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안개의 의미

유희동

기상청장

우리가 봄과 가을에 쉽게 접하는 기상현상 중 하나는 안개다. 안개는 '지표 부근에 있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해 작은 물방울 또는 얼음 알갱이 형태로 떠 있는 기상현상'으로, 기상청에서는 지표면에서 목표를 식별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인 시정이 1㎞ 미만일 때를 안개로 정의하고 있다. 안개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한 수증기의 포화로 인해 발생하는데, 그 종류로는 공기의 냉각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사안개, 이류안개, 활승안개와 수증기의 증발로 발생하는 전선안개, 김안개 등이 있다.

안개가 발생하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져 교통사고가 빈번해지고, 이는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의 충북도 연평균 기상상태별 교통사고 현황을 살펴보면, 맑은 날에 비해 안개가 발생한 경우 치사율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2006년 10월 3일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사고와 2015년 2월 11일 발생한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추돌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영종대교 사고로는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와 같은 사고의 기억 때문에 사람들은 안개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듯하다. 특히, 자주 안개 지역을 통행하는 운전자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가을에 발생하는 안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만한 가치가 있다. 흔히 가을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살기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가을 안개에는 곡식이 늘고, 봄 안개에는 곡식이 준다'는 말도 있다. 이는 가을에 안개가 끼면 날씨가 따뜻해 곡식이 영글어 수확량이 늘고, 봄 안개는 심한 기온 차로 자라는 보리에 병을 발생시켜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가을에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서 지표면에 냉각돼 발생하는 복사안개가 자주 나타난다. 지표면에 안개가 끼면 하늘 위로 올라갈 수증기의 양이 줄어들어, 그만큼 구름이 생길 확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가을철 새벽에 안개가 많이 끼면 비가 적게 내리고 날씨가 화창해 곡식이 잘 영글어 풍년이 드는 것이다.

기상청에서는 안개 발생에 따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안개 발생 현황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 도로관리기관, 언론사 등에 안개 기상정보를 전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도로에서 발생하는 기상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관측하고 전달하고자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도로기상관측망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안개 관련 교통사고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는 안개로 인한 교통사고가 줄어들어, 가을 안개가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불청객'이 아닌, 천고마비의 계절에 풍요로움을 더하는 '반가운 징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