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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청년 둘이 비엔나 서부역 근처에 있는 한인 민박집을 주눅이 든 얼굴로 들어와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세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밤 열시가 다 되어 이 집에 들어오기까지 이들이 거친 민박집만 대여섯 군데가 넘는다. 어떤 집에서는 빨래가 너무 많다고 해서, 다른 집에서는 시간이 늦었다고 해서, 또 다른 집에서는 세탁비용을 너무 비싸게 받아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세탁을 해 주겠다고 한다.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묻는 청년들에게 한국 사람들끼리 무슨 돈을 받느냐고 하면서 짐을 맡아줄 테니 시내 구경을 하고 오라고 한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와보니 아주머니는 그 많은 빨래를 깨끗이 빨아서 널어놓았다. 살다보면 빨래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 중 한 명이 유럽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려놓았고 나는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보다 더 감동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내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엔나에 이십 년 넘게 살고 있는 내 친누나다.

누나는 작년 가을에 민박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하는 성격이니 잘 해나갈 것 같았다. 그녀는 한국에 있을 때 영양사 일을 했고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 자격증만 걸어놓는 조리사가 아니라 우리 엄마의 요리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솜씨 있는 조리사다. 그녀가 끓인 된장찌개를, 그것도 비엔나에서 먹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민박집 위치도 좋고, 매형이 인테리어를 하니 시설은 최신식이고, 음식도 맛있겠다, 여주인도 친절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뒤져서 먼저 가본 사람들이 추천하는 민박을 찾는데, 아직 누나네 민박은 인터넷에 알려지지 않았다. 정보가 없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민박이 별로여서 정보가 올라와 있지 않은 거라고 해석한다. 누나와 비슷한 시기에 근처에 문을 연 민박 주인은 손님들에게 부탁을 해서 인터넷에 추천 글을 올리는 방법으로 손님을 모았다. 제법 효과가 있어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골손님은 없었다. 거짓 정보에 한번은 속아도 두 번 속는 바보는 없다.

누나네 민박에 일본에서 온 할아버지가 묵은 적이 있다. 아침식사도 푸짐하게 해주고 인터넷이나 전화, 복사기도 모두 무료로 사용하게 하면 남는 게 있느냐며 안타까워하더니 전단지를 만들어 서부역으로 나갔다. 남은 여행 일정도 취소하고 며칠 동안 전단지만 돌리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누나네 민박에 묵었던 손님들이 모두 일본 할아버지처럼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입소문을 내 주어서 올 여름 성수기부터 빈 방이 없을 정도로 많은 손님을 받았다. 성수기가 끝난 뒤에도 누나네 민박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 휴가철 막바지에 누나는 믿을만한 후배에게 민박을 맡기고 일주일 정도 가족들과 휴가를 갔다 왔다. 후배가 성심성의껏 했는데도 손님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나 보다. 손님 중 한 명이 영향력 있는 여행 사이트에 안 좋은 평가를 해 놓았다. 누나는 그 글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일 년 넘게 고생해서 자리가 잡힐 만 할 때 터진 악재여서 더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누나네 민박에 묵은 적이 있던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반박 글을 단 것이다.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었고 오히려 누나네 민박을 제대로 홍보하는 효과를 얻었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대학이 한국식 문화대혁명을 겪고 있는 요즘, 나는 이 진부하고 순진해 보이는 말이 사실이길 바라게 되었다. 세계 100위 대학 안에 우리나라 대학이 두세 개 올랐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이 '그 정도로 되겠어· 우리가 싹쓸이를 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바보가 아직도 대학에 순위를 매기는 거야· 이러다가 조만간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 지도 기사로 나오겠구만' 하며 코웃음을 치게 되기를 바란다. 서비스가 별로인 민박이 꼼수를 부려도 얼마 못가서 파리만 날리게 된 것을 보면, 엉터리 평가로 여론 몰이를 하는 세력들도 앞날이 창창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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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