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07.05.24 23:11: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오는 백발은 오른손에 도끼들고 왼손에 가시들고도 막기 어려운 모양이다.

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 해고(海高) 이상록(李相祿) 선생(78)을 만나니 이런 느낌이 들었다.
고향 충북을 위해 오랫동안 올곧고 왕성한 활동으로 ‘지역의 어른’ ‘시민운동계의 대부’로 불려온 터라 여전히 꼿꼿하고 우렁찬 호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억력은 아직 또렷했지만 시력과 청력이 떨어졌고, 신장 기능이 안 좋아 다리 쪽에 한 수술이 완쾌되지 않아 걸음걸이도 불편해 했다.

하지만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인터뷰 도중 불의와 맞서 싸우는 대목 등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전해지는 목소리로 당신 인생의 좌우명인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충북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의 경주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청주고, 청주대학교 및 대학원을 마친 선생은 사회생활 초반 25년 동안 교육계에서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영동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대성중, 대성여고, 청석고 등 3개 학교 교장을 거쳤는데 특히 이들 3개 학교는 선생이 직접 건설인부들을 독려하며 학교 건물을 새로 지었기에 애착이 더하다.

대성여고 교장때는 “학교부지가 도로계획선에 걸려서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을 건설교통부 장관을 찾아가 설득하여 그 자리에서 도로계획선을 이동시키도록 했는가 하면 ,공사기간인 6년 내내 부인 엄보옥 여사(2006년 작고)가 밤마다 인부들의 밤참을 해 나르는 고생을 시킨 것도 마음에 걸린다.

후진을 위해 선생이 지난 80년대 초반 학교 일선에서 퇴임한 때인 1987년 어느 날 당시 노건일 충북지사가 전화를 걸어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아 달라”며 선생의 ‘아킬레스건’인 애향심을 자극했다.

당장 사표를 쓰고 청주로 내려온 선생은 체육회 사무직원들을 모두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보내 세심하게 뒷바라지하도록 했다.

선생 스스로도 매일 도내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번갈아 돌며 선수들을 살폈다.

그 결과 전국체육대회에서 만년 꼴찌에 머물었던 충북이 1990년 청주 대회에서는 종합3위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기록했다.

또 당시 체육계 예산이 부족하자 선생은 운보 김기창 화백 등 지역 출신 유명 화가 및 서예가들에게 서화를 부탁, 연하장을 만들어 팔아 22억원을 벌었다.

이 가운데 18억원은 충북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경비로 쓰도록 교육감에게 전달했고, 2억원은 체육고등학교 건물신축 비용으로, 2억원은 도 체육회관 건립 기금으로 내놨다.

선생 춘추 62세인 1991년에는 경부고속철도 본선역 충북권유치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고향발전을 위한 시민운동 분야에서 힘겨운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때 선생은 감옥 가는 것을 각오하고 “만약 경부고속철이 충북 지역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경부선에 엄청난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위해를 가하겠다”는 공문을 정부에 보내면서까지 싸워 마침내 8년 만에 승리했다.

더욱이 1994년에는 ‘문장대ㆍ용화온천 개발저지 충북도민대책위원장’을, 이듬해인 1995년에는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이라는 중차대한 현안을 동시에 떠안고 10여년 동안 시위, 중앙 부처 방문, 재판 참석, 주민 설명회, 대 언론 성명서 발표 등의 끈질긴 투쟁을 벌여 끝내 승리를 쟁취해 냈다.

이렇게 강골로 숨가쁘게 살아 오면서도 선생은 문집을 6권이나 냈고, 풍으로 몸져 누운 아내를 10년간이나 병수발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선생은 지금도 “일은 하면 할수록 생기는 거야(生事事生 省事事省)” “애향이란 것은 자신의 조상과 후손에게 축복을 주는 봉사야”라는 화두를 던지며 고향 후학들의 나태를 일깨우고 있다.

/ 박종천기자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