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조선시대 화폐 대명사인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유통시킨 인물이 우리고장 충주시 소태면에 묘가 있는 허적(許積·1610∼1680)이라고 밝힌 바 있다.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전에 따라 상평청(常平廳) 설치를 건의한 인물이 있었다. 1633년(인조 11)의 김신국(金藎國)이라는 인물이다. 상평통보는 숙종 때 처음 발행돼 조선후기까지 같은 것이 유통된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상평통보는 그 모양과 유통 형태에 따라 무배자전(인조 11년), 단자전(숙종 4년), 대형전(숙종 5년), 중형전(영조 28년), 소형전(순조 7년), 당백전(고종 3년), 당오전(고종 20년) 등 7종류로 구별되고 있다. 무배자전은 뒷면에 문자가 없어서, 단자전은 뒷면 상부에 약자로 주전소를 표시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숙종-순조 연간에 상평통보가 대·중·소형으로 구분되는 것은 크기가 작아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시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면이 있다. 왜 동전 크기가 작아졌는냐는 점이다. 원료 문제였다. 조선 조정은 상평통보 재료인 구리와 주석의 확보가 쉽지 않게 되자 갈수록 엽전 크기를 작게 만들었다. 김신국은 화폐의 필요성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인조
서민경제의 주거래 수단은 뭐니뭐니 해도 동전, 지폐 등으로 구성되는 화폐다. 우리나라의 화폐는 조선 숙중대 들어서야 비로소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앞서 고려 조정도 이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고려 조정은 곡식, 면포 등 현물로 경제적인 거래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고 있었다. '숙종 7년에 비로소 관청을 설치하여 돈을 주조하고 해동통보(海東通寶)라는 글자를 표면에 새겼다. 드디어 종묘에 고하고 처음으로 돈을 썼으며 (…) 민간에 무역을 허락하여 돈의 편리함을 알게 하였다.'- 인용문 중의 숙종은 조선이 아닌 고려의 임금, 그리고 해동통보가 주조된 숙종 7년은 1102년이 된다. 그러나 해동통보는 오래 유통되지 않았다. 고려 백성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현물을 매매수단으로 선호했다. 고려사에 등장해 있는 내용을 조선후기 이긍익(1736-1806)이 연려실기술에 다시 수록했다. 연려실기술은 '이때 화폐를 쓰게 한 지가 이미 3년이나 되었으나 백성들이 쓰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이 있었는데, 예종(睿宗)이 즉위하자 또 폐지하였다'라고 썼다. 조선 조정도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선조-광해군 연간의 명신으로
산림청은 "지리산 둘레길 완전 개통 기념식이 25일 오전 10시부터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 경계인 지리산 밤재에서 열린다"고 23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지리산 권역 5개 시·군 주민과 공무원,산림청 관계자,등산·레저 분야 전문가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행사에서 산림청은 둘레길 조성에 공헌한 5개 시·군 및 행사를 주관한 사단법인 '숲길' 관계자에게 감사패를 준다. 개통식에 맞춰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을 걸은 둘레길 이음단원 16명에게는 사단법인 숲길이 완주 인증서를 준다. 지리산둘레길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총거리 274㎞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전북 남원시(46㎞), 전남 구례군(77㎞), 경남 함양군(23㎞)·산청군(60㎞)·하동군(68㎞)의 3개 도,5개 시·군,20개 읍·면 117개 마을에 걸쳐 있다. 지리산둘레길 이용 정보는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www.trail.or.kr)나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055-884-0850)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대전/최준호기자 penismight@paran.com
얼마전 '이화령 구간 복원 기공식'이 현장에서 열렸다. 금년 10월 복원공사가 완료되면 연장 46m, 폭 14m의 생태너널이 구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일제에 의해 끊어졌던 우리 민족의 대동맥을 이어 민족정기와 얼을 되찾게 됐다"는 요지의 축사를 한 것으로 언론이 보도했다. 민족 정기를 거론할 때 그 대척점에 서는 것이 이른바 '일제의 만행'이다.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받았다 △고개를 뚫어 혈맥을 잘랐다 △지명을 개명했다 등의 내용이 단골로 뒤따른다. 이화령에서의 일제 만행은 두번째 유형인 '고개를 뚫어 혈맥을 잘랐다'로 설명됐다. 일제의 만행은 상당부분 사실이고 문헌이나 행정기록 등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가 민족 정기를 끊으려는 의도에서 이화령을 신작로 형태로 개통시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이화령이 한반도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일제 강점기가 아닌 고려시대다. 고려사는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것인 만큼 고려시대에 작성됐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려사는 조선 초기 김종서(金宗瑞) ·정인지(鄭麟趾) 등이 세종대왕의명을 받아 기술했다. 고려사에 이화령(梨花嶺)의 또 다른 표
조선시대 관청에서는 과거 부임하였던 전임관, 수령 등 고을 벼슬아치의 명단을 기록했다. 이를 환적(宦蹟)이라고 불렀다. 안책(案冊), 수령안(守令案) 등도 같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환적을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에 청주수령을 역임한 인물은 총 25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15~16세기 조선 전기의 청주수령은 총65명인 가운데 이중 44%인 28명이 문과 급제자로 조사됐다. 반면 무과 출신자는 4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5세기 청주수령 중에서는 문과 출신자가 7할에 가까우나, 16세기에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4할대로 떨어졌다. 반면 16세기에는 무관 출신이 7.7%에 이르고 음관도 6명으로 11.5%에 이르는 등 15세기에 비해 문관의 비율이 급락했다. 이밖에 17~19세기의 청주 수령직은 194명중 140명이 문과 출신으로, 72.2%를 차지하였다. 이에 비해 음관 출신은 53명으로서 27.3%, 무과 출신은 1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들어 국가 기강이 문란해 지면서 음관 출신자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현종 연간에 청주목사를 지낸 인물 중에 이만영(李晩榮·1604∼1672)이 있다. 그는 임영대군(臨瀛大君)의
1982년 3월 하순에 청주시 운천동 속칭 산직말 입구에서 오래된 비석 하나가 발견된다. 바로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 134호로 지정된 '운천동 신라사적비'다. 비(碑)는 정방형의 형태로 3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화강암 재질의 비는 높이 92㎝, 너비 91㎝, 두께 15~20㎝ 등의 제원을 지녔다. 발견 당시 비는 윗부분은 절단되고 아래 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운천동 신라사적비는 마멸이 심해 비문 내용이 완벽히 판독되지 않고 있다. 다만 비문 중에 '壽拱二年歲次丙戌'(수공이년세차병술)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壽拱'은 중국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절에 사용하던 연호이다. 따라서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에 세워진 사적비로 확인됐다. 따라서 문화재 명칭도 '운천동 신라사적비'다. 비문은 완전한 문장으로 해석되는 것은 거의 없으나 불교찬양, 왕덕 칭송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신라 중심의 세계관도 엿보인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설의 위치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비문 판독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멈춰서 있다. 대신 이 비가 3면 비인가, 아니면 4면 비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해소되고 있지 않다. 지난 1989년에
송강 정철의 직손 중에 정호(鄭澔·1648∼1736)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을사환국으로 파직돼 문외 출송됐으나 말년에는 영의정에까지 오르는 등 정치적 부침이 심했다. 그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장암사당'이 우리고장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묘소는 괴산군 불정면 화영산에 위치하고 있다. 장암사당이 창동리에 자리잡는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충주지방 최초의 서원은 1582년(선조 15)에 건립된 팔봉서원으로 김세필, 이자, 이연경 등을 제향했다. 이때까지 팔봉서원은 정치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1660년(현종 1) 1차 예송논쟁이 일어났다. 중앙정계에서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은 대립은 향촌의 사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충주지역의 남인계는 서원 건립을 통해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남인계 인물인 한치상(韓致相·?-?)은 팔봉서원을 자파의 서원으로 간주하고 1672년(현종 13) 사액을 상소했다. 이 과정에서 노수신이 추향됐다. 이로서 팔봉서원에 정치색이 입혀졌다. 앞서 1661년(현종 2) 충주지역의 남인계는 운곡서원을 건립, 스승인 정구(鄭逑·1543-1620)을 모셨다. 정구는 1602년(선조 35) 충주목사로 부임 후 서당을 열어 충주의 유학들을 지도한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천안 삼거리 지나도 / 쑤새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발꼬락이 또 한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문둥병 시인 한하운(韓何雲·1920~1975)이 1949년 '신천지'에 발표한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라는 시의 일부다. 소록도로 가는 길이 마치 광야의 고행처럼 묘사돼 있다. 다음 시 '벌'은 일반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한하운의 또 다른 시다. '죄명(罪名)은 문둥이... / 이건 참 어처구니 없는 벌이올시다. // 아무 법문(法文)의 어느 조항(條項)에도 없는 / 내 죄를 변호할 갈이 없다…' 시 '소록도 가는 길'에서는 '붉은 황토길'과 '쑤새미 같은 해'가 공간과 시각적으로 강렬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반면 시 '벌'은 '내 죄를 변호할 갈이 없다'는 표현에서 보듯 천부인권적인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문둥병의 본래 이름은 발견자 한센(G.A. Hansen)의 이름을 딴 '한센씨병'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한센씨병을 '나병'(癩病) 또는 '나질'(癩疾)이라고 불렀다. 실
북한 황해도 동북부에 곡산이라고는 곳이 있다. 지명사전은 곡산에 대해 '고구려 때에는 십곡성(十谷城)이라 불렸고, 통일신라 때는 영풍군(永豊郡), 고려시대에는 곡주(谷州)로 불렸다'고 적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지명의 변동이 심했다. 태조 때는 현비 강씨의 고향이라고 해서 '곡산도호부'로 승격했다. 현비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첩이었지만 본처 한씨가 일찍 죽으면서 조선 왕조의 첫번째 정비가 됐다. 1400년 이방원이 조선의 세번째 왕위(태종)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골육상쟁으로 얼룩졌다. 방원은 현비강씨의 두 아들인 방석과 방번을 모두 죽인 뒤 보위에 올랐다. 이른바 1차 왕자의 난이다. 태종의 등극은 강씨의 고향에도 영향을 미쳐 곡산도호부는 '곡산군'으로 격하됐다. 곡산 출신으로 또 다른 유명 인물로는 연사종(延嗣宗·1360∼1434)이 있다. 그는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와 행동을 함께 했다. 2차 왕자의 난 때는 방원의 편에 가담해 방간을 제압하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그 결과,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됐다. 현재 연사종은 곡산연씨의 실질적인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세종대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오면서 의서(醫書)와 약재를 가져오기도
현재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는 도유형문화재 제 134호로 지정돼 있다. 오랫동안 빨래판 용도 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멸이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 비에서는 '元泰'라는 사람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사학자들은 "신라 귀족의 한 명으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金元泰'라는 인물이 원천동 신라사적비의 '元泰'임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귀족들은 태반이 '경주김씨'였기 때문에 성 표기가 종종 생략됐다. 김원태는 성덕왕의 전비(前妃)인 성정왕후(成貞王后)의 아버지로, 진골의 성분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정왕후는 716년(성덕왕 15)에 출궁(出宮)을 당하게 된다. 이 대목을 학자들은 귀족간에 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김원태 일족이 패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원태를 703년(성덕왕 2) 7월에서 705년 1월까지 중시(中侍·오늘날 국무총리)를 지냈던 원문(元文)과 같은 인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원문은 704년에 죽었으므로 성정왕후의 출궁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잘 맞지 않는다. 이런 '원태'가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에 등장해 있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된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 우리고장 청주에 서
음성 황새가 밀렵꾼 총에 희생된 것은 지난 1971년 4월이었다. 그 이전까지 음성 생극에 황새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특종 보도한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六·二五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황새가 다시 충북 음성군에서 서식하고 있음이 본사 천연기념물실태조사반에 의해 확인되었다.'- 당시 동아일보 특종은 한 독자의 제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아일보는 이 부분을 '이번 황새의 번식을 확인하게 된 것은 독자 윤용진 씨가 본보에 연재해 온 천연기념물 보호캠페인 기사를 읽고 자기의 고향에 황새가 있다고 본보에 알려와 본사 천연기념물 생태조사반이 두차례에 걸친 답사 끝에 황새를 촬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라고 썼다. 계속해서 동아일보는 '우리나라에 황새 번식지로는 충북 진천군 이월면과 음성 대소면이 천연기념물 황새번식지로 지정되었으나 이미 六·二五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다만 이곳 생극·금왕 일대에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몇년후 한 언론인은 황새 특종기사를 소재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특종 순간의 희열이 잘 표현돼 있다. '학계의 도움의 받아 그것이 (천염기념물) 199호임을 확인하고 촬영에 성공해서 사진특종을 보도한 것이 P
황새의 본래말은 '한새'로 이때의 '한'은 '크다'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황새는 '큰 새'라는 뜻이 된다. 황소할 때의 '황'도 본래는 '한'으로, '큰 소'라는 의미다. 황새는 우리나리에서는 비교적 흔한 새였다. 때문에 그림이나 자수의 주요 소재가 됐다.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는 '송단(松檀) 황새' 또는 '관학(관은 觀의 見대신 鳥)'이라고 불렀다. 옛문헌에도 황새는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고려 문호로 일컬어지는 이규보는 '사평강(沙平江) 가에서 우연히 읊다'라는 시에서 황새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돛 내린 강어귀에 오래도록 머뭇거리면서/ 맑은 물결 굽어보며 말없이 수염만 만진다 / 언덕에 우거진 풀 겨우 황새 숨을 만하고 / 갯가에 오는 밀물 오리를 마중하는 듯…'- 참고로 '東國은 '고려', '李相'은 '이씨 성을 가진 재상' 즉 이규보 자기 자신을 일컫는다. 세종실록에 큰 새와 뱀에 얽힌 얘기가 쓰여 있다. 이때의 큰 새는 역시 황새를 의미한다. '북방 야인 지방에 사람 천만 명을 잡아먹은 뱀이 있는데, 사람의 피가 뱀의 창자 속에서 단단히 엉키어 돌이 됩니다. '관(황새 지칭) '이라고 부르는 큰 새가 있어서, 그 뱀을 잡아먹고 그 돌을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