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떨켜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가을의 정점. 온 산야가 만산홍엽으로 눈이 시리다. 나무도 단풍이 들려면 많이 아프다는데 얼마나 심한 몸살을 앓았으면 저리도 고울까. 타는 갈증을 견뎌내며 빚어진 고운 빛깔이라서 보는 이의 가슴이 아프다. 눈물겹도록 고운 잎들은 소슬한 바람에 몸을 떨며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초록의 짙푸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고운 자태를 온전히 드러내 제 소임을 다한 뒤 순리를 받아들이며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봄여름 내내 작렬하는 태양과 모진 비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 모체인 나무가 생장 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고 떠날 무렵이 되면 제 몸 안에 숨겨 두었던 찬란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 한 뒤 가장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에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떨어져 내린 낙엽들은 나무의 발치에 누워 모진 겨울을 함께 보내고 자기 몸속에 남아 있던 모든 진액을 흙에게 돌려주고 서서히 바스러져 간다.

흩날리는 낙엽들은 바람의 힘에 의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나무들이 먼저 저들을 떨쳐 내고 있음이다. 시린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제 몸 단속에 들어간 나무들은 잎이 붙어 있는 가지 끝까지만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잎자루까지는 공급하지 않기에 그렇다. 이 가을에도 저들은 어김없이 잎이 있던 자리에 떨 켜를 만들고 떨 켜 끝자리에 돌아 올 봄날 새 순을 피워 올릴 준비를 하고 있음이다. 이는 자연의 순리다. 가고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누가 저들을 보고 야멸차다 하겠는가.

분신을 떠나보내고 홀로인 나무 밑에 선다. 떨어져 내린 낙엽들이 발등상을 덮는다. 고즈넉하다. 저들이 마련해준 융단위에 앉아서 저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묵언의 소리이건만 큰 울림이 되어 심장에 와 박힌다. 만남도 머묾이고 떠남도 머묾이라한다. 만남과 떠남은 함께 존재 하는 것이기에 돌아오는 봄날이 되면 떨 켜에 새 순이 돋아나는 순간 다시 살아날 것이라 한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진액들을 나무가 머물고 있는 대지에게 돌려주었기에 그를 통 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리라.

떨 켜는 생명이고 약속이다. 이 가을의 떨 켜를 통해 내 마음의 떨 켜를 생각한다. 떨 켜 층이 발달하지 못해 떠날 때가 다된 마른 잎들을 가지 끝에 매달고 힘겨워 하는 나무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미 떠난 것들을 부여잡고 안타까워하고 있음이 보인다.

지나간 젊음. 지난 날 가슴속에서 들끓었던 자잘한 욕망들. 이미 내 품을 떠나 일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과 안쓰러움. 이런 숱한 것들이 심상을 어지럽힌다. 내려놓지 못함에서 오는 너절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청댄다.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아 마른 잎들을 잔뜩 매달고 여린 바람에도 윙윙대며 소리를 지르는 나무처럼 되지 않으려면 내 안에 단단한 떨 켜를 만들어 훌훌 털어버리고 의연히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보낼 것을 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기 위해서 이 가을에는 한 번쯤 심한 몸살을 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절함에서 놓여나 의연히 설 수만 있다면 고열에 시달려도 좋을 만큼 한바탕 열병을 앓고 싶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남은 날들을 살아낼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열병 같은, 그런 몸살을 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