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을 가리켜 흔히 '충북같은 충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만큼 청주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청주와 인연이 깊다. 지금의 전의지역은 940년(고려 태조 23) 청주목 소속이었고, 연기현은 1018년(고려 현종 9) 청주에 영속된 사례가 있다. 봉수도 청주의 것을 받았다. '봉화가 1곳이니, 현의 남쪽 용수산(龍帥山)이다. 동쪽으로 청주 저성(猪城)에, 서쪽으로 공주 독성(禿城)에 응한다.'- 최근 조치원에서 '조치원역'을 '세종역'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조치원도 당연히 세종시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개명을 통해 조치원역을 세종시의 관문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금은 연기군청이 조치원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연기현 치소는 지금의 조치원읍이 아닌 다른 곳에 위치했다. 조치원읍에서 남쪽 삼십리 되는 곳에 연기군 남면 연기리가 있다. 바로 이곳에 연기현의 치소가 위치했다. 역사도 비교적 오래 돼 백제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이곳의 현의 중심지였다. 그러다가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그리고 조치원에 역이 생기면서 군청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경상우수영는 원균(元均·1540∼1597)이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왜수군과의 전력차가 너무 심하자 배를 불태운 후 육지로 도망하려 했다. '왜병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과 전구를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여 명을 해산시키고 나서 혼자 (…)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이때 원균을 붙잡아둔 인물이 부하 이운룡이다. 그는 원균의 앞을 가로 막으며 "장수는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사또가 나라의 중책을 맡았으니 의리상 관할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은 바로 양호(兩湖)의 요해처로서 이곳을 잃게 되면 양호가 위태롭다. 지금 우리 군사가 흩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모을 수 있으며 호남의 수군도 와서 구원하도록 청할 수 있다.'- 원균을 결국 경상우수영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이운룡의 건의대로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연합함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전체 동의가 있어여만 가능한 연합함대 구성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때 양진영을 오가며 청병사절 역할을 한 인물이 이영남(李英男·1563∼1598)이다.
우리고장 진천에서 가장 오래 된 성씨의 하나는 상산임씨다. 중시조는 임희(林曦)는 고향에서 이름을 딴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지기도 했다. 많이 알고 있듯이 상산은 진천의 별칭이다. 따라서 지금고 상산임씨와 진천임씨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고 있다. 상산이 진천의 별칭이었다는 사실은 신라말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의 하나인 문경 희양산 봉암사의 지증대사적조탑비문에 처음 등장한다. 비문에 '상산의 혜각(慧覺)은 진주(지금의 진천)의 김(金)'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혜각이라는 스님이 진천 상산의 어느 절에 기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산은 이후 고려사, 세종실록 등 여러 지리지에 자주 등장한다. '충경왕 10년 기사에 또 지의령군사로 승격시켰다가, 임연(林衍)이 베임을 당하게 되매, 진주 감무로 강등하였고, 본조 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의하여 진천 현감(鎭川縣監)으로 고쳤다. 별호는 상산(常山)이다.'- 조선시대 각 고을은 그 읍치를 정할 때 풍수적인 원리를 철저하게 따졌다. 따라서 당시 각 고을은 주산(主山)과 안산(案山)이 있고 그 사이를 하천이 흐르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이때의 안산은 '책상다리 案' 자로 무릎을 꿇고 주산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청안은 현(縣) 즉 지금으로 얘기하면 군청 소재지가 있던 곳이다. 청안은 지금은 일개 면소재지에 불과하나 구한말까지도 현세가 비교적 당당한 편이었다. 얼마전 음성현이 한때 청안현에 예속된 적이 있다고 밝힌바 있다. 그 정도였다. 이것 외에도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가 개편되기 전까지 지금의 증평읍을 비롯해 도안면, 청원군 북이면 그리고 지금의 오창읍 일부 등도 모두 청안현에 속했었다. 그러다가 1914년 일제가 증평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의 지위를 잃고 괴산군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바로 청안면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1914년은 우리나라 행정사에서 가장 굵은 마디가 형성된 해가 된다. 이 해에 청안군 읍내면과 동면 전부 그리고 북면의 일부가 합쳐져 괴산군 청당면(淸塘面)이 만들어진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17년에 그 이름이 청안면(淸安面)으로 바뀌었다. '청안'이 한 때 '청당'으로 불려진 것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청안현'을 이렇게 적었다. '청당현(靑塘縣)은 고려 초에 본래 청주(淸州) 임내에 붙여 일명 청연(靑淵)이라 하였는데, 뒤에 감무(監務)를 두어 도안(道安)을 겸임하게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
도내 기초단체의 막내는 증평군(曾坪郡)이다. 2003년 8월 30일 군청이 정식으로 개청됐다. 지금의 증평지역은 고려시대에는 도안현,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청안현에 속했다. '증평'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겨난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이었다. 일제는 이때 청안군 일부지역과 청주군 산외이면 일부지역을 합쳐서 '증평면'이라는 새로운 면을 만든 후 괴산군에 편입시켰다. 따라서 증평이라는 행정지명은 올해로 98년을 맞고 있는 셈이다. 증평이라는 행정지명은 의외로 '증'과 '평'이 두 글자가 합성된 지명이다. 먼저 증평할 때의 '증'은 현 삼기천(三岐川)의 옛이름인 증자천(曾子川·혹은 증천)에서 유래했다. 증평군 동편 하천인 증자천은 초정고개, 송오리고개, 반탄천 등 세 갈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름이 삼기천이다. 이 삼기천은 여지도서나 대동지지에는 한자 '일찍이 曾', '아들 子'인 '증자천'으로도 표기돼 있다. 증평 할 때의 '증' 자는 여기서 왔다. 나머지 '평' 자는 들(野)과 관련이 있다. 증평에는 '장평리'라는 마을이 있다. 순우리말로는 '장뜰'이라고 한다. 증평할 때의 '평'은 바로 '장평'할 때의 뒷말 '평'에서 유래했다. 장뜰 할 때
태조 연간에 조준이 올린 상소문에 이런 표현이 보인다. '경제육전의 예에 의하여, 매양 목(牧)에만 주(州)라 칭하고, 부와 군에는 일체 주를 칭하지 못하게 하여, 주·부·군·현으로 하여금 각기 명실상부하게 대소 군현간에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부리고, 아랫 것으로 윗 것을 이어받게 하면….' 세종도 경제육전을 명분삼아 행정지명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때의 개혁은 단순히 '州자' 남용을 바로잡는 것만이 아닌, 작은 고을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고을 수는 많으나 그곳에 파견할 인재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고을에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에 고을을 맞추는 셈이 됐다. 도승지 안숭선의 상소다. '본국의 주군의 수는 327군(郡)이나 되오니, 한정이 있는 인재로 어떻게 공수·황패같은 재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메꾸어 임명할 때에 인재를 얻기 어려우므로 도리어 자주 체임시키는 걱정이 있게 되오니, 작은 고을들을 병합하여 사람을 가려서 임명하여 보내면…."- 이같은 조치에 따라 경기도 교하현(현 파주시)이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교하현은 고양(高陽)과 원평(原平)에 끼어 있어 형세가 궂은살과 같으며, 남쪽으로 고양과의 거리가 일식
조선전기 '고을 州' 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행정지명으로는 보은 외에 영동, 음성, 단양 등도 있다. 3개 지명은 '州' 자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태종의 행정지역 개혁 대상에서 제외됐다. 먼저 행정지명 영동(永同)이 만들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동군은 본시 길동군(吉同郡)인데 경덕왕이 영동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이때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이다. 따라서 영동군이라는 행정지명이 생긴 지는 올해로 1255년이 된다. 꽤나 오래 된 편이다. 이와 관련, 어떤 어문학자는 인용문에 등장한 '길동군'과 지금의 '영동군'은 그 뿌리가 같은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영동군 할 때의 '길영' 자를 이두식으로 훈차(뜻만 빌림)하면 '길'이 되기 때문이다. 행정지명 음성(陰城)이 태어난 과정도 앞서 언급한 영동군과 역사적인 분위기가 거의 비슷한 면이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음성현은 원래 고구려의 잉홀현(仍忽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바로 음성이라는 행정지명도 영동군과 같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태어난 지명이다. 이를테면 '지명 동기'
카리스마가 강했던 조선 3대 임금 태종은 행정지명 '州' 자 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 과감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큰 고을이 아니면서 '州' 자가 붙은 제주(堤州), 진주(鎭州), 옥주(沃州), 괴주(槐주) 등은 각각 지금의 제천, 진천, 옥천, 괴산 등으로 개명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州' 자를 갖고 있지 않은 행정지명은 태종의 개혁 대상에서 제외됐다. 명산 속리산을 끼고 있는 보은군이 이에 해당한다. 행정지명 '보은'에 대한 시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로 올가간다. 고려사 지리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보령군은 원래 신라의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이 삼년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는 보령군(保齡郡)으로 고쳤다." 이때의 '보령군'이 바로 지금의 보은군이다. 인용문 중 고려 초기는 태조 23년(904)을 일컫고 있다. 이 '보령군'이 지금의 '보은군'으로 개명된데는 약간 해프닝적인 면이 있다. 익히 알다시피 충남에도 발음이 똑같은 '보령군'(保寧郡)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당시 '보령군'이 지금의 '보은군'으로 바뀌게 됐다. '군현의 칭호를 고치었다. 이조에서 소리가 서로 비슷한 각 고을의 칭호를 고치도록 청하니, 이에 청주(靑州)를 북청(北靑)이
도내 기초단체 중 내년에 지명이 탄생한지 10갑, 즉 600주년이 되는 곳은 제천시와 괴산군 외에 진천군과 옥천군 등도 있다. 60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태종실록 13년(1413) 10월 15일자 기사에 이런 내용이 보인다. '무릇 군현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쳤으니, 영주(寧州)를 영산(寧山)으로 고친 것이 그 예다.' 도내 4개 기초단체도 이에 해당됐다. 그 해에 '제주'(堤州)가 지금의 제천, 괴주(槐州)는 괴산, 옥주(沃州)는 옥천, 진주(鎭州)는 진천으로 각각 행정지명이 바뀌었다. 4곳 지명에 '내 川'이나 '메 山' 자가 들어간 것은 해당 지역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의림지라는 큰 저수지가 있는 제천에는 '내천' 자가 들어갔다. 평야가 비교적 발달한 옥천과 진천에도 '川' 자를 붙였다. 반면 백두대간이 지나가 산이 많은 '괴산'에는 '山' 자를 붙였다. 조선 태종 정권이 600백년 전에 이같은 조치를 취한 까닭은 대읍(大邑)에나 붙일 수 있는 '고을 州' 자가 직전(고려말)에 너무 남용됐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州자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고려 후기에는 권세가나 승려 심지어 원나라에서 귀국
제천시와 괴산군이 내년 지명 탄생 6백년이 되는 것을 기념,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시와 군의 상위 개념은 '도'(道)이다. 우리나리에 도제(道制)가 처음 도입된 것은 고려 성종 때이다. 이때의 '도'는 특정지역 두 곳을 '길'로 연결했을 때 그 안에 포함되는 공간적인 범위를 의미한다. 경상도는 남쪽 경주목과 북쪽 상주목 사이에 포함되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충청도는 북쪽 충주목과 남쪽 청주목 사이의 공간을 의미하고 있다. 혹자는 충주목 북쪽에 단양군이 있었고, 청주목 남쪽에 영동현이 있었지 않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물론 그렇기는 하나 조선시대 단양군과 영동현은 각가 충주목과 청주목 소속이었다. 따라서 충청도라는 도명의 성립에는 무리가 없다. 지금의 이름인 '충청북도'는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얻어진 행정지명이다. 이때 충청도에서 충남과 충북이 분리됐다. '충청도'라는 지명은 고려 예종 1년(1106)에 '양광충청주도'라고 한 것에서 그 이름이 처음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지속적으로 불려진 것은 아니었다. '충청도'라는 이름이 고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조 3년(1394) 태부터 였다. 태조 이성계는 '양광도'에 예속된
조선의 송이는 중국 황제도 매우 좋아했다. 세종 때 '윤봉'이라는 중국 사신이 조선에 와서 생송이를 받고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실록은 기록했다. "이미 잡은 진응(陳鷹)과 침송이(沈松茸)·연어 알젓 등을 구하여 얻었으니, 천추(千秋)가 가는 편에 보내어 진상해야 되겠다. 연전에 바친 침송이를 황제가 심히 좋아하고 아끼셨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진응은 매, 침송이는 생송이, 천추는 중국으로 향하는 조선 사신을 말한다. 심전고는 순조 때 박사호(朴思浩)라는 신하가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쓴 사행일기로, 그 안에 유서관기(楡西館記)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도 조선 송이가 대화 주제로 등장한다. '운객(雲客)이 묻기를, "귀국의 송이(松茸)가 그 이름이 매우 좋은데, 그 맛은 어떠합니까"하기에, "맛이 향기롭고 산뜻하며 연하지요"하고 대답하였다.'- 전회에 전국 팔도 중 충청도에서도 송이버섯을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서도 각 임금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폭군 연산군에 대한 내용이 다소 재미있다. '승지 김준손이 금표지도를 올리니, 전교하기를, "듣건대 백운산에서 송이버섯이 난다 하니, 모두 금표 안에 들게 하라." 하였다.'-금표(禁
조선후기 문신으로 이명응(李明應·1827∼?)이 있다. 그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촌동생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충청도경시관으로 임명됐다. 경시관은 지방에서 치루어 지는 향시(鄕試)를 감독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를 말한다. 그는 순조롭게 승진하여 1878년에는 지방장관직인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됐다. 그는 2년반 동안 재임하면서 치적이 있어 한 차례 연임되기도 했다. 그는 이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장계를 올린다. 장계는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충청 감사 이명응(李明應)이 장계에, "진상할 이른 홍시(紅枾)와 생송이(生松茸)가 계절이 너무 일러 기한 안에 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합니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이유승에게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라고 회유(回諭)하라"하였다.'- 조선시대 임금은 매월 초하루에는 팔도에서 올린 산물로 식사를 했고 이를 '삭선'이라고 불렀다. 충청도 음력 8월의 삭선은 바로 '생송이'와 '올홍시'였다. '올홍시'할 때의 '올'은 '이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조실록에는 호서, 즉 우리고장 충청도에서 임금에게 진상하는 한 해의 음식 규정이 보다 구체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