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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1.26 15:18:48
  • 최종수정2016.01.26 15:18:52
[충북일보]1444년에 지어진 세종대왕의 초수리(초정약수) 행궁이 와가(기와집)가 아닌, 초가였다는 사실이 본보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지역 학계도 몰랐던 이같은 사실은 세종실록 31년 12월3일자의 "온양(溫陽)과 초수 행궁(椒水行宮)에서도 너무 지나쳤으나, 모두 이엉[茨]을 덮었을 따름이니"(溫陽 椒水行宮 亦爲大過 然皆蓋茨耳)라는 문장을 통해 확인됐다. 이 문장은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를 방문한지 6년이 지난 1449년(세종 31) 황해도 배천 온천으로 거둥하기 직전에 대신들에게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원문 '溫陽 椒水行宮' 문장은 일견 '온양의 초수행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뒤에 '모두 이엉을 덮었을 따름이니'(然皆蓋茨耳)라는 복수 표현이 온 것을 감안하면 별개의 2개 행궁, 즉 온양행궁과 초정약수 행궁을 모두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또 지명 온양은 따스한 온천수가 나오기 때문에 지어진 것으로, 차고 톡 쏘는 용출수에 붙이는 초수(椒水)와는 분명히 구분되고 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세종실록을 보면 당시 조정은 세종대왕의 초정약수 행궁은 한 달만에 지은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그것도 겨울이 한참이던 엄동설한에 초가가 아닌 와가를 건립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청주시는 오는 2018년까지 국비 등 120억원을 들여 행궁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내수읍 초정리 18-3 일대에 세종대왕 행궁을 기와집으로 재현키로 하고 해당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번의 사료발굴로 세종대왕 초정약수 행궁은 초가였음을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우리는 청주시에 공론화된 고증을 거친 후 행궁 재현공사를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만약 이 과정없이 초정약수 행궁이 재현되면 고증 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료에는 세종대왕이 목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탕과 관련 그 크기와 깊이 등의 제원이 조선후기 기록으로 남아 있는 만큼 이 부분도 충실히 반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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