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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들, 왜 무신란에 대거 가담했을까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6.11 17:02:21
  • 최종수정2015.06.11 14:23:38

조혁연 대기자

[충북일보] 1728년 무신란과 관련된 것으로 ≪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이라는 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문헌은 이진동(李鎭東)이라는 경상도 안동 유생이 무신란이 일어난지 60년이 지난 시점에 작성했고, 그 목적은 무신년에 창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적에서 누락된 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6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실제 그랬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정조는 그의 의견을 수용했다. 다음은 이진동이 상언하는 내용이다. 상언과 상소는 형식이 비슷하나 전자는 평민, 후자는 관료가 한다는 점이 다르다.

《무신창의록》 겉표지 모습

"지난 무신년에 역적 정희량이 영남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영남 인사들은 죽고 싶도록 부끄러워하고 분해하면서 편지로 서로 깨우치고 격문으로 고하여 집집마다 창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 그런 사람들을 찾던 때에 전부가 누락되었으니 억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책자로 안동 등 13고을의 창의한 사적을 하나하나 서술해서 아룁니다."-<정조실록 12년 11월 8일자>

이 날짜 정조실록에는 무신란이 일어났을 당시에 김중헌(金重憲)이라는 영남인이 우연히 우리고장 청주 객점(주막)에 묵었다가 반란군 지도자를 살해하려다 되레 죽음을 당하였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적이 중헌에게 오형(五刑)을 다 시행하였으나, 중헌은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시종 소리내어 적을 꾸짖다가 죽은 뒤에야 그쳤습니다. 적이 그 시체를 버렸는데, 사람들이 그가 차고 있던 주머니를 조사해서 헌 종이에 적은 것을 찾아냈기 때문에 그의 성명이 김중헌이고 거주지가 신천(信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정조실록 12년 11월 8일자>

이렇듯 창의, 즉 의병이 일어난 뒤에는 으레 공다툼이 뒤따랐다. 1728년 청안의병이 일어난 뒤에도 예외없이 공다툼이 뒤따랐다. 이미 처형됐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도 진짜 청안현감 이정열의 이름도 등장한다.

'헌납 서종옥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호서의 군공(軍功)은 사실대로 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연명겸(延命謙)은 이정열의 무리인데 도리어 남의 공을 빼앗아 수공(首功)을 차지하였으며…."-<영조실록 4년 8월 2일자>

쉽게 설명하면 연명겸이라는 자는 병부를 빼앗긴 이정열의 무리인데 도리어 남의 공의 빼앗아 음뜸되는 공을 차지하였다는 뜻이다. 연명겸은 지금도 증평, 청안지역에서 대성을 이루고 있는 곡산연씨(속칭 도안연씨)의 혈족으로 판단된다. 이 날짜 《영조실록》에는 그 반대되는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김두만은 적지에 나아갔다가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고향 사람들이 모두 그를 버렸고, 김우태는 역적 권서봉의 가족을 몰래 숨겼으므로 그 마음이 망측한데 여러 가지로 부탁하여 공부(功簿)에 무릅써 기록되었으니….-<〃>

그러나 승리한 자의 공다툼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웠음을 《토역일기》는 보여준다. 《토역일기》를 보면 당시 무신란에는 노비출신이면서 반란에 참여했다고 목숨을 잃은 인물이 최소 10여명 이상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이, 막남, 비억, 석창 등 이름 2자만 기록된 인물은 노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이 반군에 가담한 것은 인간답게 살아볼 권리, 즉 신분해방이었음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조선사회도 서서히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이었고, 그 일단이 무신란을 통해 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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