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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산책 - 김영배 화백(1947~1999)

인품·실력 남다른 현대미술의 거장

  • 웹출고시간2011.05.15 18:19:1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리들 주변에는 청주 출신 작가이면서 고향 청주와 아무런 연고를 갖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청주 출신 작가는 아니지만 청주를 연고로 활동했던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대전권에 있는 작가들로서 청주에 있는 대학에 강의를 하게 되면서 인연을 갖게 된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김영배 화백은 10년 넘게 청주대학교 회화과에 출강하면서 많은 제자를 가르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99년 여름, 유성 방면 고속도로에서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대학을 같이 다닌 나의 절친한 친구이지만 작가로서 더 많은 우정을 나눈 친구이다. 그가 숨진 해는 1999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10주기 전시회를 작년 11월 한 달 간 쉐마미술관에서 가졌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도 훌륭했지만, 주변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분도 매우 두터웠던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의 추모전에는 대학 친구, 선배, 직장 동료, 후배들 중에서 가장 절친했던 14명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김영배 화백은 대학시절부터 어느 학생들보다 일찍이 현대미술에 눈뜬 매우 진보적인 학생이었다.

그러한 그의 정신은 30여 년 간의 그의 작품생활 동안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김 화백은 말술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술을 좋아했지만 술로 인한 단 한 번의 실수가 없을 만큼 매너가 깨끗했다. 60년대 예술인들의 성지라 할 수 있었던 명동이라는 살아 있는 예술 현장에서 적잖은 선배 화가, 문인, 음악인들과 일찍이 교류를 하면서 다양한 예술과 사회의 지식을 터득했을 만큼 예술가로서의 삶을 조련하였음을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그가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그의 재능 못지않은 그의 인품을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재직학교 였던 공주문화대학과 상명대뿐만 아니라 청주대, 충남대, 목원대, 한국교원대 등 중부권의 명문대에서는 모두 그의 강의를 원하였었다. 60년대 70년대의 김 화백의 작품은 모더니즘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작가였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패널 쪼가리를 이어가며, 패널이라는 지지체(캔버스와 같은 그림의 바탕이 되는 평면체를 의미함)와 그 속에 담겨진 형상 이미지, 기하학적 패턴으로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물을 직관적으로 읽고 있음에 비해 그의 작품의 특징은 사물을 비틀어 보려고 하는 그의 사시(斜視)적 행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의 예술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형상 이미지와 패턴 이미지가 화면에서 도치되는 기법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는 이미 80년대부터 쉐이프 캔버스(변형 캔버스)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만화를 자신의 회화의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었으며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회화적 구조와 이미지들을 하이테크 매체를 통하여 자유스럽게 변형하는 기능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그의 만화에 대한 관심과 능력은 실제로 그는 1989년 1월 1일부터 1년 간 조선일보 연재소설 '우리는 중산층'의 삽화를 멋지게 그려냄으로써 화단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무제

크기 : 350×415cm, 재료 : 캔버스 위에 아크릴 칼라, 제작연도: 1990년

여기에 실린 작품 「무제」는 신문에 삽화를 연제한 그 이듬해 작품으로 김영배 작품세계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그의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이다.

1960년대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이 일상의 모든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차용했듯이, 김 화백은 우리 시대의 일상의 모습을 이미지와 기호로 표현하고 있다. 몇 해 전, 수십억 원을 호가하며 대기업의 비자금과 연루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팝 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의 작품「행복한 눈물」이 추상적 구상으로 접근한 만화의 형식을 차용한 작품인 것처럼 김영배의 작품도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작품 「무제」속의 여인도, 막연하게 허공에 떠 있는 듯 커다란 회색 반점들, 그리고 사회적 분노와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의 모순 등을 터트리는 것 같은 폭발 이미지가 묘한 컴포지션을 이룬다. 김 화백은 한국작가로는 가장 먼저 대중문화 속에 갇혀 있는 모든 것들을 현대미술 속으로 끌어들인 우리 시대의 빛나는 팝 아티스트이지만 스타덤에 오르기 직전 세상을 뜬 또 한 사람의 불행한 작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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