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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오송 대신 서울로 유턴

"잔여부지 없다" 이전불가 입장 밝혀
직원수 등 고려땐 이유 납득 어려워
질병관리본부 청사설계 오류 논란도

  • 웹출고시간2011.04.12 20:29: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질병관리본부 내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이 아닌 서울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키로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서울 잔류 이유로 오송타운 내 잔여부지가 없어 이전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취해 이미 이전을 계획하고 건축한 청사의 설계오류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및 이식센터 측에 따르면 질병관리 본부의 오송 이전에 맞춰 소속센터인 이식센터도 직제 상 당연히 오송으로 이전해야 하나 오송이 이미 포화상태라 결핵연구원이 오송으로 이전하며 빈 서울 서초동 건물로 이전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 됐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서울에서 거의 대다수의 장기이식이 이뤄지기 때문에 센터 업무의 효율성과 연속성, 이전에 따른 직원의 이탈방지 및 전문성이 유지되는 곳으로 후보지를 조율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내에서 오는 8월 께 이전을 시작해 올해 안에 서초동으로 이전을 마무리한다는 구상이다.

상황이 이렇자 이미 오송으로 이전을 완료한 질병관리본부 소속 센터 중 유일하게 이식센터만 서울에 잔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그러나 이식센터의 인원이 27명에 불과하고 현재 이식센터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 사무실용 방 4개와 장기기증지원과장실용 방 1개, 장기이식정보실용 방 1개, 서류 등을 보관하는 지하 창고인 것으로 알려져 오송단지 내 질병관리본부의 포화상태로 이전이 불가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소속센터의 이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청사를 건축해 공간이 포화상태가 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 이전한 기관의 재 이전은 비용중복 문제와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식센터의 오송 이전은 사실상 어렵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이에 대해 양 기관 측도 민감함 반응을 보이며 말이 서로 엇갈리는 등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이식센터의 애초 계획이 오송으로 이전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오송이 포화상태라 부득이하게 서울에 남는 것으로 최종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반면 이식센터 관계자는 "애초 오송이전 계획이었지만 이전 후보지에 대해 아직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최종결정이 나지 않아 오송이냐 아니냐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만 오송은 여유 공간이 없어 이전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진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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