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은 왜 지금의 청원 문의에 한 동안 모셔져 있었을까. 본보 '교과서 밖의 충북 역사'는 지난해 12월 19일자 기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다룬바 있다. 세종실록은 10년 8월 1일자에서 '문의현에 소장한 태조의 진영과 쇠붙이를 부어 만든 동상 그리고 공신의 영정이 있다'(文義縣太祖眞 文義縣太祖眞及鑄像 功臣影子)라고 썼다. 서울대 노병호 교수가 최근 이와 관련이 있는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지식산업사)을 출간했다. 왕건 동상은 1992년 10월 북한 당국이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인 현릉(개성 소재)을 개축하려 봉분 북쪽을 파던 중 굴삭기 삽에 걸려나온 청동상을 말한다. 138㎝ 크기의 청동상은 나상(裸像)에 통천관(通天冠)을 쓴 모습으로, 처음에는 불상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 책에서 노교수는 △동상이 나체상을 하고 있는 이유 △머리에 통천관이라는 관을 쓴 이유 △조선초 땅에 매몰된 이유 등을 해박한 논리로 설명했다. 그는 전자에 대해 고려사 신종 6년 9월조의 '최충헌이 봉은사에 가서 태조 진전에 (모셔진 태조의 주상에) 제사하고 겉옷과 내의를 바쳤다'는 내용을 들어 본래는 나신이 아니라 옷을 입고
보은 삼년산성(사적 제 235호) 주변에서 5-6세기 무렵의 신라 고분이 1천7백여기나 대량 발견됐다. 이는 그간의 '고분이 존재하고 도굴 흔적이 있다'는 소문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일부 수정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강경숙)은 24일 오후 보은군청과 고분군 현장에서 '보은 삼년산성 고분군 종합학술조사 보고회'를 가졌다. 연구원측은 지난해 5월부터 이달 하순까지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대야리, 풍취리, 길상리, 평각리 등 삼년산성 주변 지역(총면적 678만㎡)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 활동을 벌여왔다. 그 결과, 삼년산성을 중심으로 한 4개 방향의 산림과 구릉 지역에서 봉토분(봉분을 한 무덤) 168기를 포함한 총 1천762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보고서는 △모든 고분은 석재를 사용하여 석실(石室)이나 석곽(石槨) 형태로 만들었고 △유물로는 고배(高盃·굽이 달린 잔), 장경호(長頸壺·목이 긴 항아리), 파배(把盃·손잡이가 달린 잔) 등이 수습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같은 형태와 유물상을 바탕으로 '고분은 삼국시대 신라인에 의해 조성됐고, 그 시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충청도관찰사는 오늘날로 치면 충북도지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충북과 충남이 나눠져 있지 않은 만큼 관할 면적이 훨씬 넓어 54개 고을을 관리 감독했다. 충청도관찰사는 종2품의 외관직으로, 달리 감사·도백·방백·도선생이라고도 불렀다. 관찰사가 일을 보는 관청은 감영·영문·순영이라고 불렀고, 이들에게는 이른바 직계권이 주어졌다. 직계권은 국왕 외에 다른 부서의 통제나 명령을 받지 않고 상당히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권한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보고는 국왕 앞으로 했고, 임금 외에 누구도 관찰사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관찰사도 임금이 보낸 암행어사에게 비리나 안일한 근무태도가 적발되면 파직 등을 당하곤 했다. 관찰사는 지방장관을 임명하는 것인 만큼 그 절차는 다소 복잡했다. 먼저 관료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이조에서 후보자를 3배수 뽑아 올린다. 임금은 이중 한 명을 낙점, 통보하게 된다. 그러면 임면을 받은 인물은 궁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게 된다. 이를 '사조'라고 불렀다. 전현직 관찰사는 도계에 교귀소(交龜所)라는 곳에서 임무 교대식을 가졌다. 조선시대 관찰사 인장은 그 뚜껑이 공통적으로 거북이 모양을 하고
'초록 행복 푸른 꿈'을 슬로건으로 한 옥천 이원묘목축제가 오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전국 과수묘목의 60-70%를 차지하는 옥천이원묘목은 8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략 1930년대부터 묘목을 전문적으로 생산했다. 1930년대는 일제 억압통치가 정점을 향하던 시기로, 묘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당시 이원면에는 안헌귀(1908-1970)라는 분이 생존해 있었다. 이원리 태생인 그는 한 동안 교편생활을 하다 1939년 귀향, 영농에 종사하게 된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30년이 지난 1964년에 충북도에서 발간한 '흙과 땀'(청구출판사)이라는 농촌 계도지에 싣게 된다. 당시 충북도지사는 후에 농협중앙회장도 역임하는 신명순(申明淳) 씨였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랫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을 발굴해낸 사람이 현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장으로 있는 이재하 씨다. 그는 옥천이원묘목이 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는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고 안헌귀 선생의 아들이 소장하고 있던 계도지를 찾아냈다. 이 글에 따르면 옥천 이원에서 묘목 생산을 처음으로 한 인물은 내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이원의 묘목생산은 일인(日人)
진천군의 지명변화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자세히 실려 있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 만노군이었는데 신라가 흑양군으로 고쳤고, 고려가 진주(鎭州)로 고쳤다. 1259년(고려 고종 46)에 위사공신 임연(林衍)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켰다.'- 영조 때 쓰여진 여지도서(1757)는 이후에 지명 변화에 대해 '임연이 죽자, 다시 진주현으로 하였고, 태종 때 진천현으로 고쳤다. 연산군대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충청도로 복원되었다'라고 적었다. 인용문의 내용은 지금의 진천이라는 지명이 고려 때 지명이 진주(鎭州에서 비롯됨 것임을 알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역 사학자는 '진천의 호족이 왕건에 대항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진(鎭)'자가 유래하였다'라고 밝혔다. 이 주장의 대칭점에 위치하는 것이 청주의 '청'(淸) 자이다. 방금 전에 '왕건에 대항한 반란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때의 반란군은 분명히 청주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당시 청주는 왕건이 아닌 궁예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궁예는 '철원에 성을 쌓는데 청주사람 1천여명을 데려갔다'고 사료는 적고 있다. 일설에는 궁예가 유년시절에
공주 석장리 구석기박물관은 '북경원인 한국에 오다' 특별전을 오는 4월 2일부터 일년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북경 원인(原人)과 이빨이 긴 고대 호랑이인 검치호 화석 등 주구점(周口店) 유적에서 발견된 75점의 구석기 유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인류진화 이야기 안에는 호모 에렉투스(직립인간이라는 쯧)인 북경원인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북경 주구점 근처에서는 과거 '용골(龍骨)'이라 불리는 각종 동물의 뼈가 자주 발견됐고, 이곳 주민들은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1929년 중국 고고학자 裵文中은 이같은 소문을 바탕으로 북경 서남쪽에 위치한 주구점에서 사람 두개골 화석, 사슴, 호랑이, 코뿔소 등의 동물뼈를 다량 발굴했다. 이와 함께 6m 높이의 잿더미(灰) 층과 불탄 뼈도 상당수 발굴했다.이 두개골 화석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접해왔던 북경원인(Peking Man)으로 50만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로 판정받았다. 이 발견으로 △호모 에렉투스가 도대체 원숭이인가 아니면 사람인가의 논쟁이 해결됐고 △이로 인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호모 에렉투스가 존재했으며 △당시 50만년전 사람들은 불을 사용·저
조선시대에는 정식 행정지명 외에 별칭도 많이 사용했다. 경상도는 영남(嶺南), 전라도는 호남(湖南), 충청도는 호서(湖西)라고도 불렀다. 딱딱한 행정 명칭에 비해 한층 시적이고 정감있는 표현이다. 영남할 때의 '영'이 어느 고개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문학자들 사이에 견해차가 존재한다. 혹자는 우리고장 단양의 죽령, 또 다른 이는 영동의 추풍령을 일컫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죽령설이 다소 우세한 편이다. '죽령 남쪽'이면 경상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 반면 추풍령은 경상도의 허리 쯤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상도 지역을 모두 아우를 수 없다. 호남에 대해서는 어문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오랜 역사를 지닌 김제 벽골제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호남은 '벽골제 남쪽 지방' 정도가 된다. 우리고장 충청도의 별칭인 호서의 '호'에 대해서는 금강, 의림지, 미호천 등 대략 3가지 설이 존재하고 있다. 금강의 또 다른 명칭이 호강(湖江)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호서를 금강의 서쪽으로 보면 지금의 충북지역은 호서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제천 의림지 설도 약점을 지니고 있다. 충청도 모두를 아우르기에는 위도가 높고, 또 의림지 서쪽은 경기도
전회에 우리고장 영동을 소개할 때 윤상(尹祥·1373∼1455)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인용한 바 있다. '산과 물이 맑고 기이하다. 윤상(尹祥)이 금유(琴柔)에게 보낸 글에, "영동은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해서 시(詩) 짓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 했다.'- 윤상은 경상도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나서 과거를 통해 양반 신분이 된 인물다. 과거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놓은 방목(榜目)을 보면 그는 태조 때 진사와 생원시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조선시대에는 형식상 서얼을 제외하고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준비에는 적지 않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평민(양인)이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려 때 향리는 한 지역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향리(아전)는 수령의 보좌역으로 중인에 해당했다. 윤선이 이런 환경에서 오늘날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문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료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적지 않이 등장한다. '공은 자질이 아름답고 총명이 뛰어나게 태어났다. 향리로서 고을 일을 맡아 볼 적에 고된 사무를 보면
1413년(태종 13)은 한국 지명 변천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때 지명에 위계성을 부여하는 계수관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그 결과, 충청도 4개 대읍인 청주, 충주, 공주, 홍주 등은 '州'(주) 자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반면 소읍이라고 할 수 이는 괴주는 괴산, 옥주는 옥천, 제주는 제천, 진주는 진천으로 각각 지명이 변했다. 이 과정에서 괴산같이 산이 많은 고을에는 '山' 자가, 물이 비교적 풍부한 곳에는 '川' 자가 붙었다. 충북 최남단인 영동(永同)의 지명에는 이같은 사례가 적용되지 않았다. 영동은 신라 경덕왕 때 길동군에서 영동군으로 변한 후 그 지명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본래 신라의 길동군(吉同郡)인데,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 을미에 계주자사(稽州刺史)로 승격하였다가, 목종 8년 을사에 자사를 폐하였고, 현종 9년에 상주(尙州) 임내에 붙였으며, 명종 임진 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인용한 문장은 영동이 한 때는 계주(稽州)라는 지명을 지녔었고, 또 경상도 상주에 속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현종 9년은 대략 1018년이 된다. 따라서 영동은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경상도에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인들은 일광욕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이 짧은 탓에 해수욕장이 아닌, 풀밭에서도 신체를 거리낌없이 노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고인류학자들은 해외토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같은 모습에서도 현생인류가 다양한 피부색을 지니게 된 이유를 찾고 있다. 의학적으로 피부는 신체 가장 바깥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0.1㎜ 두께의 표피 색깔을 의미한다. 이 세포에 어떤 멜라닌 색소가 들어있는가에 따라 피부색이 결정된다. 멜라닌은 유멜라닌(고동색 또는 흑색)과 피오멜라닌(적색 또는 황색) 등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어두운 색, 후자는 밝은 색을 발현하게 된다. 이때 멜라닌 색소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멜라노코틴이라고 불리는 수용체이다. 이 수용체의 염기서열에는 다양한 변이가 존재, 같은 인종 안에서도 다양한 농도의 피부색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현상'으로, 인류과 동물이 해당 유전적 인자를 획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경로를 거쳤다. 고고인류학자들은 인류과 얼굴은 △처음에는 창백했고 △이후 검어졌으며 △다시 아프리카에서 지구 북반구로 향하는 과정에서 밝은 색을 띄게 됐다는데 어느정도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충북일보] 전교조 충북지부와 전국공무원노조 충북지역본부·충북소방지부·충북교육청지부는 19일 "정부는 공무원 생존권 보장을 위해 임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임금은 100명 이상 민간사업장 대비 2023년 기준 83.1%까지 하락해 역대 최대로 격차가 벌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의 지난해 공직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직무 만족도는 하락하고 이직 의향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며 "5년 이하 재직 공무원의 72%, 6∼10년 재직 공무원의 75%는 이직 의향의 이유 1순위로 '낮은 보수'를 꼽았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우리의 요구는 최소한 실질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며 "정부는 내년도 공무원 임금을 6.6% 인상하고, 공무원 임금이 100명 이상 민간사업장 대비 100%에 도달하도록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집행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기본급 인상과 함께 공무원 하위직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액급식비 3만 원 인상, 6급 이하 직급보조비 3만5천 원 인상, 초과근무수당 단가 감액률 인상, 명절 휴가비·인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충북의 핵심 전략이자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클러스터 구축이 추진될 전망이다. 도내 반도체 기업이 집적화한 지역에 조성해 충북 반도체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충북도는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 수립을 위한 기획 연구용역에 들어갔다고 19일 밝혔다. 용역 기간은 오는 11월까지 6개월이다. 용역을 맡은 업체는 충북 지역 반도체 앵커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분포와 국내외 반도체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도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진단하고 다른 시·도의 우수 사례 등을 통해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충북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의 필요성과 논리를 개발한다. 클러스터 지정에 따른 전략과 로드맵을 마련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핵심 분야 선정과 산업 생태계 강화 전략도 수립한다.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분석해 당위성을 검토한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와 기회발전특구와 연계하는 방안도 살펴본다. 가속기는 청주 오창에 구축 중이며 특구는 지난해 11월 제천과 보은, 진천, 음성 지역의 5개 산업단지가 지정됐다. 면적은 109만6천500평(362만4천986.2㎡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