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낙엽은 지고 찬바람이 나그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난 가을 내내 청춘의 꿈을 여물게 하고 가슴 설레게 했던 은빛 억새는 시린 바람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들녘은 바싹 마른 풀잎 내음 구순하며 시골 돌담집 처마 밑에는 여물고 여문 옥수수가 맑은 햇살과 함께 하모니카 부는 모습이 호젓하고 마뜩하다. 사람들은 막막하고 비루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고요한 사색에 들기도 한다.

경인년庚寅年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사람들은 지는 해를 아쉬어 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를 고민한다. 소중한 가족, 사랑하는 연인, 한 해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직장동료, 그리고 오래된 벗들 그 누구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한 잔의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는 스타벅스 하워드 숄츠 회장의 이야기처럼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사람들의 고민도 잠시일 뿐, 예년 망년회를 답습하게 마련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서먹함 때문이기도 하고 몸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신선한 아이템과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여, 12월은 저녁때만 되면 도심의 뒷골목이 불야성이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의 주량은 세계 으뜸이다. 매년 34억병의 소주와 44억병의 맥주를 소비하고 있으니 쌀밥 먹는 양보다 술 먹는 양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에는 발효과학과 함께 고급화와 다양화로 주류시장에 뛰어 둔 막걸리까지 호강하고 있으니 좋게 말하면 우리들에게는 흥겨움을 즐기고 나눌 줄 아는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는 것이며, 나쁘게 표현하면 한반도 전체가 술독에 빠져있는 알코올 중독국가라 할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나카르시스는 "술 한 잔은 건강을 위해, 술 두 잔은 즐거움을 위해, 술 석 잔은 방종을 위해, 술 넉 잔은 광란을 위해"라며 애주가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땅의 애주가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올해가 가기 전에 절제의 미학을 실천하고 나눔문화와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면 어떨까. '먹고 마시자'는 분위기는 후회만 남길 뿐이다. 문화가 있는 연말 파티, 이웃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한다면 올 한해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몇 해 전 필자는 연말을 맞아 30년을 훌쩍 넘긴 시골초등학교 친구들을 한국공예관으로 초대했다. 전시관람에 이어 다도체험을 한 뒤 졸업앨범에 있던 옛 추억을 영상으로 편집해 소개했다. 늘상 찾는 삼겹살집이 아니기에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서먹하고 낯설게 느껴지는가 싶더니 금새 웃음꽃이 만발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문화파티를 통해 작은 감동과 기쁨을 느낀 것이다. 이처럼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을 산책하며 송년 파티를 열면 색다르고 흥미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시설에서는 시민들이 송년파티를 희망한다면 흔쾌히 협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속살을 엿보고 문화적 가치로 소통하면 좋겠다. 공연장에서 춤과 연극과 퍼포먼스와 함께 하는 파티도 삶의 품격을 높일 것이다.

이와함께 나눔문화 실천을 주문하고 싶다. 복지시설을 방문해 김장김치를 담그고 연탄배달을 하며 추위를 녹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할 때마다 코끝이 징하고 감동이 밀려온다. 작은 정성과 실천만으로도 욕망의 숲에 고립돼 있는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음을 휴먼다큐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요즘에는 재능나눔이 주목받고 있다. 음악가는 노래로, 미술가는 작품으로, 학자는 지식으로 이웃들에게 다가간다. 돈 몇 푼 기부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의미와 스토리, 사랑과 정성을 겸비한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바람이 차다. 저녁 어스름이 도시를 감싸고 눈발이라도 날릴 것 같다.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비루한 세상에 문화가 흐르는 파티는 가슴 따뜻한 아날로그가 되지 않을까.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