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본보가 보도했던(5월 27일자) 청주 북문로2가의 나말여초 건물지에서 금속을 녹일 때 사용하는 도가니가 조각(片) 형태로 발굴됐다. 이에 따라 당시·그 공간에서의 도가니 용도가 무엇이었을까에 전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는 지난달 31일 발굴 장소인 청주시 북문로2가 78-10에서 문화재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 설명회와 지도위원회를 개최했다. 이와 관련 이날 공개된 유물 중에는 연화문 화당(수막새), 청자편, 점멸문 도기편 외에 도가니편도 1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가니 편은 △두께는 1㎝ 안팎 △재질은 도기 등으로, 두께가 매우 두껍기 때문에 여느 도자기 편과는 확연히 구분됐다.(사진) 도가니는 금속을 녹일 때 사용하는 내열성 용기로, 용도에 따라 점토·혹연·석영·도자기 등으로 만들어진다. 주 용도는 쇳물을 주조틀에 옮겨 부을 때 사용하고, 이때 표면이 매우 뜨겁기 때문에 집게를 이용하게 된다. 도가니가 이같은 용도를 지님에 따라 당시·그 공간에서의 용도가 무엇이었을까에 전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멀지 않은 곳에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제41호)의 철제 지주가 존재하고 있으나 도가니의 크기로
31. 야스쿠니신사에 세운 인도인 기념비 (下) ■ 보스, 동남아 일본군 점령지에서 활동 보스는 네타지(Netaji)라고 불렸다. '존경하는 지도자' 또는 '총통'이란 뜻이다. 그는 동남아에서 다시 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싱가포르 등지에서 항복한 영국군의 인도병사들이 인도국민군(INA)으로 재편되었는데, 이를 인수받아 자유인도군이라고 했다. 1943년 6월 5일 싱가포르에서 행한 사열식에는 도조 총리가 참석하여 보스의 위세를 높였다. 8월 21일 '자유인도임시정부'를 결성하고 수상과 전쟁장관을 겸했다. 인도 교민사회가 임시정부의 토대였다. 이제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에는 점령지인 만주 내몽고(蒙疆연합자치정부) 남경정부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와 함께 옵저버로 자유인도임시정부가 들어왔다. 도조는 일본 해군이 점령한 인도섬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를 선물로 주었다. 안다만 섬을 방문한 보스는 꿈에 부풀어 독자 화폐와 우표를 발행하는 등 정부 수립을 구상했다. 증오가 극대화되면 판단력이 상실될 수 있다. 보스가 그러했다. 보스의 적은 오로지 영국이었다. 그리고 적의 적은 모두 아군으로 보았다. 보스는 단순하였다. 일본군을 앞세워 인도에 들어가는 것을 독
오송 뷰티 세계 박람회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으나 '미처 다하지 못한 메이컵 이야기'가 남아 있다. 전회에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까지의 메이컵사를 설명한 바 있다. 1930년대는 물자라 귀했던 시절이라 가정을 방문해 '분매' 형식의 판매를 했다. 분매(分賣)는 한 부분씩 나눠파는 것을 말한다. 지금도 어떤 아이스크림은 나눠서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당시 화장품도 그렇게 덜어서 팔았던 적이 있다. 파는 측은 용기를 아껴서 좋고 소비자는 저렴한 값에 '구리무'를 사서 좋았다. 이때 유행한 것이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동동구리무'로, 이 역시 크림을 큰 통에 넣고 다니면서 덜어서 팔았다. 6.25 이후인 1950년대는 라디오시대로 TV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여성들은 'AFKN'이라는 주한미군 tv를 통해 서구여성의 화장미를 엿볼 수 있었다. 'American Forces Korea Network'(주한미군방송)의 약자인 'AFKN'은 공중파 방송만 있던 시절에는 '2번' 채널을 통해 볼 수 있었으나 화질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공부에 관심이 있던 학생들은 번쩍이는 화면을 보면서 청운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1950년에는 '여원'이라는 여성잡지가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 주악상(奏樂像)이 존재할까, 안 할까.주악상은 날개가 달리거나 휘날리는 옷자락을 입은 천인(天人)이 비파 등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말한다.한양대 황미연 씨가 지난 90년대 중반 '석조물에 나타난 주악상에 관한연구;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그는 이 논문에서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도 포함된 전국 21개의 석조물 주악상을 표로 설명했다. 논문은 △각연사 비로나자불은 9세기 무렵에 만들어졌고 △그 비로자나불 중대석에 도상으로서의 주악상이 존재한다고 보다 상세하게 서술했다.각연사는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 고찰로,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비로자나불은 보물 제 433호로 지정돼 있다.그러나 또 다른 음악사 연구가인 김성혜 씨는 지난해 발표한 '통일신라 음악고고학 자료의 재조명'(한국음악사학보 제 48권) 논문에서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는 주악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그는 석불 중대석에는 주악상이 조각돼 있지 않고, 바로 아래 하대석에 인물상이 새겨져 있으나 주악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논문은 보다 구체적으로 △중대석 8면에는 빙 돌아가
청주시 북문로에서 나말여초 무렵인 8~10세기의 관아(官衙) 건물지가 발견돼 지역 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통일신라 서원경(西原京)과도 관련이 있어, 당시 치소(治所) 건물지의 일부일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충북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은 이달 초순부터 최근까지 주상복합건물 신축 예정지인 청주시 북문로2가 78-10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관아나 사찰 등 격이 높거나 규모가 큰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적심석(積心석)이 각각 4칸과 2칸 규모로 발굴됐다. 또 역시 격이 높은 건물에만 사용되던 연화문 와당(수막새)도 적심석 유구 주변에서 함께 출토됐고 청자편, 점멸문편 등 다량의 자기와 도기편도 수습됐다. 이와 관련, 지역 역사고고학계는 적심석과 와당이 함께 출토된 점을 들어 건물지가 서원경 치소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발굴기관 관계자는 "지하 1~1.2m의 문화층에서 수습한 연화문 와당과 점멸문 도기편은 통일신라 말기로 편년되는 것들"이라며 "여기에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임을 감안할 경우 해당 건물지가 서원경 치소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러나 몽골 침입기 이후인 고려후기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비누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석감'과 '조두'라는 세정제를 사용했다. '석감'(石齒+僉)은 명아주를 태운 재에서 추출한 잿물에 밀가루 등을 섞어 만들었다. 그러나 석감은 세안이 아닌 세탁용으로, 옷의 때를 뺄 때 끓는 물에 풀어서 사용했다. 이에 비해 조두는 인체에 사용했던 세정제의 하나로 팥을 미숫가루처럼 곱게 가루를 내 세수할 때 문질렀다. 조두를 만들 형편이 못되는 집에서는 콩깍지 삶은 물, 창포 우린 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연산군일기에는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복세암(福世菴) 중들이 세수하는 조두를 해사(該司)에서 진배(進排)하는데, (…) 중들이 세수하는 것이 국가에 무슨 관계가 있어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조선은 유교가 국시였던 국가였기 때문에 스님들이 세수하는 것까지 경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같은 비누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18세기초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2년간 억류생활을 했던 네덜란드인 하멜(Hendrik Hamel·1630~1692)었다. 그러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통된 것은 개화기 때였다. 특히 당시에는 비누가 매우 비싸 쌀 한말이 80전인데 비해 비누 1개 값은 1원이었다. 때문에 개화기 무렵의 비누는 부유
7.80년대만 해도 외판원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해 화장품을 판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직업이 있었다. '매분구'(賣粉女+區'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외출이 오늘날처럼 자유스럽지 못했으므로 일상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외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방문 판매원인 매분구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화장품을 판매했다. 이와 관련, 대부분의 사료들이 숙종대에 매분구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매분구 이야기는 성종대에 처음 등장한다, 다음은 사헌부 대사헌 이칙이 아뢰는 말이다. '그 이른바 망오지란 분(粉)을 팔며 다니는 계집으로서, 남의 재물을 받아서 조사에게 뇌물을 행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 자입니다.'- 인용문의 내용으로 봐 망오지는 분을 파는 여자 신분으로 당시 고위관료에게 뇌물로 어떤 청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상대는 권중린이라는 인물이다. '이제 망오지(亡吾之)의 뇌물을 행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또 들으니 그녀가 늘 권중린의 집에 드나든다 합니다. 권중린이 간원의 장(長)이 되어서 뇌물을 행하는 계집으로 하여금 그 집에 드나들게 하고, 또 그 말을 들어서 청탁을 하였으니, 권중린을 국문하기에 청합니다."- 조선시대에
1백년전은 근대 문명의 기운이 막 싹트기 시작한 때로 묘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시기다. 상인 등 당시 충주의 민초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충주사학 최근호(제 27집)에 게재된 충대 대학원 정경임(박사 과정) 씨의 논문이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본래 '민초'(民草)는 학문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의미와 이미지 전달을 쉽게 하기위해 그대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상당기간 동안 방치됐던 충주읍성은 1869년(고종 6) 당시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해 개축된지 10개월 만인 11월에 완공됐다. 그러나 1896년 동학혁명군과의 전투과정에서 4개의 문루와 수문청(守門廳)이 소실됐고, 그후 일제에 의해 충주 시가지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철거됐다. 정씨 논문의 근거 자료가 된 충주 양안(量案·토지대장 일종)은 그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읍치(邑治) 외에 민가, 농지, 산, 川(충주천·교현천), 渠(도랑), 原(언덕), 堤(둑), 성벽, 성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정씨의 논문에 따르면 당시 충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구 충주읍성 내부에 해당하는 공간인 '삼부대'(三部垈)이다. 삼부대는 전체필지 148개 가운데 관아와 민가가 114필지인 반면 농지가 별로 없다는
속보= 미호천 작천보의 용출현상이 며칠 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물받이공 일부 배수공에서는 돌조각과 굵은 모래도 발견되고 있다. 이에따라 파이핑 현상과 양압력 소산 주장은 보는 시각에 따라 모두 맞을 수 있지만, 보 밑둥으로 하천수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안전검사기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는 지난 14일 내놓은 브리핑 자료를 통해 '배수구는 상하류 수위차에 의해 발생한 양압력을 소산시켜 구조물의 안정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설치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토목공학 이론상 양압력(揚壓力·uplift pressure)은 콘크리트 보의 기저면 또는 내부의 수평타설 이음에 작용하는 간극수압을 말하는 것으로, 상하류 수위차에 의해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상하류 수위차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본보가 지적한 파이핑 현상으로, 도는 내키지 않지만 보 밑둥으로 상류의 하천수가 줄줄 새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본보가 지난 17일 작천보 물받이공 현장을 다시 찾은 결과, 용출수 현상이 1주일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1주일 전에는 4개 배수공 중 2개에서만 강한 용출현상을 나타냈고 나머지는 약한 용출현상을 보였으나 이날은 모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동물 Ⅰ급으로 지정된 토종여우 4마리를 소백산 국립공원에 추가로 방사하기로 했다. 19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현재 자연적응 훈련을 받는 있는 토종여우 개체 중 무리지어 잘 몰려다니는 4마리를 최종 선발, 오는 9월 소백산 국립공원에 방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공단측은 작년의 방사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소백산 국립공원 내 여우서식 예상지역에서 불법 덫 등을 미리 수거하고 또 밀렵 차단을 위해 '명예 여우 보호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첫 사업으로 암수 1쌍의 토종여우를 방사했으나 암컷은 백두대간 남쪽사면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민가 아궁이에서 폐사한 채 발견됐다. 또 수컷도 백두대간 북쪽사면인 단양군 구인사 부근에서 불법엽구의 일종인 창애에 치여 끝내 다리를 절단하는 등 첫 방사 사업은 실패한 바 있다. 공단 이배근 부장은 "금년 방사에는 충북과 경북지역 백두대간 주민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2020년까지 토종여우를 50마리 이상 방사할 게획"이라고 밝혔다. 이 부장은 충북대를 졸업했다. / 조혁연 대기자
속가와 마찬가지로 불가에서도 이름에 돌림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행을 중시하는 조계종단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법주사는 이른바 충북 불교의 종가이자 금오문중의 총본산으로, 그 상좌들 사이에는 '월자'(月字) 돌림자를 법명으로 가진 스님이 많다. 불기 2557년을 맞아 법주사 금오문중의 월자(月字) 항렬 스님들의 근황과 그곳에서 파생된 또 다른 돌림자을 살펴본다. 생전의 금오(金烏) 대선사는 수행을 위해 거지를 찾아가 걸인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참선하지 않은 자는 중이 아니라", "무념무종"(無念無宗) 등의 말을 남기고 1968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세수 73세, 법랍 57세로 입적했다. 명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과 같이 그의 문하에서는 한국 현대불교를 이끌었거나 이름을 날린 스님들이 많이 배출됐다. 이른바 월자 항렬인 월산, 월남, 월주, 월성, 월탄스님 등이 이 범주에 속하고 있다. 월자 항렬이 분명하나 처음부터, 아니면 중간에 어떤 사정으로 인해 '非월자' 이름을 갖는 경우도 있다. 범행, 탄성, 이두, 혜정, 정일스님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월자 항렬의 맏상좌(수석 제자)였던 월산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과 불국사 조실을 지냈다
속보= '물받이공의 용출현상은 배수공이 양압력을 소산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상적인 현상이다.' '양압력 소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보 밑둥으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본보 보도로 촉발된 미호천 작천보의 파이핑 현상 유무 논쟁이 중앙 환경운동단체로까지 확산됐다. 본보는 지난 5월 13일자 1면에서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작천보(금강 10공구)에 파이핑 현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충북도는 이에 대해 이날 기자 브리핑을 자청, △보 물받이공의 용출수 △설계 부분 △향후 안전성 등에 대해 설명했다. 도 관계자는 "보 물받이공의 용출수는 설계 의도에 따른 정상적인 현상으로 현장 확인 결과, 용출수가 양압력을 감세시켜 구조물 안정을 제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당초 설계 내용에 대해서는 "구조물에 작용하는 양압력 자체를 감세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국토부에서 발간한 '하천공사 설계실무요령'에 따라 물받이공을 2열 2m 간격으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향후 안전성도 언급, "지금과 같은 용출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작천보의 구조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회에 마한시대 우리고장 사람들의 미의식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뒤를 이은 백제 사람들의 화장문화에 대한 얘기는 중국 사서인 '위서(魏書)'에 쓰여 있다. "분은 바르되 연지를 바르지 않았으며 머리는 변발을 하여 뒤로 늘여 뜨렸다." 이것으로 봐 백제의 여자들은 짙은 화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연지를 찍은 여자가 그려져 있는 고구려 벽화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물론 고려시대 여성들도 화장을 했다. 그 모습을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서긍(徐兢)'이라는 인물이 적었다. 그는 고려에 한 달 동안 머문 기억을 바탕으로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썼다. "고려 부인들은 향유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않고 눈썹은 긴데 검은 비단의 몽수를 쓰며 이 비단은 3폭에 길이 8척이나 되며,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을 땅에 끌리게 한다." 고려시대에는 면약(面藥)이라는 화장품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피부에 바르는 크림의 일종으로, 역시 고려도경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면약호는 오직 정사ㆍ부사ㆍ도할관ㆍ제할관의 자리에만 은제(銀製)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동으로 만들었다. 둥근 배에
충북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4명이 새롭게 발굴됐다. 또 조동식 선생이 3.1 봉화만세운동을 벌인 곳은 청원 강면내 태성리 뒷산이 아닌, 산단리 망덕산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소장 박걸순 교수)가 13일 오후 학내 개신문화관에서 '충북의 봉화만세운동과 조동식의 항일투쟁'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충북에 연고를 둔 여성독립운동가가 지금까지 알려진 어윤희(충주) 외에 4명이 더 존재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충북 연고자는 총423명으로, 여기에는 유관순과 함께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어윤희(魚允姬·충주출신)도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박 관장은 이날 "어윤희 외에 경성복심법원 판결문, 중외일보, 경기도 경찰부문서 등의 자료를 통해 고강순, 민금봉, 박소순, 박신삼 등 4명의 충북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를 추가로 발굴했다"고 밝혔다. 그는 "3개 자료에 실린 내용을 당시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 카드와 대조를 한 결과, 이들 충북출신 4명의 여성이 독립운동을 벌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고강순에 대해 경성복심복원 1942년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작천보(금강 10공구)에 '파이핑 현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파이핑 현상이 사실이라면 이를 방치할 경우 보의 전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등 구조물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충북도는 120여억원(전액 국비)을 들여 1962년 설치된 농업용 고정보를 철거하고 지난 2011년 11개월의 공기 끝에 수문 개폐식 가동보인 현재의 작천보(청주시 원평동~오창읍 신평리 연결)를 완공했다. 총 길이 320m, 높이 3m 제원의 작천보는 △홍수위를 1.1m 낮추고 △보상류 퇴적·오염물을 제거하며 △주변 농지 210㏊에 11만톤의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으로 기대돼 왔다. 그러나 완공된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작천보의 물받이공에서 구조물 아래의 물이 지상으로 용출하는 파이핑 현상이 4개 지점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현재 4번과 5번 수문 사이에서 2개의 큰 용출수가 관찰되고 있고, 그 옆 2곳에서도 작은 용출 현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1개 지점에서만 용출현상 나타났으나 금년 상반기 들어서는 4개로 증가, 물받이공 아래에서 토사가 씻겨 패이는 세굴(洗掘) 현상이
한국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이승만(李承晩), 정순만(鄭淳萬), 박용만(朴容萬) 은 '삼만'으로 불리운다. 세 사람은 출신지는 각각 다르나 일정기간 재미 동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중 충북 청원 옥산면 덕촌리 출신의 정순만은 지난 1911년 불의의 사고로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그에 앞서 정순만은 1905년 독립운동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만주 용정으로 망명하면서 삼만의 한 명인 박용만에게 자기아들 양필(당시 12세)의 뒷날을 부탁한다. 그렇게 이역에서 성장한 정양필은 대학 졸업 후 기업을 차리는 등 경제적으로도 성공한다. 그의 친손자 러썰 모이(Russel Moy) 씨가 조부가 도미한 후 108년 만에 증조부(정순만)의 고향 청원 옥산과 관련 자료가 집필된 충북대를 찾았다. 모이 씨의 증조부 고향 방문은 사전에 전혀 계획되지 않은 것으로, 말 그대로 극적으로 이뤄졌다. 모이 씨는 외할머니 이화숙(정양필 부인)의 체취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이화여고를 찾았다. 이화숙은 이화여전 제 1회 졸업생이자 김규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인물로, 지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날 당시 이화여고에서는 충북대 미생물학과를 정년 퇴임한 이
얼굴 화장에 대한 사료는 영정 등 그림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고장에 전통시대의 여성얼굴이 초상화로 남아 있다. 모산본 하기는 하지만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 문효영당에 하연(河演·1376~1453) 부부의 초상화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 우왕과 단종 연간을 산 하연은 대사헌으로서 조계종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양종(兩宗)과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는 등 조선 전기의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또 세종임금 때 이조를 맡아 공세법(貢稅法), 즉 연분9등법과 전분6등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개인 용무의 방문객인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는 등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 지기도 했다. 초상화에서 성산이씨 하연부인은 옅은 화장기가 있는 얼굴에 눈썹을 그렸고 입술에는 연지를 칠했다. 지체 높은 귀부인답게 표정은 근엄하고 옷감에는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문화가 급변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기다. 이때는 이른바 신식문물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이기 때문에 곡절있는 사연이 많다. 우리고장 충주
오송 뷰티 세계박람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뷰티'가 의미하는 '화장'은 이른바 수입된 표현으로, 개화기 때 들어온 일본식 한자다. 조선시대에는 '화장'이라는 단어보다 '丹粧(단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다. '분단장', '칠보단장' 등이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조선전기의 실록은 전국의 미색 처녀를 선발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백성(百姓) 각호(各戶)에 만일 자색(姿色)이 있거든 일체 모두 채택(採擇)하여 정결(精潔)하게 빗질하고 단장(丹粧)시켜고, (…) 만일 여자를 숨기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거나…'- 조선시대에는 이 단장을 담장(淡粧), 농장(濃粧), 염장(艶粧), 응장(凝粧), 야용(冶容)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담장'은 피부를 깨긋하게 다듬는 정도를, 그리고 '농장'은 색체 화장이 조금 들어가는 경우를 말한다. 이밖에 '염장'은 요염함이 드러나도록 화장을 한 것, '응장'은 혼례식 때 신부의 화장을 말한다. 지금도 신부의 화려한 화장과 치장을 '응장성식(凝粧盛飾)'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밖에 '야용'은 억지로 아름답게 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야하다'는 표현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 화장을 하려면 화장대가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이
충북도내에서 백로류가 둥지를 가장 많이 틀고 있는 곳은 음성군 대소면 태생리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청주 흥덕구 송절동Ⅱ 서식지에는 중대백로, 황로, 쇠백로, 왜가리 등 모든 종류의 백로류가 둥지를 틀고 있어 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11년부터 4~6월 번식기에 맞춰 전국 백로·왜가리 집단 번식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충북에는 전체 18개의 백로류 집단 번식지에 총 3천826개의 둥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암수 각 쌍이 둥지를 만드는 것을 감안할 경우 도내에는 7천562마리의 성체 백로류가 이 기간 동안에 서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둥지 수가 많은 곳을 순위별로 살펴보면 충주시 동량면 용교리 829개,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Ⅱ 585개, 흥덕구 송절동Ⅰ 369개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송절동 Ⅰ·Ⅱ는 같은 동에 위치하나 생태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아 별도의 서식공간으로 처리했다고 국립환경과학원측은 밝혔다. 나머지 서식 규모를 살펴보면 보은군 탄부면 덕동리 265개 음성군 읍성읍 신천리 230개,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216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단양군
전회에 불비상에 등장하는 아미타불을 언급한 바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즉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파하는 부처를 말한다. 사찰 전각에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아미타전 등의 이름이 붙어 있으면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고 보면 된다. 불가에서는 선업(善業)을 쌓으면 그 선과(善果)의 결과로 연꽃을 통하여 극락왕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의 극락세계는 삼악도(三惡道)의 불행과 네것과 내것이 없고 그리고 수명이 '백천억 나유타의 겁으로도 셀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삼악도는 살아서 지은 죄과로 죽은 뒤에 간다는 지옥도(地獄道)와 축생도(畜生道) 그리고 아귀도(餓鬼道)를, 1나유타는 1천억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전시중인 8개의 불비상은 백제가 망한 후 지금의 세종특별시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점이 연기파 불비상의 최고 주목거리가 되고 있다.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곳의 하나가 '주류성'(周留城)이다. 약간의 이견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운주산성을 주류성으로 보고 있다. 실제 연기 사람들은 운주산 정상에 '백제의 얼 상징탑'을 세우고 매년 백제인의 혼령을 위로하는 고산제를 지내
27. 원자폭탄과 히로시마성의 5사단 ■ 원폭 맞은 지하통신실 히로시마성 안에 일본군이 작전사령실과 지하통신실로 사용하던 벙커 잔해가 그대로 있다. 대본영 터 정면 아래의 낮은 지대이다. 원폭 투하 직후에 찍은 사진 안내판이 처절했던 말로를 보여준다. 주변 위장숲의 나무들은 폭풍의 열기가 지나가 타버린 숯처럼 변했고 앙상하게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시멘트 벙커 위에 올라가자 환기구와 함께 벙커 속의 방과 방을 막은 구조물이 나온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울컥해진다. 이 아래서 근무하던 통신실 장병들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동시에 몰살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동안 풀밭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패전할 때 히로시마성은 유수5사단사령부를 겸한 쥬고쿠군관구(中國軍管區) 사령부였다. 시고쿠(四國) 지역은 빠져나가 별도의 군관구가 설치되어 히로시마, 야마구치, 오카야마 등지를 관할했다. 1945년 2월 본토결전을 결정하고 작전부대와 관구부대를 나누어 방면군사령부 예하에 두고 지휘했는데 쥬고쿠군관구는 15방면군에 속했다. 관내 각 부대에 모르스부호로 명령을 내려 보내던 무전기는 어디에 있었을까. 벙커에서 전선이 빠져나올 곳은 여러 군데 보인다.
국립청주박물관이 '돌에 염원을 새기다'를 주제로 한 '백제 불비상' 특별전을 갖고 있다. 이름이 다소 독특한 불비상은 한자로는 '佛碑像'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비석 모양의 석부재 전후좌우 4개 면에 부처상을 조각했다는 뜻이다. 불비상은 조각이 미려할 뿐만 아니라 명문, 즉 글자가 새겨져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 그런 불비상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불비상은 언제, 어떤 사연이 계기로 발견됐을까. 지난 2011년에 작고한 황수영 박사는 생전에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의 최고 권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지난 1960년 자신이 가르치던 동국대학 제자들에게 "아무거나 좋으니까 탁본을 떠오라"는 학기말 숙제를 낸다. 그러자 당시 충남 연기가 고향이던 이재옥이라는 학생이 전의면 비암사의 불교조각 작품을 탁본을 제출했다. 사료적 가치가 엄청난 것을 직감한 황 교수는 곧바로 비암사로 내려와 불비상 조각품 2점을 더 발견하게 된다. 국보 제 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이런 사연 끝에 발견됐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에는 앞서 언급한 3점 외에 연기지역 또 다른 사찰인 연화사와 서광암에서 발견된 4개의 불비상도
보은 장내리 동학집회를 기념하는 국제 학술회의가 '보은 장내리 동학집회의 종합연구과 전망'을 주제로 지난 26일 보은문화원 시청각실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날 학술회의는 보은 장내리 집회가 발생한지 '二甲'(120주년)이 되는 해여서 어느 해보다 규모가 있으면서 내실있게 진행됐다. 국제학술회의답게 중국 학자도 2명이나 참가한 이날 학술대회는 1~3부로 나눠져 저녁 시간대까지 진행됐다. 먼저 홍일교 독립기념관 학예사는 '장위영 영관 이두황과 장내리의 파괴' 발표에서 "이두황은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점차 일본에 매료된다"며 "체포된 동학농민군 94명 중 73명을 일본군 진지 앞에서 사살한 것도 바로 그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도소가 있었던 보은 장내리는 동학교도에게 본부로 상징되던 곳이었다"며 "그러나 장내리에 진군한 이두황 군대는 일대를 샅샅히 수색한 후 수백 채의 집과 4백여채의 움막을 모두 불살랐다"고 밝혔다. 이어 등단한 왕현종 연세대 교수는 '보은 장내리 집회의 연구와 전망' 발표에서 "1893년 보은 동학집회는 1894년 농민전쟁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중요한 공간이 됐다"며 "장내리라는 그 장소성에서 전국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네
속보= 해공 신익희 선생의 묘역에 세워진 '4.19혁명 연표' 碑에도 4.19와 관련된 충북의 첫 시위는 '충주고'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19 공로로 국민훈정 건국포장을 받은 유한상(74·당시 충주고 총학회장) 옹은 이같은 사실을 사진과 함께 28일 본보에 제보했다. 검은 돌에 새겨진 신익희 선생 묘역의 4.19혁명 연표비는 '1960 2.8 공명선거 추진 전국학생 추쟁위원회 발기대회'를 시작으로 4.19와 관련된 당시 사건 흐름을 차례대로 기록해 내려갔다. 이와 관련, 2월 28일은 '대구 경북고 대구고 경북여고 사대부고 데모라고 적었다. 그리고 3월 10일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원농고 충주고 대전상고 데모'라고 기록했다. 이밖에 이틀이 지난 3월 12일 상황에 대해서는 '청주고 부산 해동고 데모'라고 명문화해, 충주고가 청주지역보다 이틀 앞서 4.19와 관련된 시위를 했다고 명문화했다. 4.19혁명 연표비의 이같은 내용은 본보가 지난 4월 17일자로 보도한 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연표를 새긴 비는 서울 수유동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본보는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내용을 인용해 '3월 12일 청주에서 150명 학생 시위'라고 했으나,
조카 단종(본명 李弘暐)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는 얼마 안가 후환을 없애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에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宋玹壽·?~1457)도 포함돼 있었다. 단종은 14살 때 한 살 연상인 송현수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그녀가 바로 정순(定順)왕후 송씨다. 수양대군과 송현수는 일찍부터 친한 사이였다. 이 때문인지 송현수는 바로 처형되지는 않는다. 일부 대신들이 "송현수를 빨리 처형해야 한다"고 상소하나 세조는 처음에는 이를 물리친다. '"권완과 송현수는 모두 율(律)이 능지 처사하고 재산을 적몰하는 데 해당하며, 연좌된 사람들도 모두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하니, 명하여 권완은 아뢴 바에 의거하고, 송현수는 다시 추국하게 하였다.'- 추국 결과, 송현수는 장(杖) 일백에 영원히 원방의 관노(官奴)에 속하게 되고, 처자 역시 관노비에 충당되게 됐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정창손(鄭昌孫) 등의 주장으로 교사(絞死)되고 말았다. 이때 송현수만 희생당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인용문에 권완(權完 ·?~1457)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는 송현수와 가깝다는 이유로 먼저 능지처참당을 당하고 전재산이 몰수됐다. 또 연좌율이 적용되어 전가족이 화
[충북일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충북은 취업자 10명 중 3명이 6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가통계포털을 분석한 결과 지난 5월 전국 취업자는 2천891만5천 명으로 이 가운데 23.1%인 667만9천 명이 60세 이상이었다. 월별로 보면 지난해는 1월(540만4천 명), 2월(577만2천 명), 12월(596만4천 명)을 제외한 9개월은 60세 이상 취업자는 600만 명 대을 유지했다. 올해는 1월(575만4천 명)을 제외하고 2월부터 5월까지 600만 명대를 기록 중이며 2월 606만9천 명, 3월 636만7천 명, 4월 656만6천 명, 5월 667만9천 명 등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충북은 5월 기준 취업자 97만 명 가운데 60세 이상은 27.4%인 26만6천 명으로 집계됐다. 충북에서도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세는 꾸준하다. 지난 2014년 5월 기준 전체 취업자 수 대비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6.8%였으나 2019년 5월에는 21.0%로 올라섰다. 이어 2020년 5월 22.1%, 2021년 5월 23.4%, 2022년 5월 25.8%, 2023년 5월 26.2%로 증가 추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자신의 돈을 훔쳐 갔다고 생각해 흉기를 들고 지인들을 위협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진천경찰서는 A(41)씨를 특수협박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9일 오후 7시 45분 진천군 광해원면 자신의 주거지에서 지인 B(59)씨와 C(54)씨에게 흉기를 들고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씨는 술을 마시던 중 주머니에 있는 돈이 없어져 이를 찾다가 B씨와 C씨가 돈을 가져간 것으로 생각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임성민기자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증평·진천·음성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부족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중임을 맡겨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총선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약속드린 미래 비전을 군민들께서 선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선에 성공한 임호선(61)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증평·진천·음성)은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며 어려운 민생부터 확실히 챙겨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며 "서민경제를 살피지 못하고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하며 과거로 퇴행하려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잡으라는 민심이다. 제1야당으로서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 따르며 민생해결과 지역발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활동을 원하고 있다. 임 당선인은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현재도 농촌에 살고 있다"며 "지역적으로도 증평·진천·음성군이 농촌이기에 누구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 당선인은 "농촌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