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제는 전통시대 나라 안에서 지진 등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지내던 제사를 말한다. 옛사람들은 나란 안에서 괴이한 일이 일어나면 자연속의 기 흐름이 응어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괴제는 문헌상 고려 현종 14년에 처음 등장한다. '을해일에 金州에 지진이 있었다. 이때부터 지진이 발생한 자리에 해괴제를 지낼 것을 명하였다.'- 고려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교다. 그러나 고려의 조정은 불교 만큼이나 점술을 믿고 숭상했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복주(지금의 안동)를 거쳐 우리고장 청주에 5개월 가까이 머무른다. 이를테면 청주가 한때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한 셈이다. 홍건적이 거의 물러나가 공민왕은 점술가를 불러들여 '어느날 개경으로 환궁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점쳐보게 한다. 고려 조정에서의 주술을 그만큼 일상적인 것이었다. 해괴제도 그 범주의 하나에 속했다. 조선시대의 해괴제는 문헌상 태조 7년에 처음 등장한다. 해괴제는 자연에 지내는 제사의 일종으로 반드시 축문을 지어 읽었다. 해괴제는 지방뿐만 아니라 궁궐 자체에서도 지냈다. 이때 가장 많은 원인 제공자는 엉뚱하게도 부엉이 울음소리였다. 당시 궁궐에서는 부엉이 울음소리를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
아직도 윤기가 느껴질 정도의 4백여년 전 조선 여인의 복식이 발견돼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사부가(思婦歌)의 애뜻한 사연을 담아 넣어준 이 여인의 묘지명(墓誌銘)도 발견돼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1일 충북대박물관(관장 양기석 교수)은 "성주이씨 문중이 얼마전 이문건 부인 안동김씨 묘를 경북 고령에서 충북 괴산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철릭(帖裏), 묘지명, 모자 등을 발견해 최근 본 박물관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또 도포끈을 매는데 쓰는 세조대(細條帶)와 백자 항아리 등도 10년 보관 조건으로 기탁했다고 충대 박물관은 밝혔다. 기탁된 철릭은 안동김씨(돈이)가 1566년(명종 21) 사망한 후 묘에 부장된 유품의 하나로, 4백4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윤기가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따라서 한국 복식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도내에서는 지난 1977년 발견된 순천김씨(1580년 추정) 의복이 비교적 오래 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크기는 세로 길이 131㎝, 한쪽 저고리 길이 113㎝ 등으로, 윤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비단이 재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께 출토된 23x17㎝ 크
조선전기 복지제도의 하나로 연호미법(煙戶米法)이 있다. 이는 풍년들 때 쌀을 더 거뒀다가 흉년이 들면 다시 나눠주던 제도를 말한다. 규정대로 시행됐으면 매우 이상적인 복지제도로 볼 수 있다. 고려 현종 14년(1023)에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조선 태종 7년(1407)까지 계속 시행됐다. 그러나 연호미법은 그 직후 폐지된다. 탐관오리가 중간에서 농간을 자주 부렸다. 이들은 세미를 과다하게 설정해 놓고 그 차이를 중간에서 빼돌리는 수법으로 착복을 했다. 조선전기 청주목사를 지낸 인물로 김자수(金自粹·?~?)가 있다. 그의 본관은 경주, 호는 상촌(桑村)으로, 김세필이 그의 고손이 된다. 그는 시문이 동문선에 실릴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다. 그가 우리고장의 사례를 들어 연호미법의 폐지를 주장했다. '우선 충주·청주의 두 고을로 본다면, 청주는 원래의 전지가 1만 3천 9백 80결(結)인데, 더 늘어난 것이 5천 70결이고, 충주는 원래의 전지가 1만 6천 1백 70결인데, 더 늘어난 것이 4천 5백 70결이니, (…) 이것은 탈루가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이런 때를 당하여 또 연호미(煙戶米)를 거두게 되면, 백성들의 원망이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충북의 인구가 오는 2040년에는 2010년보다 12.4% 증가한 171만1천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국평균 증가율 3.4%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로, 향후 세종시와 그 주변지역이 인구 흡입구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됐다. 27일 통계청이 전국 15개 광역단체의 향후 30년 동안의 인구 추이를 분석한 '장래 인구추계 시도편' 자료를 발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충북의 인구는 오는 2020년에는 162만7천명, 2030년에는 169만7천명, 2035년에는 171만3천명으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2040년에는 171만1천명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2040년의 전망치는 2010년과 비교해 18만9천명(12.4%)이 증가한 수치이다. 2040년 충북의 인구 피라미드는 고령자가 청·장년층보다 많은 역삼각형 모양의 항아리형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이 항아리는 단순한 것이 아닌, △여성이 더 장수하고 △30대 연령층이 가장 적으면서 허리가 작록할 것으로 전망됐다.(그래프 참조) 이같은 모습은 현재의 출산률이 최저 현상을 보이면서, 그 인구 피라미드가 30년 후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밖에 충북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판에 '가뭄'이라는 단어를 열쇠말(키워드) 방법으로 입력하면 무려 1천18건이 검색된다. 추출된 데이터를 월별로 살펴보면 4-7월에 집중돼 있고, 지역별로는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순이었다. 최근의 가뭄현상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가뭄은 남한과 북한 모두 한반도 서쪽 사면이 심하다. 기상청은 이에 대해 '금년 상반기는 동쪽의 오흐츠크해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한 세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상학상 오흐츠크해 고기압이 강하면 이른바 푄현상이 나타나면서 그 서쪽 사면에서는 가뭄과 함께 고온현상이 찾아온다. 뿐만 아니라 장마전선도 브로킹을 당하면서 북상이 느려지게 된다. 이것은 가뭄의 장기화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땅거죽이 타들어가는 극심한 가뭄현상은 17-18세기에 많이 찾아왔다. 17세기는 임진왜란의 종전 직후가 된다. 때문에 당시 이 땅의 민중들은 전쟁에 천재까지 겹치면서 도탄에 빠진 삶을 살아야 했다. 어떤 학자는 이같은 '악기후'가 조선후기의 농민반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우리고장 충청도에도 가뭄현상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실록에는 '강물이 끊겼다'는 표현이 더러
조선시대에는 태(苔), 장(杖), 도(徒), 유(流), 사(死) 등 이른바 오형이 존재했다.태는 회초리로 치는 것, 장은 곤장으로 때리는 것, 도는 징역형, 유는 귀양보내는 것, 사는 말 그대로 사형을 의미한다. 이중 유배는 사형에 버금가는 형벌로 중형에 속했다. 그러나 유배형은 조선시대 사대부치고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빈번하기도 했다. 유배형의 첫 시작은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 그것도 기약없이 이별하는 것은 슬픔을 동반한다. 조선 인조-숙종 연간의 인물로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있다. 그는 평안도 선천, 함경도 극변, 경상도 남해 등에서 유배를 당하는 등 일생의 상당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낸 인물이다. 때문에 김만중은 한글소설 '사씨남정기'의 저자로 잘 알려졌지만, 유배시를 많이 짓기도 했다. 그는 평안도 선천으로 첫 유배를 떠나며 가족과 헤어지는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슬픔을 머금은 채 어머님과 이별하고 / 손을 들어 친척들과 헤어졌네 / 가을날 서성길에 / 관하에 홀로 가는 사람이라네 / 또 망발인 줄 분명히 알지만 / 어떻게 깊은 은혜 갚을 수 있나 / 그래도 구구한 뜻이 있지만 / 이제부터 피지 못할까
조선시대에는 가뭄 등 천재지변이 찾아오면 임금의 부덕함으로 하늘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그 노여움을 풀기위해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 조정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를 지내는 것 외에 산에 올라가 장작불을 놓고 기우제를 지냈다. 흰 연기가 하늘에 닿으라는 의미에서 였다. '종묘·사직·원단과 명산 대천(名山大川)에 비를 빌었다. 임금이 오랫동안 가뭄으로 인하여 대전(大殿)에 나아가 정사를 듣지 아니하고, 날마다 더욱 두려워하여 수성(修省) 하였다.'- 태종대는 가뭄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자 저자에는 '태종이 이복 동생들을 죽이고 보위에 올랐기 때문'(1차 왕자의 난 지칭)이라는 쑥덕공론이 나돌았다. 태종이 기우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임금이 내관을 시켜 불러서, 역마(驛馬)를 타고 함께 이르렀다. 임금이 말하기를, "들으니 네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를 위하여 한번 비를 빌라." 하였다. 이에 가학이 재계(齋戒)하고 사흘이면 반드시 비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인용문 중에 '가학'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성이 문(文) 씨인 그는 경상도 진주 사람으로 목화로 유명한 문익점의 조카이다. 그의 기도가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태
주역은 계절에도 음양이 있는 것으로 봤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 1-6월은 양, 그 이후는 음의 기운이 강하다고 믿었다. 전반기 명절인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등은 모두 양수(陽數)의 결합을 하고 있다. 반면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7월 이후부터는 저녁이나 달(月)과 관련된 절기문화가 전면에 등장한다. 7월 칠석에 '저녁 夕' 자가 들어가 있고, 8월 15일은 한가위 대보름이다. 금년은 오는 24일이 단오이다. 우리 선조들은 단오날 창포로 빚은 창포주(菖蒲酒)를 즐겨 마셨다. 실록에도 임금이 직접 창포주 제조를 하명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참의 황자후(黃子厚)에게 명하여 창포주(菖浦酒)를 만들게 하였다.'- 이처럼 선조들이 창포주를 즐긴 것은 취흥보다는 질병 퇴치에 목적이 있었다. 허준은 창포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창포주방(菖蒲酒方) 뿌리를 교즙하여 찹쌀의 양과 상반(相半)되게 한 다음, 상법대로 양조하여 구복(久服)하면 연년익수(延年益壽)하고 신명(神明)을 통한다."- 단오가 양기의 절정을 이루는 때이기는 하나 하지(夏至) 뒤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날 이후로는 음의 기운이 조금씩 돋아나기 시작하는 등 기(氣)의 환절기에
조선 영조-순조 연간의 인물로 성대중(成大中·1732∼1812)이 있다. 그는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할 처지였으나, 신분상승 운동의 일종인 서얼통청에 힘입어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저서 중에 '청성잡기'(靑城雜記)라는 것이 있다. '윤구연의 점괘는 삼남에 죽을 것(死於三南)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가 삼남 지방의 관직에 부임하지는 않았지만 남병사(南兵使)로 부임하여 남태회의 상소에 의해서 남대문(南大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실록에도 충청도 병마절도사 출신인 윤구연이 당시 대사언이던 남태회(南泰會·1706∼1770)의 상소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난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대사헌 남태회가 아뢰기를, "남병사 윤구연은 자신이 수신이면서도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 지엄함을 염두에 두지 않고 멋대로 범양하여 매일 술에 취한다는 말이 낭자합니다. 이와 같이 법을 능멸하는 무엄한 사람을…"'- 윤구연이 즉시 체포돼 한양으로 이송됐고, '멋대로 범양하여 매일 술에 취했다'는 증거를 찾기위한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그 결과, 윤구연의 근무처에서 '술냄새 나는 항아리'가 발견됐다.
수령이 오래되고 형질이 우수한 충북도내 천연기념물 노거수가 유전자 보존 시스템에 힘입어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19일 문화재청은 괴산 삼송리·적석리, 보은 서원리를 포함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국 노거수(老巨樹) 17그루의 DNA를 분석·보존하는 유전자은행(DNA BANK)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유전자은행은 천연기념물의 잎에서 DNA를 추출·분석해 개체 동정(同定)이 가능한 DNA 지문을 확보, 우월한 유전자를 영구히 보존하는 사업을 말한다. '동정'은 생물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식물종을 분류하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괴산 청천군 삼송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 290호)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13.5m, 가슴높이 둘레는 4.91m이다. 일대 숲 중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 불리고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처럼 꿈틀거렸다고 하여 용송(龍松)으로도 불리운다. 괴산 연풍면 적석리 소나무(〃 제 383호)는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21.2m, 가슴높이 둘레는 3.48m이다. 속리산의 정2품송과 비슷하나, 줄기가 끝으로 가면서 5도 정도 기울면서 자랐다. 줄기 윗부분이 적송(赤松) 특유의 붉은 빛을 띠고
[충북일보] 전교조 충북지부와 전국공무원노조 충북지역본부·충북소방지부·충북교육청지부는 19일 "정부는 공무원 생존권 보장을 위해 임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임금은 100명 이상 민간사업장 대비 2023년 기준 83.1%까지 하락해 역대 최대로 격차가 벌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의 지난해 공직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직무 만족도는 하락하고 이직 의향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며 "5년 이하 재직 공무원의 72%, 6∼10년 재직 공무원의 75%는 이직 의향의 이유 1순위로 '낮은 보수'를 꼽았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우리의 요구는 최소한 실질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며 "정부는 내년도 공무원 임금을 6.6% 인상하고, 공무원 임금이 100명 이상 민간사업장 대비 100%에 도달하도록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집행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기본급 인상과 함께 공무원 하위직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액급식비 3만 원 인상, 6급 이하 직급보조비 3만5천 원 인상, 초과근무수당 단가 감액률 인상, 명절 휴가비·인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충북의 핵심 전략이자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클러스터 구축이 추진될 전망이다. 도내 반도체 기업이 집적화한 지역에 조성해 충북 반도체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충북도는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 수립을 위한 기획 연구용역에 들어갔다고 19일 밝혔다. 용역 기간은 오는 11월까지 6개월이다. 용역을 맡은 업체는 충북 지역 반도체 앵커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분포와 국내외 반도체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도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진단하고 다른 시·도의 우수 사례 등을 통해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충북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의 필요성과 논리를 개발한다. 클러스터 지정에 따른 전략과 로드맵을 마련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핵심 분야 선정과 산업 생태계 강화 전략도 수립한다.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분석해 당위성을 검토한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와 기회발전특구와 연계하는 방안도 살펴본다. 가속기는 청주 오창에 구축 중이며 특구는 지난해 11월 제천과 보은, 진천, 음성 지역의 5개 산업단지가 지정됐다. 면적은 109만6천500평(362만4천986.2㎡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