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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왜 다시 ‘파르티잔’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민족 분단의 아픔, 통일 이룰 때까지

  • 웹출고시간2008.05.20 22:30:3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바야흐로 21세기다. 대한민국 최초로 우주인이 등장한 시대에 웬 파르티잔 음악회란다.

파르티잔 하면 왠지 구시대적이고 과거의 역사적인 한 현상이었던 것처럼 인식된다. 그 또한 편견임을 안다. 아직 이 지구상 곳곳에는 파르티잔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르티잔이란 정규군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된 비정규군을 말한다.

주로 게릴라나 레지스탕스 등의 용어와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으며 정부군에 맞서 독립이나 민주화나 자유를 위해 조직을 갖추고 숨어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파르티잔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보면 근대에 민중봉기를 주도했던 동학군이 있고 일제강점기시절 광복군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던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여순반란사건으로 이어졌고 제주 4.3항쟁을 주도했고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이러한 수순을 거친 한국 파르티잔의 특성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사상적 접근 보다는 민족에 대한 열망이 빚어낸 활동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전쟁 발발 반세기도 더 흐른 이즈음에, 청주민예총 음악위원회 위원장인 김강곤은 전자기타와 피아노 등 현대적인 악기를 들고 나와 파르티잔, ‘그들의 끝나지 않은 노래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김강곤은 이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왜 굳이 끝나지 않은 노래라고 말했을까.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과거문제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친일문제 청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굴곡 많은 우리 민족사의 중심에서 왜곡되거나 감춰졌던 진실들을 더 늦기 전에 밝혀두자는 것이다.

세계 민속음악이나 혁명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던 김강곤은 우리나라에서도 파르티잔의 활동이 있었고 그들이 꿈꾸던 혁명을 상징하는 음악들이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거나 스스로 만들어 구전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료 모으는 일에 나섰다. 일명 ‘빨치산’이나 ‘빨갱이’로 불려지기도 한 파르티잔들이 즐겨 부리던 음악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이렇게 ‘2008 민족음악콘서트- 파르티잔의 노래’는 시작되었다.

한국전쟁당시 빨치산 활동을 하다 투항해 20년 형을 살다 나온 김형식옹. 그는 음악회에 초대손님으로 나와 그가 당시나 지금이나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민족의 통일’이라고 말한다.

역시 객석에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몇 안 되는 관객들의 집중된 관심 때문일까. 객석은 왠지 숙연하다. 다행스럽게 영문도 모른 채 무대 앞을 올망졸망 뛰어 노는 어린 망아지들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소 띄워 주었다. 1부에서 세계 빨치산의 노래들은 관객들이 깊은 바다 위에서 해미를 만난 것만큼이나 복잡한 심정을 끌어 내 주었다. 영화 ‘실미도’였던가.

그곳에서 들었던 음악 ‘소나무’가 마치 출장을 앞두고 가족들을 그리며, 혹은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는 장엄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어 산업화로 파생된 인간의 존엄성 상실의 아픔을 담은 프랑스 음악 ‘오월의 노래’가 우리들의 70년대를 상기시켜 주었다. 러시아의 농민반란 당시 불렸던 러시아 민요 ‘스텐카라친’이나,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우지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독립정신 살아 있다/ 만리장천 외로운 몸 부모형제 다 버리고 / 홀로 섰는 나무 밑에 힘도 없이 쓰러졌네/ ’하는 우리나라 ‘독립군 추모가’가 애잔하게 파고든다.

종종 음악프로에 소개되어 귀에 익숙한 그리스의 음악 ‘기차는 8시에 떠나 가네’를 노래 모임 ‘민들레의 노래’가 열창해 독립을 위해 출병하는 그리스 병사들의 숙연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한국전쟁당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 의해 구전되어 부르던 노래 ‘태백산맥에 눈 나린다’가 우렁찬 행군가처럼 재현된 무대가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빨치산 민요 ‘안녕 내 사랑’은 ‘내가 빨치산과 함께 죽거든 그대 나를 묻어 주오’하는 가사처럼 당시 빨치산들의 삶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노래였다. 이렇게 세계 각국의 파르티잔 노래들이 관객들의 감성을 적시었다.

2부에서 독특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초대손님으로 한국전쟁 때 빨치산활동 중 정부군에 쫒기다 투항한 김형식옹(83. 충북 괴산군 소수면 수리)이 자리 한 것이다. 음악을 듣는 내내 감회에 젖어 있다 관객들 앞에 앉은 김옹은 진정 이 무대가 ‘끝나지 않은 노래’ 임을 증언해 주었다.

다름 아닌 남북분단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애석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감형되어 20년을 살고 나와 고향에 정착해 살고 있는 그의 염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통일’이란다. 그리운 가족들 품을 떠나 발에 동상이 걸려 잘려나가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등성이를 헤매면서도, 단 하나 그들이 원했던 것은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었다고 회상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지만 당시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해 오히려 고통스러운 마지막 한국의 파르티잔, 그 노병은 그 시절을 상기하면 아직도 얼굴이 발개진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운 것이 아닌, 그 시절의 혈기와 열정이 너무도 당당했기에 지금의 무력함이 고통스러운 듯이.

노래 모임 ‘민들레의 노래’와 락 밴드 ‘밴드 조’, 권택중, 류도열 등의 열창으로 구성된 ‘파르티잔의 노래’ 공연이 지난 18일 청주 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에서 진행됐다.

현대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저 먼 나라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열광한다. ‘체 게바라 평전’을 사 옆에 끼고 다니며 열독하고 그의 잘생긴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를 거침없이 입고 다닌다.

그들에게, 우리에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민족의 대 과업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그래서 ‘파르티잔의 노래’는 그렇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노래는 들려준다.

‘체 게바라여 영원하라’ ‘지리산이여 너 지리산이여’라는 노래를 락 밴드그룹 ‘밴드 조’의 절규 같은 음색처럼, 부디 파르티잔의 노래가 통일이 될 때까지 지속되기를 고대해본다.


/김정애(소설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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