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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10.16 16:08:42
  • 최종수정2014.10.16 16:07:22

조혁연 대기자

시호(諡號)는 왕이나 왕족 그리고 신하들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한 호를 가리킨다. 이 시호는 그때마다 무원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3백여자의 글자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이중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정(貞)·공(恭)·양(襄)·정(靖)·양(良)·효(孝)·충(忠)·장(莊)·안(安)·경(景)·장(章)·익(翼)·무(武)·경(敬)·화(和)·순(純)·영(英) 등 120자 정도였다. 즉 시호는 이들 글자의 조합인 셈이다.

조선시대 시호는 4글자로 된 사자성어 형태로. 그 뜻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다. 가령 문(文)에는 박학호문(博學好文·널리 배운 것이 많고 글 읽기를 좋아한다), 충(忠)은 위신봉산(危身奉上·자기 몸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든다), 무(武)는절충어모(折衝禦侮·적의 창끝을 꺾어 외침을 막는다)의 뜻이 담겨져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만이 '충무공'(忠武公) 시호를 지닌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조영무(태종), 남이(세조), 이준(세조), 김시민(선조), 김응하(광해군), 이수일(인조), 정충신(인조), 구인후(효종) 등 9명에 달하고 있다.

이중 우리고장과 연고를 갖고 있는 인물로 적지 않아, 남이는 음성, 김시민은 괴산, 이수일은 충주 등에 유적이 남아 있다. 흔히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이순신의 한산도, 권율의 행주산성, 김시민의 진주대첩 등을 꼽고 있다.

1592년(선조 25) 10월 5일 진주에 이른 나가오카 다다오키(長岡忠興) 휘하의 왜군 약 2만 명은 수천 개의 죽제(竹梯·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진주성을 공격했다. 이에 진주목사 김시민이 지휘한 3천여명의 조선 군인과 민간인을 일주일 밤낮을 싸웠다.

결과는 조선군의 대승으로 다른 경상도 지역을 보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호남지방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관련, 그 승리의 원인으로 군-민 협력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틀리지 않은 분석으로 김시민은 '죽으려 해야 살 수 있다'는 사즉생을 호소했다.

'(김)시민이 스스로 울면서 효유하기를 성을 만일 보전 못하면 성중에 있는 천백 인(人)은 다 칼끝의 귀신이 될 것이니 사지(死地)에 놓인 뒤에야 살 계책이 생긴다는 옛말을 명심하라 하였다.'-<연려실기술 제15권>

이에 진주성 안의 민간인도 '돌과 불을 던지고 솥물을 퍼붓는' 방법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왜군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그 결과, '적이 마름쇠를 밟고 화살ㆍ돌멩이에 맞은 자가 수 없었고 쓰러진 시체가 삼(麻)가리 같았다'라고 연려실기술은 적었다.

조선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으나 김시민 자신은 싸움이 종결될 무렵 시체더미에 부상을 입고 숨어있던 왜군의 유탄을 맞고 며칠 후 사망했다. 전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내에서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가 평화가 찾아온 후 장례를 치뤘다. 이는 이순신의 노량대첩과 유사한 장면으로,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함께 내려진 이유가 됐다.

괴산읍 능촌리 김시민 장군묘.

당시 전투의 승리로 김시민은 경상우도병마사로 승진했으나 이때는 그 시신을 실은 상여가 함양에 다다른 때였다. 이후 김시민의 시신은 선친의 숨결이 남아있는 괴산에 묻혔다가 뒤에 충주살미면 신당리 건지산 언덕에 이장됐다. 그러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다시 지금의 괴산읍 능촌리 일대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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