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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7.12 13:59:38
  • 최종수정2016.07.12 17:50:41

조혁연 객원 대기자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생했다. 원균(元均, 1540~1597)은 왜의 수군이 남해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몰려오자 배를 스스로 침몰시킨 후 육지로 도주하려 했다. 이를 중간에서 "그러면 안 된다"며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협력을 건의한 인물이 그의 참모이자 우리고장 진천 출신인 이영남(李英男, ?~1598)이었다.

원균은 이영남의 의견을 수용, 전열을 정비한 후 이순신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해 옥포, 당초 등의 해전에서 잇따라 이겼다. '승리'라는 전리품이 들어오자 두 사람 사이에 '공다툼'이 일어났다.

그 결과, 원균은 1594년 충청도 병마절도사(충청병사)로 전출됐다. 당시 절도사가 머무는 병영(兵營)은 우리고장 청주에 있었다. 원균은 왜군이 다시 북상할 것으로 예견하고 청주지역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흔히 상당산성(사적 제 212호)은 조선 숙종 때 전면적인 보수를 해 석성(石城)으로 수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보다 앞서 상당산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인물은 원균이었다. 그는 이때 청주고을 주민뿐만 아니라 충북 전역의 백성을 징발됐다.

"병사(兵使) 원균(元均)은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성을 쌓을 때에 편의에 따라서 하지 않고서 잔폐(殘弊)한 고을이건 부성(富盛)한 고을이건 가리지 않고 각각 200∼300명을 내게 하여 부역을 독촉하므로 근착(根着)이 없는 자는 죄다 유이(流移)하고 겨우 남아 있는 자도 장차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선조실록 29년 5월7일>

동원 범위를 '충청좌도'(지금의 충북)로 한정해도 연인원 2~3천명이 정도에 이르고 있다. 원균은 바쁜 농사철에 충청좌도민을 징발, 심한 노역을 시켰다는 이유로 다시 탄핵의 위기에 몰렸다. 조정 대신 대부분은 원균에게 비우호적이었다.

이산해: "상당산성을 수축할 때에 위력으로 역사를 감독했기 때문에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정형: "상당산성의 역사는 비록 이루어졌지만 도로 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두 대신의 말로 미뤄 당시 수축한 상당산성은 석성이 아닌 토성 공사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당시 동인의 영수 유성룡은 원균을 옹호했다. 그는 원균이 토실에서 움막 생활을 하며 공사를 감독하는 등 장수로서 솔설수범을 높이 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상당산성(上黨山城)을 쌓을 때, 원균은 토실(土室)을 만들어 놓고 몸소 성 쌓는 것을 감독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1597년 이순신이 선조의 눈밖에 나 실각했다. 원균은 수군으로 돌아와 삼도통제사로 임명됐다. 그는 그해 7월 16일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다가 대패하고 거제도로 피신했으나 왜군의 칼을 맞고 전사했다. 《선조실록》 30년 8월5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사한 자는 조방장 김완(金浣)뿐이었습니다. 많은 장수들에게 모두 군법을 시행할 수 없다 해도 원균(元均)은 주장(主將)이었으니 군사를 상실한 군율로 처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균은 이미 20일 전에 전사했다. 무능했던 선조정부는 한 장수의 죽음을 수습하는데도 무능했다. 원균의 시신은 그로부터 2년 후에야 고향 경기도 평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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