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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소리를 찾아서

'신세대 명창' 함수연과 함께하는 판소리 여행
천둥닮은 폭포소리 뚫고 퍼지는 심청가
영화 '서편제' 한 장면이 저절로 떠올라

  • 웹출고시간2011.07.31 16:41: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자, 노래나 한번 불러볼까·"

제자들은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고른다. 잠깐의 기다림이었지만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함선생의 박자에 맞춰 제자들의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나오자 11인승 그랜드 카니발은 그대로 울림통이 되고 말았다. 온갖 기계음이 판치는 세상에 사람의 소리가 뭉쳐져 화음을 만들고, 울림통에서 뒤섞이다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내던져진 소리는 자유롭게 하늘로 산으로 들로 퍼져나갔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서 쉬고 있던 노인들은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차량을 바라본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민족의 핏속에 내려온 우리의 가락과 소리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일순 밖의 관객들과 교감을 이룬다. '진도아리랑'을 시작으로 '도라지타령' '군밤타령' '통영 배타령'으로 연결된 목 틔움 훈련이 신명나게 이어졌다. 차안은 거대한 울림통이 되고, 열어젖힌 네 군데의 차창은 천연의 성능 좋은 스피커가 되었다. 그렇게 산길에 노래를 흩뿌리며 달려간 곳은 천혜의 연습장, 옥량폭포였다.

영화 '서편제'의 청산도 화랑포길에서 떠돌이 소리꾼 유봉이가 두 남매와 함께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춤추는 광경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는 찬사를 받지 않았던가. 그 풍경과도 같이 일행은 휘적휘적 옥량폭포로 걸어 올랐다. 북을 메고, 한복을 싸들고. 그물을 겹겹이 펼쳐놓은 듯한 다랭이논들을 지나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걸었다. "저기 가는 저 기럭아 말 물어보자 우리네 갈 길이 어드메뇨…." 산길을 오르며 부르는 노래에는 어느새 서편제의 한 토막처럼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북을 둥둥 치던 장면이 겹쳐져 왔다.


음혼(音魂)을 깨우는 선승의 죽비

폭포에 이르렀다. 천둥소리였다. 음혼을 깨우는 선승의 죽비였다. 옆 사람과 대화조차 어려운 굉음이 귀를 점령했다. 선생은 바위 근처에 제자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소리를 뚫고 열었다. 심봉사가 탄식하는 장면을 제자 경희가 시연했다. 들릴 듯 말 듯한 경희의 소리가 선생의 호통소리에 화들짝 놀라 폭포소리에 얹혀 애절하게 넘실거린다.

"심봉사 기가 막혀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우지마라, 우지마라 내 새끼야 우지마라 너의 모친은 먼데 갔다. 낙양동촌 이화정(古소설 '숙향전'의 주인공 숙향이 머물던 곳)에 숙낭자를 보러갔다."

'함수연 판소리'는 1년에 한번 여름 산(山)공부를 떠난다. 올해는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있는 작은 통나무집으로 찾아왔다. 지난 7월18일에 입산, 7월30일까지 총 12박13일의 일정이었다. 산(山)공부 참석인원은 함수연 선생을 비롯 심경희(충북예고1, 여), 김도현(흥덕고1, 여), 오정화(용정중1, 여), 김민지(우암초1, 여), 이윤수(용성초 교사, 여) 총 6명이었다.

함수연 선생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훈련 또 훈련이다. 밥 먹고 남은 시간은 오직 소리에 매달린다. 폭포가 달린 계곡에서 훈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폭포의 수증기는 목을 지치지 않게 도와주고, 커다란 굉음은 자연의 소리를 이기는 힘을 길러준다."라고 말한다.

함수연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동편제 판소리의 명창 박록주 선생(1905~1976)의 계보를 잊는 신세대 명창이다. 작년 11월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한 명창 박송희(83)선생의 수제자 채수정의 문하다. 그녀는 "박록주, 박송희, 채수정 선생으로 이어온 '판소리'의 계보를 잇고 싶다. 판소리는 하면 할수록 매력이 있지만, 끊임없는 고행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 고장 충북에 소리의 맛을 제대로 알리고, 많은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고 싶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밥 한가득 물고 희망을 노래하다

2시간 정도 연습을 마치자,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소나기였다. 비를 맞고 내달리는 아이들의 몸이 젖어들었다. 하지만 감기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물먹은 여름나무처럼 오히려 생기를 더해갔다. 멀리서 비를 뚫고 '까르르'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는 겁니다."

비를 뚝뚝 맞고 내려오던 함선생이 가만히 건넨 말이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우리는 비를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으니 차라리 시원했다. 뚜벅뚜벅 올랐던 그 길을 다시 내려왔다.

비를 맞고 돌아오니 뭉근한 밥 냄새가 풍겨왔다. 맛나게 먹는 밥 한 술과 뜨거운 국물이 목젖을 타고 넘자, 차가워진 몸이 녹기 시작했다. 갈아입을 옷 한 벌 없어, 비를 뚝뚝 흘리며 허기진 배를 채우다 시 한편 떠올린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김준태의 시 '국밥과 희망'이다. 그 마음의 화답처럼 함선생이 노래하니, 한결 운치가 더해진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 전에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그저께 하루 굶은 처자 어제 저물도록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 문드러니('멀쩡하게'의 전라도 사투리)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에 그저 있사오니 인명이 재천이라 설마한들 죽사리까마는…."라고. 그때 아이들이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일제히 소리를 낸다. 밥이란 육신에 지피는 희망의 불씨다. 아이들은 어느새 입에 밥 한가득 물고 희망을 품고 있었다.


산(山)공부는 '살아있는 공부'

산(山)공부의 마지막 날 밤, 조촐한 음악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그 동안 배운 소리를 사람들 앞에 풀어냈다. 아이들의 소리는 어느덧 숲 기운에 듬뿍 젖어 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근처 동네사람들이 랜턴을 밝히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수박 한 통 들고, 어떤 이는 붉은 토마토 한 아름 안고 왔다. 이보다 더 멋진 관람료가 있던가. 그들은 학부모들과 함께 기꺼이 관객이 되어 주었다. 3일전에 산(山)공부에 합류한 이윤수(용성초교사, 여)씨는 "산(山)공부는 올 적마다 느낌이 다르다. 세상을 잊고 하루 온종일 소리에 젖어 있으니 귀가 열린다. 살아가면서 한순간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막 공연을 마친 정화(용정중1, 여)에게 "소리공부는 고운 목소리도 상하고, 힘든 길인데 왜 소리를 하지·"라고 묻는 순간, 저절로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쪽마루에서 동호가 송화에게 "그까짓 천대받는 소리 해봤자 앞날이 뻔한디 언제까지 저 사람을 따라 댕길거여·"라고 볼멘소리를 하자, 그때 송화가 그랬었다. "그래도 나는 소리가 좋아. 소리를 하면 만사를 다 잊고 행복해지거든."라고. 참 신기하다. 영화 속 오정혜의 송화처럼, 정화도 그랬다. "그냥 소리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닮았다. 송화, 정화.

빗줄기는 돌아오는 늦은 밤에도 하염없이 내렸다. 어느새 나도 청산의 느림의 미학을 배웠는지 아주 느릿느릿 차를 부렸다. 하늘과 산의 경계를 허무는 안개가 꾸역꾸역 밀려왔다. 하루 동안의 산(山)공부였지만, 복잡했던 머릿속이 벌써 텅 빈 느낌이다.

산(山) 공부의 의미는 '산에서 하는 공부'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죽은 공부가 아닌 진정으로 '살아있는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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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