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처음 들어온 담배는 특유의 중독성을 발했다. 17세기 후반의 하멜은 표류기의 일부를 이렇게 기록했다. '현재 조선인들은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5세 때에 이미 이를 배우기 시작하여 그래서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국왕 중에서도 '골초 임금'이 등장했다. 정조가 지은 문헌 중에 '남령초 책문'이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오로지 이 남령초에서만 도움을 얻었다. 화기(火氣)로 차가운 담(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를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뒤에는 '갑이냐 을이냐를 교정하여 붓방아를 찧을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고뇌를 편안하게 누그러뜨리는 것도 그 힘이다'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가 번역한 글이다. 그런 정조는 '백성들에게 담배의 혜택을 주겠다'는 사명감에 불탓다. 말 그대로 전국민의 흡연화로, 역시 '책문'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풀이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따라서 남령초를 월령에 싣고 의
담배는 포르투갈어 '토바코'(TOBACCO)가 일본에서 '다바코', 그리고 이 '다바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담바구'로 불리다가 '담배'로 정착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토바코'에 대해서는 △서인도제도의 섬이름이라는 설 △그곳 원주민이 사용하던 담뱃대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정설화된 것은 없다. 이밖에 담배는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 연초(煙草), 다연(茶煙) 등으로도 불렸다. '남령초'는 남쪽의 신령스러운 풀, '연초'는 연기나는 풀, '연다'는 연기나는 차라는 뜻이다. 담배의 원산지는 어디이고, 또 우리나라에는 언제·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담배의 원산지는 중아메리카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담배에 약효능이 있다고 생각해 유럽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유럽에서 한반도로 유입 경로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포르투칼-필리핀-일본-조선 순으로의 전래설, 둘째는 비단길-청나라-조선 유입설, 셋째는 두 가지 모두, 즉 한반도 남북으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첫 번째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경우 담배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설이 보다 유력해 진다. 조
음악, 무용, 기예가 어울리는 일본 전통연극으로 가부키(歌舞伎)가 있다. 16∼17세기 에도시대에 서민 예술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고려대 최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 가부키에 임진왜란 제 1차 진주성 전투의 맹장으로, 우리고장 괴산 출신인 김시민이 '모쿠소'라는 캐릭터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 주도의 조선관민이 보여준 필사의 항전은 적인 왜군에게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때문에 당시 왜군들은 김시민을 '모쿠소'라고 불렀다. 이때의 모쿠소는 '진주목사' 할 때의 '牧使'(목사)를 일본식으로 발음이고, 표기는 '木曾'으로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입신출세를 다룬 작품으로 '다이코키'(太閤記)가 있다. 이 다이코키에 '모쿠소'가 실리면서 일본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됐고, 그 영향으로 가부키에 조선군의 맹장이자 충신이면서, 원한을 품고 일본을 전복하려는 원귀 캐릭터로 그려지게 됐다. 모쿠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가부키 작품은 지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혼쵸산고쿠시(本朝三國志·초연 1719년 2월 14일)이다. 여기에서 모쿠소는 조선에서 가장 신뢰받는 장군으
임진왜란 당시 같은 성(城)에서 8개월의 시차를 두고 '2차 전투'가 발생한 것은 진주성이 유일하다. 1592년 음력 10월에 벌어진 7일 밤낮의 진주성 1차 전투에서 조선인은 1천여명, 일본군은 1만3천여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왜군의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무리하게 성벽으로 기어오르다 진주성 안 조선인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김시민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김시민은 화구(火具)를 미리 준비하고 화약을 종이에 싸서 풀로 묶어 성 위에 감춰두게 하고 대포 및 대석(大石)을 나누어 설치하게 하였으며, 여장(女墻) 안에는 가마솥을 비치하고 물을 끓여 대기하도록 하였다.'- 인용문 뒤에는 '김시민은 무리를 지휘하여 활과 쇠뇌와 포를 쏘고 돌을 굴려 내리니, 적병이 이르는 곳마다 죽어 넘어져 쓰러진 시체가 삼대처럼 즐비하여 일단 공격을 완전히 좌절시켰다.'(〃)라고 기록돼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진주성 1차전투 패배에 대해 극도의 분노와 함께 복수를 곱씹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주성 1차 전투는 승승장구하던 왜군 정병이 육지에서 당한 최초의 대규모 참패였다. 그 후유증이 매우 심해 호남 진출에 실패했고, 또
시호(諡號)는 왕이나 왕족 그리고 신하들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한 호를 가리킨다. 이 시호는 그때마다 무원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3백여자의 글자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이중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정(貞)·공(恭)·양(襄)·정(靖)·양(良)·효(孝)·충(忠)·장(莊)·안(安)·경(景)·장(章)·익(翼)·무(武)·경(敬)·화(和)·순(純)·영(英) 등 120자 정도였다. 즉 시호는 이들 글자의 조합인 셈이다. 조선시대 시호는 4글자로 된 사자성어 형태로. 그 뜻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다. 가령 문(文)에는 박학호문(博學好文·널리 배운 것이 많고 글 읽기를 좋아한다), 충(忠)은 위신봉산(危身奉上·자기 몸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든다), 무(武)는절충어모(折衝禦侮·적의 창끝을 꺾어 외침을 막는다)의 뜻이 담겨져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만이 '충무공'(忠武公) 시호를 지닌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조영무(태종), 남이(세조), 이준(세조), 김시민(선조), 김응하(광해군), 이수일(인조), 정충신(인조), 구인후(효종) 등 9명에 달하고 있다. 이중 우리고장과 연고를 갖고 있는 인물로 적지 않아, 남이는
우리고장 충주 출신인 이수일(李守一·1554∼1632)은 비교적 늦은 29살에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그는 밀양부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남도병마절도사, 길주목사겸 방어사,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는 등 무관의 요직을 섭렵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임진왜란 초기전투(예천·용궁)를 제외한 야인토벌과 반란군 진압 등의 싸움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뒀다. 특히 그는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평안도병마절도사겸 부원수를 겸해 길마재(鞍峴)에서 반란군을 무찌르고 한성을 수복, 그 공으로 진무공신 2등과 계림부원군에 봉해졌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논할 때 그 실체를 '솔선수범'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매우 많다. 이수일 장군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도 분명히 그만의 리더십이 작용했다. 현존하는 여러 문집이나 관찬자료 등에는 이수일 장군의 생전 행적을 읊은 시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고, 그 리더십의 공통점은 여러 곳에서 인(仁), 즉 '어짐'으로 표현돼 있다.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명으로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가 있다. 그는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을 남겼고, 그 안에 '계림부원
조선 후기에 보이는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하는 진경산수화가 유행했다. 그 이전까지는 중국화풍의 관념산수화가 유행했으나, 이는 미술 사대주의의 다름이 아니었다. '진경주의' 정신은 미술만이 아닌 문장에서도 시도됐고, 담헌 이하곤도 이를 의식적으로 추구했다. 따라서 "담헌은 문장을 윤택하게 하거나 조탁하는 것은 올바른 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문학 평론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물빛은 산 그림자 거꾸로 모사해 내고(湖光倒寫峰頭月) / 물에 비친 하늘 산그림자 다시 비추어내네(山影橫侵水底天) / 위아래로 점하나 공명 가린 것 없으니(上下空明無點·) / 바로 내 몸이 옥호에 있는 신선이 아닐까.(直疑身世玉壺仙).'- 담헌은 달빛, 나무그림자, 일렁이는 밤물결 등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극히 쉬우면서 조탁없는 시어로 묘사했다. 담헌은 1972년 10월 장인 송상기를 뵙고 완위각이 있는 진천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남원 광한루를 찾았다. 전통시대 겨울 여행은 조금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담헌은 특유의 산수애호 사상과 역마살(驛馬煞)적인 성격을 앞세워 그해 12월 한겨울에 광한루를 찾았있다. 여기에도 달과 함께 조탁없는 쉬운 시어들이
진천군 초평면 연담리와 문백면 은탄리 사이의 하천에는 '소두머니'로 불리는 독특한 지명이 존재하고 있다. 한자로는 '牛潭'(우담)으로 적는다. 소두머니는 물이 맑고 깊은 가운데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치 해수욕장을 연상케 하고 있다. 또 동쪽과 서쪽으로 길게 뻗은 산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어 명승의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일대는 산의 끝이 용의 머리같이 생긴데다가 마치 내를 건너는 형상이라 하여 도용(渡龍)골로도 불리우고 있다. 진천군에서는 이같은 전설을 바탕으로 매년 농다리에서 '소두머니 용신놀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나 전설의 출처는 연담-은탄리 하천의 소두머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이같은 명승을 그냥 지나칠리 없다. 조선 순조-고종 연간의 인물로 정해필(鄭海弼·1831-1887)이 있다. 그는 송달수(宋達洙)의 제자로, '조암집'을 저서로 남겼다. 그가 이런 시를 남겼다. '깊은 물 맑고 푸른데 산을 뚫은 듯(一泓澄碧穿雲山) / 조그마한 배는 역류에서 가볍게 출렁이도다(漁·輕·溯中間) / 도인을 따르는 곳에 진정한 낙이 있구나(道人隋處得眞樂) / 반나절이나 고기떼 새떼 오락가락하는 한가로운 곳 왕래하도다(牛餉管來魚鳥閒)'. 청주대 정종진 교수는
이하곤(1677-1724)의 장인 송상기는 대제학, 대사헌, 예조·공조판서 각 1번 그리고 이조판서를 무려 5번이나 역임하는 등 숙종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다. 특히 그 전에 충주목사, 충청도관찰사 때 선정을 베푸는 등 우리고장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충주목사 송상기(宋相琦)가 상소하여 백성의 일의 절급(切急)한 상황을 진달하고 청하기를, "한전(旱田)에 급재(給災)하고, 적곡(·穀)을 거두는 것은 3분의 1을 율(率)로 하며, 갑술년8709) 이전의 포흠은 한결같이 모두 탕척하고, 양진창(楊津倉)의 적곡은 전미(田米)로써 대봉하며…"'- 양진창은 충주읍성 북문 부근에 존재했던 국립창고를 말한다. 그러나 그는 신임사화 때 화를 입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됐다. 경종(장희빈의 아들)의 건강이 악화되자 누구를 후계자로 옹립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소론과 노론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소론이 "노론이 왕권교체를 기도한 역모를 하고 있다"고 공격, 김창집·이이명·조태채·이건명 등 노론계 대신들이 대거 축출됐다. 이른바 신임사화로, 여기에는 이하곤의 장인 송상기도 포함돼 있었다. 이하곤은 장인 송상기가 당시 67살 노구의 몸으로 강진에 유배되
이하곤의 진천 두타산 아래로의 낙향은 여느 선비들과 다른 면이 있었다. 조선 선비들의 낙향은 일반적으로 은거, 안빈낙도 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하곤의 낙향은 자연과 함께 숨쉬는 산수애호 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는 유배중에 있는 장인 송상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세상에 모든 화려한 영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연만을 바라보며 書史(서사)를 오락거리로 삼고 구름과 달을 좆으며 새와 물고기를 벗삼아 여생을 마치기만 바랄 뿐입니다.'- 문집 '두타초' 행간을 살펴보면, 이하곤은 47세(1723년·경종 3) 때 완전히 내려오기 전까지 진천으로의 낙향과 상경을 반복했다. 따라서 그의 중간 낙향은 엄밀한 의미로 '하향'(下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그는 진천으로 하향하면 완위각 인근의 자가소유 누정 뿐만 아니라 지금의 괴산 청천면 낙영산을 즐겨 방문했다. 그리고 멀게는 남원 광한루와 장인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도 찾아갔다. 그는 그때마다 시와 산문을 남겼고, 그 자체가 '이하곤 개인史'가 되고 있다. 이하곤의 부친 이인엽은 주천(지금의 초평천) 가에 증조 오촌(梧村) 이대건과 조부 벽오(碧梧) 이시발의 호에서 하나씩 취하여 '쌍오정'(雙梧亭
두타초 책 14에는 '題李一源所藏鄭선元伯輞川渚圖後'(제이일원소장정선원백망천저도후)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와 관련, 이하곤(李夏坤·1667-1724)과 친구 신정하(申靖夏·1681-1716)가 주고 받는 말로 먼저 이하곤의 말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는 병이 있어 남의 집에 소장된 것도 반드시 내가 모아둔 후에야 그쳤소. 근래 그렇지 못하였으니 기호가 이미 쇠퇴했다고 생각했소.(…) 내 집의 완위각에 단지 수 십 폭의 옛그림이 있는데 근래 제인의 필적은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없으니….' 이에 대해 친구 신정하는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느데 또 욕심을 내면 탐욕스러운 것'이라는 투로 답한다. '재대가 수장한 것이 어찌 많지 않겠습니까. 거두어 진천으로 돌아갈 때에는 수레에 실음 서화가 꼬리를 물고 길에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도 이제 이 화첩에 대해 틈새를 보며 갖고자 하는 생각이 있으니 이것은 참으로 많이 있으면서도 더욱 욕심을 내는 자입니다.' 인용문 중에 '이 화첩'이라는 표현, 제목 중에는 '鄭선元伯輞川渚圖後'라는 내용이 보인다. 바로 이 대화는 겸재 정선(鄭··1676∼1759)의 '輞川渚圖'라는 그림을 둘러싸고 이하곤이
이하곤의 낙향 의지 중심에는 역시 그의 진천 장서각인 '완위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완위각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장서돼 있었다. 아들 이석표(李錫杓·1704-?)가 아버지 이하곤을 추념하면 '담헌행장'을 지었다. 이렇게 적었다. "유독 서적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책을 파는 사람을 보면 심지어 옷을 벗어 책을 사니, 모아놓은 것이 거의 만권에 이르렀다. 위로는 경사자집에서 아래로는 패관소설, 의서, 점술서, 불가서, 도가서 등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행장은 죽은 사람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죽은 사람의 성명, 관향(貫鄕)·관작(官爵)·생졸연월·자손록 및 평생의 언행 등을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인용한 문장 중에 '만권'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이와 관련 일각에는 증조부인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에게 고서 수 천권을 받았다'는 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서지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재 종손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700여책을 조사한 결과, 증조부 이시발의 장서인(藏書印)이 찍힌 것은 단 1권이고, 나머지 모두는 이하곤의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