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민씨 일가의 수구파들은 갑신정변 때 당한 치욕을 곱씹고 있었다. 고종은 김옥균(金玉均·1851-1894) 암살을 위해 칼잡이(자객)를 거푸 일본에 밀파했다.1885년에 장은규(張殷奎·일명 장갑복 또는 장응규), 1886년에는 지운영(池雲英·1852-1935)을 몰래 보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김의 암살에 실패했다.장은규는 평민출신으로, 고종의 아들(의화군, 후에 영친왕)을 낳았다는 이유로 명성황후(민비)에게 미움을 받아 궁중에서 쫒겨난 장상궁의 오빠다. 그는 한때 충주 노은면에 살았던 민응식의 주선으로 고종에게 접근해 1만5천엔의 행동자금을 받고 김옥균 암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김옥균을 한번 만난 후 더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거금을 물쓰듯 하며 환락에 빠졌다. 당시 일본경찰은 '요시찰 거동' 제목의 정보문건을 통해 "장은규는 나가사키의 게이샤(유녀)를 첩으로 삼아 고베에서 여관을 경영하고 있다"라고 외무대신에게 보고했다.본관이 충주인 지운영은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인 지석영의 친형으로, 국내 제 1호 사진사이기도 하다. 그는 1882년 수신사 일행으로 간 일본에서 사진술을 익혀 훗날 고종의 초상화용 사진을
일본의 극우 세력이 준동하면서 최근의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흡사 구한말 같다는 표현이 적지 않다. 구한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자 개화운동가인 김옥균(김玉均·1851∼1894)이다. 2014년은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이 단행된 지 2갑, 즉 120주년이 되지만 김옥균 서거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풍운아 김옥균은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조선을 '갑신정변'(1884년)이라는 매우 급진적인 방법으로 근대적인 개혁을 하려 했다. 고종실록은 우정국 낙성식장에서 일어난 갑신정변 직후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김옥균 등이 생도 및 장사들을 시켜 좌영사 이조연. (…) 내시 유재현 등을 앞 대청에서 죽이게 하였다. 상께서 연거푸 죽이지 말라! 죽이지 말라!고 하교하시는 말씀이 있기까지 하였으나, 명을 듣지 않았다. 이때 상의 곁에는 김옥균의 무리 십수 명만이 있었는데, 상이 행동을 자유로이 할 수 없게 하였고…'- 이 부분은 고종이 사실상 유폐된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났다. 민씨로 대표되는, 수구파의 도움 요청을 받은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1천5백명을 이끌고 창덕궁을
대성동에 위치한 청주향교는 이른바 5성, 송조6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5성은 공자, 맹자, 안자, 증자, 자사자를, 송조 6현은 송나라 주자 등 6명을 말한다. 18현은 설총,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안유,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 김인후, 이황, 성혼, 이이, 조헌, 김장생, 송시열, 김집, 박세채, 송준길 등이다. 청주향교는 역사적으로 10세기쯤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은 즉위 2년(983)에 청주, 충주 등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이같이 밝혔다. "진실로 백성들의 희망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우서(虞書·요순시대 지칭)의 12목(牧) 제도를 본받아 지방관들을 설치하였노니, 주나라의 국운이 8백년간 계속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운이 장구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때 청주, 충주 등 전국 12목에 향교도 함께 설치되면서 중앙에서 경학박사가 파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회에 세종대왕이 1444년 청주 초수리로 거둥했을 때 통감훈의·성리군서·근사록·통감강목·유문(柳文)·한문(韓文)·통감절요·집성소학·사륜집 등 9권의 책을 하사했다고 밝혔다. 이들 책은 역사물이 가장 많고 나머지는 유교적인 내용이다. 통감훈의는
누군가가 직지를 만든 고려 금속활자가 중세 정보화 혁명을 불러왔다고 말하고 있으나, 객관적으로 검증된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독일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인쇄술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활자를 이루는 문자 자체가 자모음의 분리가 가능한 소리문자이기 때문에 대량 인쇄가 가능했다. 구텐베르크는 이를 바탕으로 라틴어로 쓰여진 성경을 출판,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고려, 조선 등 우리나라의 전통시대 식자층이 사용하던 문자는 자모음의 분리가 불가능한 한자였기 때문에 조합되지 못하면서, 원천적으로 대량 인쇄는 불가능했다. 가령 어떤 책에서 1만개의 한자 활자가 필요하다면 그에 버금가는 활자를 일일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같은 동북아시아 문자환경 때문에 역사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조선 중기에도 책은 여전히 매우 귀한 존재였다. 중종은 책이 워낙 귀하자 책을 관가로 가져온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이를 베껴(필사) 보관하도록 명령한다. "우리 나라가 작기는 하지만 옛사람이 전해준 서책이 없지 않을 것이다. 관청에 소장된 서책 이외에 서책을 납입하는 자에게는 상을 후히 주게 하고, 만약 하나뿐인 책은 관에서 필사한 다음 그 사람에게 되돌려 주게 하라. 이렇게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대략 3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 추천석 설화다. 충청도 진천에는 양순한 추천석이, 반면 경기도 용인에는 심술많은 동명이인의 추천석이 살았다. 이에 염라대왕이 심술많은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오라고 명령했으나 사자는 엉뚱하게 진천의 추천석을 잡아왔다. 따라서 생환시키려 했으나 진천의 추천석은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와 진천 추천석의 혼을 넣어 환생시킨 후 용인에서 살게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설화다. 두번째는 개가한 여인에 대한 설화다. 이 여인은 개가 전에는 진천에 살았으나 남편과 사별하자 용인에 살면서 역시 아들을 낳았다. 이후 양쪽이 서로 모실려고 하자 관가에서 "어머니 생전에는 진천에서 모시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서 제사로 모셔라"라고 판결했다. 세번쩨 설은 진천과 용인의 자연환경에서 비롯됐다. 진천은 예로부터 미질(米質)이 좋기로 유명하다. 반면 용인은 산세가 순후에 풍수적으로 명당이 많다고 소문나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묘소도 용인에 위치한다. 그래서 생겨난 표현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것
'자유한인보' 제 7호에는 충북을 주소로 두고 있는 포로 수용자들이 정확히 63명 등장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당시 청주군이 31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영동 11명, 옥천 6명, 제천·보은 각 4명, 괴산군 3명 등의 순이다. 이중 오창면 주소자가 무려 12명이나 되는 점은 향후 학계가 연구해볼 대목이다. 도내 출신을 포함한 당시 3천명의 조선인 징병자들은 주로 남양군도(南洋群島)라는 곳으로 끌려갔다. 남양군도는 마샬, 마리아나, 캐롤라인, 길버트, 뉴기니아 등 태평양 적도 부근에 있는 여러 개의 섬을 일컫는다. 1940년대 미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필리핀, 하와이 그리고 남양군도 등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작전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나 이후 전열을 다시 갖추면서 1943년에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고, 이후 제해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1943년 11월에는 남양군도의 하나인 길버트 섬, 1944년 2월에는 먀살군도, 6월에는 사이판 섬에 상륙해 일본군을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최전선에 배치됐던 우리나라 징병자들도 대거 미군의 포로로 잡히게 됐다.
얼마전 지역 한 일간지가 '자유한인보 제 3호' 발견을 보도했다. 자유한인보는 태평양 전쟁 때 미군에게 포로로 잡힌 우리나라 사람들 3천명 가량이 하와이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제작한 주간 소식지를 말한다. 한국인 포로들은 1년 6개월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제 7호까지 소식지를 만들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제 3호 복사본이고 마지막 호인 제 7호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종전과 함께 종간된 '자유한인보'에는 미국 하와이 포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 등이 기록돼 있다. 가령 제 3호에는 당시 함께 포로생활을 하던 이탈리아 포로들과 축구시합을 했고, 그 결과 3대 5로 졌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밖에 귀국하면 어떤 나라를 건설한 것인가, 또 미군에 대한 고마움 등의 내용이 실려있으나 이중 후자는 다소 의외다. 자신을 포로로 잡고 있는 적국에 대해 고마움을 갖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정서상 맞지 않는다. 당시 미군은 한국 포로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한국인 포로 3천여명은 8명이 한 조가 돼 천막에 수용돼 있었다. 즉 당시 하와이 지역에는 한인 포로를 수용한 천막이 3백70여동 가량 들어서 있던 셈이다. 난민
조선시대 수령들이 임지에 나가서 힘써야 할것으로 7가지가 있었다. 이른바 '수령칠사(守令七事)'로, 여기에는 '호구증(戶口增)'도 포함돼 있다. 인구를 많이 늘리라는 뜻이다. 나머지 칠사는 농상(農桑)을 성하게 할 것, 학교를 일으킬 것, 군정을 닦을 것, 부역을 균등하게 할 것, 소송을 간명하게 할 것, 서리의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고칠 것 등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구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으로 봤느냐는 점이다. 경국대전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무릇 구타로 태아가 사망한 것과 수태후 90일 초과한 것으로 형체가 이뤄진 것이면 타태죄(구타에 의한 낙태죄)로 처벌한다. (그러나) 수태후 90일 이내로 태아의 형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구타상해로 논죄하지 타태죄로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이상에서 보듯 90일 전의 태아는 사람 형체를 갖추지 못했다고 봤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아닌 '잠재적인 인간'으로 인식했다. 전통시대 역대 권력자 중 임산부를 가장 이해한 임금은 세종이었다. 정말 그랬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종은 노비가 임신을 했을 경우 노비부부 모두에게 출산휴가를 주도록 했다. 세종실록 26년
조선시대 인구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문헌으로 '호구총수'(戶口總數)가 있다. 편찬 시기는 다소 불명확하나 대체로 1789년(정조 13) 규장각에서 한성부의 기록을 기초로 9책 분량으로 간행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제 1책은 1395년(태조 4)부터 1789년까지 전국의 호구 총수와 1789년 한성부의 인구 상황을 기록했다. 그리고 제2∼9책은 1789년 각 도의 인구 상황을 경기도·원춘도(原春道)·충청도·황해도·전라도·평안도·경상도·함경도 순으로 기재했다. 충청도의 인구 변화에 대한 흐름은 제 4책에서 만날 수 있다. '호구총수'를 보면 1789년 충청도의 인구수는 86만8천2백19명으로 전국 11.7%를 차지했다. 반면 전라도는 122만2천8백4명으로 전국 16.5%의 인구 분포도를 보였다. 이밖에 경상도는 159만9백73명으로 21.5%의 분포도를 보였다. 하삼도의 이같은 인구 추이는 얼마전까지 계속 됐다. 그러다가 세종특별시의 도시 기능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충청권이 호남권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충청권의 인구가 호남권을 근소하나마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금년 5월쯤이었고,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이지고 있다. 안행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우리 눈이 가로로 넓듯이, 읽는 것 역시 가로 문장이 편한 구조로 돼 있다. 한글은 초·중·종성이 한데 모아져 하나의 글자를 형성하기 때문에 가로로 써야 훨씬 능률적이다. 한글의 이런 특장은 IT와 최고의 궁합으로 결합하고 있다. 한글이 갖는 무궁무진한 자모음의 조합성과 인체 구성에 맞는 가로쓰기는 한글을 IT시대의 최강 문자, 그리고 한국을 IT 최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근현대 한글의 역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주시경과 최현배(崔鉉培·1894~1970) 선생이다. 주시경이 한글문법의 뼈대를 세웠다면, 최현배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이론을 완성하고 실천했다. 국내 유력 일간지들은 90년대 중반까지도 세로쓰기를 고수했다. 그러나 최현배 선생은 그보다 50여년 앞선 지난 1946년 '한글가로글씨연구회'를 만들었고, 70년대는 '한글전용'을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8월 최현배 선생이 청원의 궁벽한 마을인 초정약수를 이례적으로 찾았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 청주지국장인 김동환의 초청으로 '청남학교'에서 한글강습회를 가진 후 초정약수를 찾았다. 그가 이날 쉽지 않은 발길을 한 것은 '초정약수=한글의 성지'라는 의식을 굳건히 갖고 있었기 때문
초정약수는 일제 강점기 동안에도 전국적인 명소였다. 당시 오오꾸마쇼지(大熊春峰)라는 일본인이 '청주 연혁지'(1923년)를 저술했고, 이 책은 지금도 일제 강점기 기간의 청주지역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초정약수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매년 여름철에는 이 영천을 개방하는 관습으로 가까운 고을이나 가까운 곳에서 찾아 들렸으며 50리, 1백리, 멀리는 수 백리를 가리지 않고 이 지역으로 모여들어 몇 만명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처럼 수만명의 인파가 일시에 초정약수로 몰려들 수 있었던 것은 충북선이 개통된 직후였기에 가능했고, 그 관문 역할을 한 공간은 내수역이었다. '淸州 椒井 露泉開湯' 제목의 동아일보 7월 29일자는 '기차삯 할인도 있다'고 밝혔다. '충북의 특산이고 전조선에서 유명한 청주 초정 물탕은 오는 8월 3일부터(20일간) 개방하게 되었다 하는데 음수객의 편의를 위하야 충북선 각역에서 내수역까지 기차 할인과 자동차 할인이 있다는데 위장병에 더욱 효과가 있다 한다.' 초정약수의 명성이 워낙 높다보니 일부 신문사는 '탐음단'을 모객하기도 했다. 중외일보 1927년 8월 7일자에는 '초정영천 탐음단
지난 23일 '65회 충북일보 클린마운틴'이 북한산 둘레길에서 열렸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로 현재 21구간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소나무 숲길과 순례길로 구성된 1·2 구간.청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 선생의 묘역을 시작으로 트레킹이 시작됐다. 수려한 경치는 없었지만 숲길과 동네길을 오가는 완만한 가을 산책 코스에 회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점심시간에 펼쳐진 휴식시간에는 여러 회원들의 김장 솜씨자랑이 펼쳐졌다.김웅식 대장은 "숲 속에 데크를 설치하거나 계곡의 돌을 중간 중간에 박아 두는 것은 땅이 숨 쉬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과 함께 "회원들이 너무 잘 따라와 줘서 코스를 좀 늘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2구간까지 비교적 수월했던 산행 때문인지 회원들의 발길은 기다렸다는 듯이 3구간 흰구름길로 향했다.냉골 지킴터와 화계사를 지나 가파른 언덕을 서너번 올랐을 무렵 비로소 등산객답게 빨개진 얼굴로 땀을 흘리며 웃었다. 독특한 모양의 원형계단으로 이뤄진 구름전망대에서는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 아차산 등의 주위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4구간 솔샘길의 출입구에 들어서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