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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1.28 14:21:22
  • 최종수정2024.01.28 14:21:22

안호종

프리랜서

1922년 12월 30일, 지구사에 한 획을 그은 단체가 설립됩니다. 바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소련)인데요.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붕괴되며 약 69년간 존속했었던 거대연합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소련 붕괴의 효시를 당겼다고 평가받는 리투아니아의 청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4세기 후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결혼으로 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후 튜턴 기사단으로 유명한 독일을 물리치는 등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요. 시간은 흘러 1795년, 강대해진 러시아에 의해 폴란드가 분할되며 러시아령으로 복속되고 맙니다. 20세기 초반, 1차대전과 러시아 인민혁명 후 공화국으로 독립했던 리투아니아. 하지만 국력이 강했던 폴란드에게 수도인 빌뉴스를 점령당하는데요. 이 때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임시수도로 사용됐던 도시의 이름은 카우나스 입니다.

다른 소련 소속이었던 국가들의 거의 모든 주요한 도로나 지명등이 (스)탈린 ~~~~ (그라드) / 레닌 ~~~~( 그라드) 하는 등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요. 하지만 이 곳 카우나스의 시가지에 있는 1.7㎞에 달하는 라이스볘스 알례야(Laisves al·ja)는 달랐습니다. 이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자유로'가 되는데요. 이 도로의 이름엔 슬프지만 멋진 이야기가 서려 있습니다.
냉전과 함께 서방과 교역을 단절한 소련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하며 반체제에 대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헝가리 혁명(1956)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체코 슬로바키아 내의 체제가 위협받자 체코 슬로바키아 공산당에게 쿠데타(1948)를 일으키게 하는 등 반 체제 사건들을 피로 잔인하게 진압한 소련이었는데요. 그럼에도 혁명의 불씨는 사그러뜨릴 수 없었습니다.

부동항을 찾으려 했던 소련의 서쪽 해역이자 북유럽의 시작이기도 한 발트해 인접국중 최 남단의 리투아니아엔, 거센 자유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소련 붕괴의 횃불을 혼자 힘으로 불태웠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Romas Kalanta(1953. 02. 22 ~ 1972. 05. 14).

"나의 죽음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 체제 뿐이다."라는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한 Romas kalanta.
그의 분신 이후, 주민들의 반 체제 봉기에 소련의 '붉은 군대'도 어쩔 수 없었고, 불과 이틀동안이었지만 자유를 맛보았던 카우나스는 이내 '혁명의 도시'가 됩니다. 1919년 독립했을 땐 '자유로'였던 도로의 이름이 소련 시절엔 역시나 '스탈린로'였습니다. 그러나 20살 젊은이의 죽음으로 카우나스는 잃어버렸던 도로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편, 당시 소련에선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금지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발이라던가 락 음악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선 금지되는 것들이 이 곳, 카우나스에선 허용되었으며 나아가 소련 내 히피문화의 메카가 됩니다.

그리하여 리투아니아는 인접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보다 '소련화'가 덜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1989년 리투아니아 인민대표회의에서 반 소련 정당인 리투아니아 개혁운동파의 큰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소련 내 민족주의 조직의 최초의 대승이었습니다. 이윽고 다음 해인 1990년, 처음 열린 다당제 총선에서 리투아니아 공산당이 완패하며 리투아니아는 완전히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디선가 많이 봤지만 또, 안타깝고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20살 젊은 노동자의 묘지는 카우나스 근처 Romainiai라는 카우나스 근처의 소도시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유로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요. '리투아니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진 사람(Resister, who has sacrificed his life for the freedom of LITUANIA)'이라는 글귀와 함께 아직도 자유로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자유로에 있는 Romas Kalanta 명판 옆의 카페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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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