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있다. 백두산 정계비는 지금도 종종 언론에 회자된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이 어윤중이다. 1721년 조선의 조태상 등과 청나라 목극동 일행이 현지를 답사하고 백두산 동남쪽 약 4㎞ 지점(해발 2천200m)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양국 간 국경선이 처음으로 획정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정계비에는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西爲鴨綠 東爲土門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토문강'이 두만강을 지칭하는지 현재 중국 영토 안의 '토문강'을 지칭하는지는 당시에도 논란거리였다. 이 때문에 1885년(고종 22년)과 1887년 서북경략사로 나간 어윤중은 숙종 때 백두산에 세워진 정계비를 직접 둘러보게 된다. 경략사는 왕의 특명을 받고 변방에 임시로 파견된 관리를 말한다. 이때 어윤중은 비문에 나오는 '동쪽은 토문을 경계로 한다' 할 때의 토문이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 지류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처음으로 영토 담판이 열렸으나 소득없이 끝난다. 이밖에 지금도 종종 기사화 되는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영유권도 어윤중이 처
개화기 정치인 어윤중(1848~1896)의 고향이 충북 보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경기도에서 태어났으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은군 삼승면 선곡1리 가마실 마을에서 보냈다. 이는 그의 조부 어명능이 지금의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있던 정약용과 친구였던 점에서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어윤중이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9살 때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간 것이 계기가 됐다. 전라도를 둘러본 후 그가 올린 보고서에는 '도량형 통일이 절실하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고종의 눈에 띄면서 그는 측근신하로 성장한다. 그는 동학과 관련해서도 '명해석'을 했다. 1893년 고향인 보은에서 대규모 동학집회가 열리자 고종은 어윤중을 '순무사'로 파견한다. 순무사는 변란 등이 발생했을 때 지방에 파견된 임시관직을 말한다. 신립장군도 순무사 자격으로 충주 탄금대 전투를 수행한 바 있다. 이때 그는 동학도에 대해 처음으로 '민당'(民黨) 즉 '백성의 무리'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종전까지 당시 조정은 '비도'(匪徒) 즉 '나쁜 무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동학도의 주장에 상당부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집권전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가 김병학과 그의 딸을 며느리로 삼기로 밀약했다. 그러나 집권하자 마음이 달라져 고아나 다름없는 여흥민씨 명성황후를 왕비로 간택, 한 살 연하인 고종과 결혼을 시킨다. 이는 외척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의도와 달리 총명했던 명성황후는 사사건건 시아버지와 부딪히며 권력 투쟁을 벌인다. 조선시대 때 대비 즉 임금의 어머니가 섭정을 한 예는 많아도, 아버지가 섭정을 한 것은 고종 때가 처음 이었다. 이것이 구부간 (舅婦間·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 갈등의 단초가 됐다. 이밖에 둘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도 작용했다. 명성황후는 결혼한지 5년만에 첫 왕자를 얻게 되나, 그 왕자가 용변을 보지 못하면서 5일 만에 죽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왕자의 약으로 써 보라'며 산삼을 준 사람이 흥선대원군이었다. 명성황후는 이때부터 시아버지 때문에 첫 왕자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명성황후에게 찾아온 첫번째 정치적 시련은 임오군란이다. 명성황후가 개혁정책을 도입하기 전까지 군인들은 차별이나 그리 나쁜 대접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정책 후 월급이 13개월치 밀리고, 여기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보다 후하게 대우하면서 구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의 남한강 수계 안에는 3개의 기암이 위치하고 있다. 국가명승 제 44호인 도담삼봉이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은 도담삼봉, 구담봉 등 단양팔경을 예찬했다. 그중에서도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의 상징적인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것이 고혹적인 자태 그 자체이다. 따라서 지금도 전국 제일의 사진 촬영 장소가 되고 있다. 도담삼봉 아래에는 그리 멀지 많은 과거까지 모래톱이 존재했다. 김홍도의 도담삼봉 그림을 보면 모래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1985년에 충주댐 완공으로, 삼봉의 1/3 가량이 물속이 잠기면서 모래톱이 사라졌다. 따라서 지금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면서 새들의 유식처가 되고 있다. 도담삼봉 압권은 단연 정자이다. 지금의 도담삼봉 정자가 세워진 시점에 대해 구한말인 순조 때 설과 1950년 설 등이 있으나 둘 다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1972년 단양에 대홍수가 있었고, 그 이후 지금의 도담삼봉 정자가 다시 세워졌다는 점이다. 단양지역 시멘트 생산업체인 성신양회는 정자가 유실되자 지난 1976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육각형 정자를 세운 후 이를 단양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우와 사당을 혼동하고 있다. 둘은 조상 위패를 모시고 제사만을 지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름에서 보듯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형적으로 보면 '집우'(宇) 자는 처마가 길게 나온 집을 의미한다. 반면 '집당'(堂) 자는 흙토(土)가 들어간 것에서 보듯, 흙을 쌓아올려 만든 집을 말한다. 따라서 보다 공적인 인물이 배향됐을 땐 '사당'보다 '사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주덕에서 충주 방향으로 달리다 달천다리 건너기 전 5백미터 쯤에서 우회전을 하면 용관동 한남군(?~1457, 본명 李王+於) 사우에 도달할수 있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750년 처음 건립됐고, 1920년에 중수했다. 사육신과 마찬가지로 단종복위를 꾀한 종친이 여섯 명이 있다. 안평, 금성대군 등을 포함해 이들을 '육종영'(六宗英)이라고 한다. 한남군도 그 여섯명 중의 한 명으로, 충남 아산으로 유배된 끝에 1457년 사약을 받게 된다. 그의 어머니가 세종대왕 네 번째 후궁이자 청주를 본관으로 갖고 있는 혜빈양씨다. 혜빈양씨는 본래 궁녀 출신으로 병약한 문종을 보살피던 중 세종의 눈에 들어 네 번째 후궁이 됐다. 그러던 중 세조의 왕위찬탈 사건이
토정비결은 사주(생년·월·일·시)를 보는 주역과 달리 시(時)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괘가 주역보다 단순한 편이다. 가령 '동풍해빙(東風解氷) 고목봉춘(枯木逢春)', 즉 '동쪽 바람에 얼음이 풀리고 마른 나무가 봄을 만났도다' 식이다. 다소의 이론이 있지만 토정비결의 저자는 대체로 조선중기 인물인 토정 이지함(1517~1578)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정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말년에 아산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충북과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그의 인생사 굴곡점이 충북에서 찾아왔다. 토정은 기인 이미지와 달리 이른바 명문가 출신으로, 북인의 영수였던 '이산해'가 그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 따라서 이지함은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후손이면서 당시 충주에 살고 있는 모산수 '이정랑'의 사위가 될 수 있었다. 즉 처가가 충주였다. 그러나 장인이 이홍윤 역모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도 이 사건의 유탄을 맞게 된다. 이른바 '이홍윤 역모사건'이다. 대윤 윤임과 사돈간으로, 조선 명종 때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충주출신 이약빙에게는 홍남, 홍윤 두 형제가 있었다. 그런데 두 형제는 전답과 노비 상속 문제로 척지는 관계가 되면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이
[충북일보] 옥천의 A 초등학교에서 동급 학생 간 집단 괴롭힘을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경찰과 교육 당국이 조사하고 있다. 옥천 A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둔 B씨는 "아들이 동급생 6명으로부터 장기간 상습적인 언어와 신체 폭력을 당했다"라며 "이 사실을 아들의 카카오톡 대화방 등을 살펴보고 나서 알았다"라고 한 언론에 알렸다. B 씨는 "지난해부터 아들의 팔과 다리 등에 자주 멍이 들었고, 최근엔 친구 집에 다녀온 뒤 얼굴과 은밀한 신체 부위까지 멍들어 심각성을 인지했다"라고 주장했다. 또 "가해 학생들이 아들에게 음식값을 대신 내게 하거나 세탁비를 받아 내기도 했다"라고 했다. B 씨는 이 내용을 학교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천경찰서는 "초등학교 재학생인 아들이 수개월 간 같은 학교 다수의 남학생에게서 신체·정신적 위해를 당했다"라는 내용의 학부모 진정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교육 당국도 경찰 조사와 별개로 이 사안을 이미 관리하고 있다. 해당 학교는 지난 11일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열었고, 이튿날 B씨의 아들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했다. 옥천교육지원청도 다음 달 1일 학교폭력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