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은 괴강가의 취묵당짓는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창동(蒼童)을 시켜 작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큰 소나무만 남겨두며, 작은 돌은 뽑아내고 큰 돌은 끊으며 썩은 흙은 제거하여 더러온 고을을 청소하니 기이한 형세와 경치가 번갈아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엔 마땅히 당우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청당태수에게 청해 목수를 얻어 재목으로 쓸 약간을 베어서 두 칸 당을 지었다.'- 인용문 서두의 창동은 청년같은 소년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괴산임에도 불구하고 청당(청안현) 태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다소 이채롭다. 백곡은 이렇게 완성된 취묵당을 통해 멀고 가까운 곳의 경치를 확보했고, 이에 크게 만족해 했다. '성불산이 잇달아 솟아 있는 것, 남녘과 동녘까지 이어진 교외, 이탄 광탄의 급류, 물가에 늘어선 나무, 어촌마을이 벌려 있는 것, 구름이 일어나고 새가 날아가는 것, 고리가 노릴고 사람이 다니는 것이 모두 시야에 들어오니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기쁘기가 예쁜 선녀가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만 같은 뿐만 아니다.'- 김득신은 처음에는 괴강으로의 낙향 생활에 불안함을 보였으나 얼마안가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으면서 일대 근·원경을 소재로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아카데미가 지난 26일 72번째 여행을 떠났다.이날 산행은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교장 함우석 충북일보 주필과 김웅식 산행대장(산행환경문화원), 이종윤 전 청원군수, (사)희망충북 그린스타트, 오창산단 LG 사원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여행지는 상당산성백오십리숲길 이티재~구녀산~좌구정~좌구산 천문대 3시간 산행 구간.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숲길이다.출발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 대장은 "오늘은 산을 깨끗하게 한다는 산행 의미 보다 나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자"며 "안전이 최우선이다. 안전한 산행을 마치자"고 했다.시원하게 뚫린 청주 율량동~증평 신도로를 타고 오전 9시20분 이티재에 도착했다.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에 하나둘 우비를 입고 하얀 시루떡처럼 안개가 켜켜이 쌓인 이티재를 오르기 시작했다.초보 등산객을 농락하듯 가파른 오르막 길이 눈이 닿는 끝에까지 이어져 있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 길 끝에 닿으면 저 만치 평지가 보이고 평지 끝에는 또 끝 없는 오르막이다.초보 등산객에겐 만만치 않는 코스지만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후끈한 몸이라도 식혀줘 더운 날 보다는 수월한 산행이 이어졌
김득신의 문집인 백곡집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만날 수 있다. '괴강에 머문 지 4년이 넘는데, 철에 따라 경물로 시를 지으니 시주머니가 넉넉하네'(槐江泥滯四年强 時物供詩富錦囊). '명성을 다투고 이익을 탐함은 내 일이 아니니, 괴강에 돌아가 모래밭에 앉아 낚시질하리'(爭名貪利非吾事 歸去槐江坐釣沙).그는 취묵당 주변의 괴강가 일대를 철따라 다양하게 시의 소재를 얻을 수 있는 공간, 명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편히 할 수 있는 곳 등으로 표현했다. 다음 시도 백곡이 괴강가를 봄날의 흥취에 마음껏 젖을 수 있는 곳, 또 뒷산이 되는 개향산을 빼어난 명승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괴협에 봄기운이 돌아 홀로 돌아오니, 시골 흥취가 느긋하여 막을 수 없네'(春生槐峽獨歸來 野興悠悠不可哉). '꿈 속의 넋이 또한 개향산의 빼어남을 알아, 울긋불긋한 벼량을 밤마다 올라가네'(夢魂亦識香山勝 翠壁丹厓夜登). 그러나 김득신이 처음부터 괴강가 일대를 마음의 안주처로 흡족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취묵당과 초당을 지어 은거를 시작한 뒤에도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했음이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출처는 모두 백곡집이다. '이 몸이 어찌
김득신은 여러 정황상 목천현 백전(栢田·지금의 천안신 병천면 가전리)에서 태어나 20대까지 보냈고, 그 이후는 한양에서 생활한 것으로 여겨진다. '병자피난초작'(丙子避難初作)이라는 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난리통에 한 번 서울 집 떠나온 뒤로 / 홀로 깊은 시름 안은 채 삼처럼 어지럽구나 / 깊은 골짜기 쌓인 음기에 봄이 더디니 / 작은 매화가 추위에 움츠려 피지 못하네 /.../ 홀로 하늘가 한 구석에 떠도는 이 내 신세 / 병란에 소식 끊기어 깊은 시름만 안고 있네 / 두 장모와 최모 박모 친구들 잘 있는지 / 서로 만난다면 한스러움 금방 그칠텐데 /.../'- 김득신은 그의 나이 32살 때 병자호란(1636년)을 만나 영남지역으로 피난했다. 이 시는 그때 지은 흔치 않은 장시(長詩)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뒤에 이어진다.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그해 겨울 영남지방에 눈이 무척 많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듬성한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 푸른 절벽에 기댄 절간이 있나보다 / 아이놈과 함께 찾아가려 하지만 / 봄눈이 너무 많이 쌓였으니 어이하리 / 멀리 서울서 온 나그네 / 이별의 정한 가누기 어렵구나 / 이 산 어디에서 봄빛을 찾을꼬 / 찬 골짝
백곡 김득신은 괴강이 내려다보이는 개향산 언덕에 취묵당을 건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활공간인 초당(草堂)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풀 草' 자에서 보듯 이때의 집은 사대부가의 격식을 갖춘 것이 아닌, 작고 허름한 초가로 여겨진다. 김득신이 초당과 관련해 남긴 글은 당시 괴산지역 공간과 자연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먼저 그가 남긴 '초당서'에는 광탄, 방간야, 성불산, 한림, 장군 등의 명사가 등장한다. '성황당 서쪽 광탄 북쪽의 方干野(방간야)와 더불어 성불산이 펼쳐진 곳에는 언덕이 쓸쓸하지만 한림의 옛집이 있고, 남은 터가 활량하지만 장군의 옛 자취를 알 수 있는데 사람이 사는 연기는 끊어졌지만 풍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인은 천석고황(泉石膏亡+月)과 운림질고(雲林疾痼)가 있어서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붉은 먼지를 떠나니 초헌과 면류관에는 관심이 없고 강호에 백발을 비추며 낚시질함이 소원이다.'- 인용문 중 '한림'은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부친 김치, '장군'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조부 김시민을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성불산은 현재도 유통되는 지명으로 괴산 서쪽의 해발 530m 산을 지칭하고 있다. 근래 현 임각수 괴산군
누정의 본래 기능은 취경(取景), 즉 경치를 모으는데 있다. 때문에 전통 누정은 방이 없는 대신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 듯이 탁 트였다. 누정에는 주인의 의도에 따라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의 이름이 붙으나 그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누정의 명칭은 자연, 동식물, 사람 호칭, 역사적인 사건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우리고장을 위주로 예를 들면,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의 금호루(錦湖樓)는 금강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동물과 관련된 누정 명칭으로는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의 관어대(觀魚臺)가 있다. 조선 중기의 인물인 민욱(閔昱·1559-1625)은 이곳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뜻에서 '관어대'로 이름지었다.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의 가학루(駕鶴樓)는 누각이 학의 날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전되고 있다. 추풍령 정상에서 승용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언덕 위의 전통건물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가학루다. 사람 호칭과 관련된 누정으로는 애한정(愛閑亭)과 백석정(白石亭)이 있다. 괴산읍 검승리에 위치하고 있는 애한정은 조선 현종 때 괴산군수였던 황세구(黃
김득신은 현종 3년(1662) 문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대과 합격생에 걸맞는 직책을 갖지 못하고 성균관 학유(學諭)라는 한직에 임명됐다. 학유는 성균관 소속으로 각종 과거응시의 예비심사일을 처리했고, 태종 때부터는 성균관입학시험에 대한 예비심사도 하였다. 이같은 중요성 때문에 개국 때인 태조 연간에 처음 설치됐다. 학유는 보기에 따라 유생의 사표(師表)가 되는 자리였다. 때문에 세종 때에는 문행(文行)이 뛰어난 자를 선발하고 대간(臺諫)의 동의를 얻은 뒤 임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유는 정치적인 권력이 발휘되는 관직은 아니었다. 김득신이 한직에 임명된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정황상 회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현석(李玄錫)이라는 인물이 쓴 김득신의 묘갈명(비석문)을 보면 그는 이 즈음 우리고장 괴산의 괴강가로 낙향, 그 유명한 취묵당(醉默堂)을 짓는다. 현재 괴산읍 능촌리 김시만장군 사당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취묵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통칸마루에 사방 난간에 설치돼 있다. 지난 2007년 도문화재자료 제 61호로 지정됐다. 묘갈명 등을 참고하면 김득신은 괴강가 우거생활 중에 장령에 임명되나 이번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어릴적 이름은 '자공'(子公)이고, 호는 백곡(栢谷)이다. 백곡이라는 지명은 언뜻 김득신의 만년 우거공간이었던 괴산 어느 잣나무(栢) 골짜기(谷) 쯤을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같은 이름인 진천 백곡을 떠올릴 수 있으나 두 곳 지명과는 무관하다. 김득신의 호 백곡은 목천현 백전(栢田) 마을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다. 백곡의 고조부 김석은 1519년 기묘사화 때 괴산으로 피신했다. 그후 증조부 김충갑이 서원에 유배되었다가 목천현 백전마을에 살던 장인 이성춘(李成春)의 전장을 물려받아 그곳에 정착했다. 그는 목천에 거주하면서 선영이 있는 우리고장 괴산을 왕래했다.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金緻)도 1901년부터 4년 동안 선영의 일 때문에 괴산 방하현(方下峴)에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난다. '취묵당일기'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인다. '선친이 괴산 방하연에 들어와 4년 동안 머물면서 묘지를 돌봤다.'(先君入槐州方下峴 留四年爲丘墓矣) 방하연은 백곡이 나중에 취묵당을 세운 괴산읍 능촌리 일대를 일컫는다. 김득신의 과거시험 준비는 생활터전이 있는 백곡에서 주로 이뤄졌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크게 소과와 대과
선조~숙종 연간을 산 인물인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조선 최고의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김득신이 말년을 보낸 괴산 괴강가의 취묵당(醉默堂)에는 그의 독서량을 기록한 '독서기'(讀書記) 편액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떤 책의 독서가 끝나면 그 횟수를 대나무에 새겨 기록으로 남겼다. 취묵당 독서기를 보면, 김득신의 사기의 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천 번으로 가장 많이 읽었다. 반면 노자전(老子傳)·분왕(分王)·벽력금(霹靂琴)·주책(周策)이라는 책은 2만 번을 읽었다고 기록했다. 또 제책(齊策)·귀신장(鬼神章)·목가산기(木假山記)·중용서(中庸書)는 1만 8천 번,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송원수재서(送元秀才序)·백리해장(百里奚章)은 1만 5천 번을 읽었다. 이밖에 획린해(獲麟解)·사설(師說)·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承廳壁記) 등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썼다. 이상의 글을 모두 합하면 36편이 된다 억이나 만 단위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나, 그가 조선 최고의 독서광이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독서 방법은 다독과 정독이었다. 그는 많이 읽기도 했지만 정독을 병행했다. 이런 김득신의 독서방법을 주위에서
한자 '샘 泉'(천)은 바위에서 물이 자연스레 용출하는 모습을 상형화했다. 이에 비해 '우물 井'(정)은 물 긷는 시설의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 인공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물과 관련된 표현으로 '시정'(市井)이 있다. 시정잡배(市井雜輩), 시정지민(市井之民) 등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시정잡배는 시장과 우물가에 모이는 사람의 무리, 시정지민은 시정을 찾은 백성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실학자 이익도 '시정지민'이라는 표현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그 어문적인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했다. '시정이란 것은 농상(農商)의 천한 사람을 말한 것이니, 장사꾼은 저자를 주로 삼고, 농사꾼은 우물을 주로 삼는다. 그래서 시정지민(市井之民)이라 이른다."고 생각한다.'- 우물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조 혁거세 거서간(居西干) 5년 정월에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으며, 여자 아이는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가 뛰어나 시조가 왕비로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위 내용대로라면 신화 속의 신라 왕실에는 용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고장 증평에도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성을 지닌 우물이 있다. '말세우물'이
조선시대 우리고장 단양의 도담삼봉을 그린 화가로는 정선, 최북, 윤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삼도담도', '단구승유도', '도담절경도', '도담삼봉도' '도담도'를 그렸다. 이중 최북(崔北·1720-?)은 자는 유용(有用) 또는 칠칠(七七)이고, 호는 호생관(毫生館)을 가장 즐겨 사용했다. 최북은 조선시대 여러 화가 중 기행을 가장 많이 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동기는 무척 다양하다. 먼저 임금의 명령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경우가 있다. 김홍도가 정조를 명을 받고 단양일대를 그린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경관에 너무 아름다워 집으로 돌아가 화가에게 그림 제작을 주문하는 경우이다. 겸재 정선의 단양지역 그림은 대부분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밖에 화가를 직접 데리고 와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경우다. 최북이 이광수의 부탁을 받고 그린 도담삼봉도가 '단구승유도'(丹丘勝遊圖)라는 그림이 이에 해당한다. 그림을 보면, 도담삼봉 앞에 2명의 선비가 사공을 대동하고 뱃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능수버들이 늘어지고 또 나뭇잎이 초록으로 변하는 등 늦봄의 도담삼봉 경치가 맑은 담채로 그려져 있다. 서두
조선 숙종~영조 연간에 활약했던 문인화가로 이윤영(李胤永·1714-1759)이 있다. 그는 1751년부터 1755년까지 약 5년간 단양 지역에 은거하면서 시·서·화를 남겼다. 특히 그는 단양의 풍광을 너무 좋아해 자신의 호를 '준화재'(濬華齋)에서 '단릉산인'(丹陵山人) 또는 '단구처사'(丹丘處士)로 바꾸기도 했다. 그가 단양 은거를 결심한 것은 멀리는 증조부, 가깝게는 부친의 근무지와 관련이 있다. 그의 증조부는 이행(1657-1702)은 1689년 기사환국 때 같은 노론계 인물인 우암 송시열과 김수항이 사약을 받는 것을 보고 충청도 결성, 즉 지금의 충남 홍성으로 낙향했다. 이 때문인지 이윤영도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산수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이윤영은 부친 이기중(李箕重)이 단양군수 발령받은 것을 계기로 단양을 처음 찾았다. 이때 단양의 경치에 반해 훗날 단양을 다시 찾아와 은거하며 '사의적(寫意的) 산수화'를 주로 그리게 된다. 이윤영과 동시대를 산 이운영이라는 인물이 '기년록'이라는 글을 남겼다. "단릉공은 단양의 산수를 매우 좋아해 한두 명의 친구들과 이곳에 복거할 것을 약속하였다. 임신년에 구담에 창하정을 세우고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