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독일을 출발하여 오스트리아 ‘짤즈캄머굿’을 향하여 달렸다. 오스트리아는 남한보다 약간 적은 면적에 인구는 800만 정도이고 언어는 독일어를 쓴다. 차창 밖으로 초록목장이 쉬지 않고 나타난다. 초장위에는 얼룩소들이 바둑돌을 놓은 듯 붙어있고 집들은 갈색이다. 갈색과 초록, 풀을 뜯는 가축들, 그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된다. 멀리 만년설을 덮은 알프스 한 자락이 그림인 듯 왔다 멀어진다. 국경을 넘는데 컨트롤하지 않는다. 옆 동네로 마실가는 차를 늘 보는 것처럼 유연하게 통과시킨다.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의 고향 ‘짤즈캄머굿’에 도착했다. 이곳은 76개 호수와 많은 산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모차르트 할아버지가 시장과 판사생활을 했다는 ‘길겐’ 마을 한가운데 모차르트 어머니와 누나가 생활했던 외가건물이 있다. 그 옆에 작은 성당이 보여 안뜰로 들어서니 정원처럼 꾸며진 공동묘지가 있다. 동네 한가운데 공동묘지라니, 묘지하면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그들에게 죽은 자는 어제까지 함께했던 가족일 뿐이다. 몸은 볼 수 없지만 성당에 올 때마다 평소처럼 교감하며 산단다. 삶과 죽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는 그들 문화에 고개 끄덕였다.

볼프강 호수 유람선에서.

볼프강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 갑판위에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호수를 품고 있는 길겐 마을을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태양의 끝 동네, 모차르트 외가가 있는 ‘길겐’ 마을…. 한 장의 그림엽서다. 배는 음악처럼 미끄러지는데. 수면위로는 햇살이 부서진다. 호수양쪽으로 지나치는 산에는 단풍이 시나브로 물들고, 그 천혜의 풍경에 묻힌 별장들이 이따금씩 나타나 하루쯤 묵어가고 싶게 한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외관.

‘짤즈부르크’로 이동했다.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노란건물에 빨간 헝겊이 내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차르트가 17세까지 살던 집이다. 한편의 영화가 얼마나 사람을 감상적이게 하는지 모른다. 전 세계를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했던 영화 ‘사운드오브뮤직’ 배경지 ‘미라젤’ 공원으로 갔다. 해군대령을 사랑한 마리아수녀로 인해 가슴 뛰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어디선가 환상의 도레미송이 들릴 것 같다. 마리아와 아이들이 춤추던 잔디밭을 걸은 뒤 ‘호엔성’으로 갔다. 신비감이 도는 회색성이 언덕에 있다. 회색빛이 주는 음산한 저 성에 누군가 있을 것 같다. 침묵 속에 평온을 유지하는, 어두운 영이라도 살 것 같다. 그러나 성에는 관광객들만 있다.

빈 국립대학 건물.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낭만이다. 빈 국립음대가 있는 오스트리아수도 비엔나로 입성했다. ‘비엔나’ 하면 귀족적이고 화려하며 예술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모두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빈에서 활동했으며, 독일 출신 베토벤도 빈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이곳이 고전음악의 중심이라는 데서 오는 선입견일 것이다. 하지만 빈의 역사는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에게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합스부르크’ 왕가 가문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나폴레옹에게 패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쇠락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프로이센에 패하여 독일통일의 지도권을 빼앗겼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500년 ‘합스부르크’황제 가는 몰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최고 위치에서 호령도 해보고 쓰라림 아픔 다 겪고 나서일까. 알프스와 도나우, 수려한 경관 속에서 음악과 함께 살아서일까. 그들은 멋지다. 국민소득 5만2천불인 그들을 보면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고 했던 김부식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갔어도 유물은 남는다.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융성했던 영광을 보여주는 쉘브른 궁전에는 많은 유물들이 있다. 전설의 여인 ‘마리아테레지아’ 초상화 앞에 섰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여왕이었던 이 여왕의 공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중 최대 명문대학으로 발전한 빈 국립대학은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큰 자부심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비엔나커피를 모른다. 하지만 비엔나에 와서 어찌 비엔나커피를 안 마실 수 있겠나. 고즈넉한 찻집에서 우리식 비엔나커피(멜랑쥐)를 시켜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임미옥

청주시1인1책프로그램강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