다음으로 높다. 해발 1732m로 두 번째다. 풍경감상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리10경 중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반야낙조와 노고운해, 섬진청류다.

시인 이원규는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라고 표현했다. 기막힌 한 줄 표현이다. 저 멀리 벽소령이 눈에 잡힌다. 넉넉하게 품어준 지리산에서 하루가 저문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지리산에 올라야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 고행(苦行) 속에 미소가 번진다.

■ 취재후기

'말라가는 구상나무' 대책 찾아야

반야봉 구상나무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거대한 고사목 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오랜 세월 품어 지킨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원인이란 추정만 있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구상나무의 떼죽음 현상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 10년 새 일이다. 시작은 한라산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리산까지 확대됐다. 노고단부터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전반에 걸쳐 관찰되고 있다.

반야봉 가는 길 중간에 고사한 구상나무가 앙상한 몰골로 겨우 서 있다.

구상나무 집단고사는 반야봉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로 해발 1400~1900m 고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설악산에서는 2013년 귀떼기청봉에서 확인됐다. 지금은 대청봉과 중청봉, 소청봉에서도 확인된다.

침엽수의 쇠퇴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특히 가문비나무속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식물들은 해발 1200m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자생한다. 때문에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건조기후와 고온현상에 아주 약하다.

최근 10년 동안 한반도에도 기후변화가 심했다. 우선 겨울철 강우량과 강설량이 감소했다. 지속된 건조 상태가 수분공급 문제를 가져왔다. 특히 2~4월 사이의 가뭄이 구상나무 고사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리산 구상나무 고사 현상은 심각하다. 본격적인 국내 침엽수 고사를 알리는 전조이기도 하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침엽수 고사 실태를 전수조사 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지도 논의해야 한다.

지리산은 대한민국 국립공원 1호다. 백두대간의 정점이다. 그리고 구상나무는 지리산의 대표 수종이다. 그런 구상나무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예방책을 찾아내야 한다. 아니면 죽음의 기록이라도 해야 한다.

구상나무는 희귀종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 등에만 서식하는 토종이다.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토종 특산종답게 학명(Abies koreana WILS)에도 '한국'이 들어 있다.

그런 구상나무가 지리산에서 죽어가고 있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뾰족한 해법이 묘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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