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 언급한 옥천 이원면 적등진(赤登津)은 교통량이 많은 곳이었다. 당시 경상도 김천과 지레 사람들이 한양을 가려면 반드시 적등강 수변에 위치한 나루를 통과해야 했다. 바로 '적등진'으로, 그 루트는 영동-옥천-보은-청주가 됐다. 적등진은 이 루트 중 영동-옥천 사이에 위치했고 그 옆에는 적등원과 적등루도 존재했다. 적등진 주변은 지금도 풍광이 매우 빼어난 편이다. 이 때문인지 뭇 문객들이 적등루(赤登樓)를 찾아 시를 많이 읊었다. 고려말 사대부 출신인 조준(趙浚·1346∼1405)은 정도전과 함께 조선 창업의 일등공신이다. 특히 그는 경제이론에 밝아 당시 세법의 근간이 되는 과전법을 입안했다. 그도 적등루를 올랐다. '황급한 6월달 3천리 길에, 나루에 사람 없어 혼자서 배에 오르네. 나물 캐고 군사를 내는데 누가 계교를 얻었던가. 적등루 아래의 물이 하늘에 닿았네.'- 서두에 언급한 것과 달리 적등루가 한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직(李稷·1362~1431)이 지은 시에는 적등루 일대가 대단히 혼잡하게 그려져 있다. '오가는 길손들이 하루에 만명이 넘어, 다투어 강을 건너는데 배는 한 척뿐. 다시 적등루에 올라 시를 지으니, 갈매기도 한가로이 물 가운
문화가 권역을 이루는 데는 산줄기뿐만 아리나 물줄기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백두대간은 충청도와 경상도 문화권을 구분하고 있다. 충북은 다시 남한강 수계와 금강 수계권으로 나눠지고 있다. 이것의 분수령이 되는 산줄기는 이른바 한남금북정맥이다. 전븍 장수 신무산(神舞山·897m)을 본류 발원지로 하고 있는 금강은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대전, 연기, 공주, 부여, 논산, 강경 등 10여 개의 지역을 거치며 397㎞를 달린 끝에 서해에 도달한다. 현재 지류는 '하천', 본류가 되는 수계는 '강'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곰나루'(웅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 '금강'도 그런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그러나 전통시대에는 금강은 구간별로 다르게 불렀다. 영동 심천을 통과하는 금강은 지프내(심천), 옥천 이원에서는 적등강(赤登江), 공주에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그리고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불렀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수계에 딸린 나루터(津)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대천(大川)은 웅진(熊津)이다. 그 근원이 전라도(全羅道)에서 나와 양산(楊山) 서쪽을 지나 영동현(永同縣)에 들어가고, 이산현(利山縣)에 이르러 적등진
조선시대 내섬시(內贍寺)라는 내직 기구가 있었다. 내섬시는 호조 소속으로 궁중에 공급되는 각종 물품을 관리했다. 세종대 내섬시에 근무하면서 고문헌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로 김흔지(金사람인변+完之)가 있다. 세종은 보위에 오른지 20년이 넘으면서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이중 안질은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때문에 세종은 1444년에는 우리고장 초정약수를 봄·가을에 걸쳐 두번이나 찾게 된다. 이때 초정약수와 관련된 일을 전담한 인물이 바로 앞서 언급한 김흔지이다.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별장식으로 머무는 곳을 행궁, 또는 이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임금이 행궁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행차'가 아닌 거둥으로 표현했다. 1444년 음력 1월 27일 우리고장 초정약수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아뢰기를, "청주(淸州)에 물 맛이 호초(胡椒) 맛과 같은 것이 있어 이름하기를 초수(椒水)라 하는데,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목천현(木川縣)과 전의현(全義縣)에도 또한 이러한 물이 있습니다" 하니…'- 그리고 '임금이 이를 듣고 장차 거둥하여 안질(眼疾)을 치료하고자 하여 내섬시 윤 김흔지를 보내어 행궁(行宮)을 세우게 하고, 이 물을 얻어
전회에 우리고장 진천 문백면 한계마을이 고향인 강백년(姜柏年·1603∼1681)을 설명한 바 있다. 그가 지은 '청춘에 곱던 양자'라는 시조는 주군(임금)에 대한 일편단심을 시로 잘 승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는 받고 있다. 국문학 전공자들은 그의 시조뿐만 아니라 한시도 크게 주목을 하고 있다. 이중 일반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해동시선에 실려 있는 '산행'(山行)이다. 해동시선의 저자는 조선말기 지식인인 이규용(李圭瑢)다. '십리를 가도 인적이 없고 / 텅 빈 산에 봄새만 우네. / 스님 만나 길을 물어 보았으나 / 스님가자 길이 다시 헷갈리네.' 원문은 '十里無人響 / 山空春鳥啼 / 逢僧問前路 / 僧去路還迷'로 돼 있다. 시골 산길의 조용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 듯이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無人響', '山空' 등의 시어는 적막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이명한(李明漢·1595~1645) 있다. 두 사람은 8살의 나이차가 났으나 필담을 나눴다. 강백년이 8살 적다. 이명한이 고향 강릉으로 돌아가자 강백년은 다음과 같은 시로 마중했다. '풍진 세월에 늙어 품은 계책 어그러졌는데 / 오늘 눈 속에서 그대 돌아감을 부러워하네 / 헤어짐에 봄
조선시대 사간원은 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기구로, 그 으뜸은 종3품 당상관인 대사간(大司諫)이다. 당상관은 정3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관리로, 지역하면 정사를 논할 때 堂에 오를 수 있는 품계를 말한다. 그 반대말은 당하관이다. 조선 효종 때의 대사간의 한 명으로 강백년(姜柏年·1603∼1681)이 있다. 그가 바로 전회에 언급한 표암 강세황의 할아버지다. 1648년 이른바 강빈(姜嬪) 신원 사건이 일어났다. 강빈은 소현세자의 빈으로, 병자호란 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7년에 돌아왔다. 그러나 소현세자를 미워한 시아버지 인조에 의해 후원별당에 감금됐다가 끝내 사사됐다. 이 여파로 그녀의 친정어머니마저 처형되고, 세 아들은 제주에 유배된 뒤 그 중 석철·석린 형제도 의혹 속에서 죽고 말았다. 강백년은 대사간 입장에서 강빈의 신원(억울함을 풀어줌)을 간언했다. 말이 간언이지 인조의 최대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의 여파로 강백년은 우리고장 청풍군수로 좌천됐다. 그러나 청풍군수가 종6품인 점을 감안하면 품계가 수직 강하한 셈이다. '황감을 대사간으로, 김식을 헌납으로, 최후윤을 정언으로, 홍우원을 봉교로 삼았다. 상이 특명으로 부제학 이기
"그는 그림을 통해 문인정신을 구현하려 했다. 때문에 그는 평생 속기(俗氣)없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미술 평론가들이 영·정조 시대의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을 평한 글이다. 그는 39살 때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의 부탁을 받고 그린 '도산도'(陶山圖)의 제발(題跋)을 이렇게 적었다. '제발'은 서화 두루마리나 첩책 말미에 기록한 그 감상록을 말한다. '그림은 산수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 그것은 크기 때문이다. (…) 또 직접 보지 못한 지역을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 그것은 억측으로 닮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 평론가들은 강세황의 이같은 창작 태도를 '와유'(臥遊)와 '사의'(寫意)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고 있다. '와유'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김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 '사의'는 사물에 의탁하여 도(道)와 진(眞)에 이르고자 하는 뜻을 의미한다. 강세황 작품에 대한 '한국적 남종문인화' 혹은 '남종문인화의 토착화'라는 표현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강세황의 조부는 예조판서를 지낸 강백년(姜柏年)이고,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8일, 제61회 충북일보 클린마운틴이 전북 부안군 변산 마실길에서 열렸다. 총 13개 코스로 구성된 변산 마실길, 클린마운틴 회원 40명은 이날 성천~적벽강~격포해수욕장~격포항으로 이어지는 7㎞의 3코스를 공략했다. 이 코스는 7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적벽강, 채석강 등 아름다운 해안 절경이 최고의 자랑이다. 이 코스를 완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 문제는 섭씨 30도가 넘는 푹푹찌는 날씨였다. 클린마운틴아카데미 함우석(충북일보 주필)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삶은 늘 1등을 추구하는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트래킹은 1등이 아닌 꼴찌를 배우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경쟁이 아닌 내려놓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애초부터 경쟁이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걸으면서 마음 속의 복잡함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힘들었던 순간, 살림을 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던 시간 등 모든 것을 비웠다. 땀으로 범벅된 찝찝한 심신도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맡기면 에어컨 못지 않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숲 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그늘이 기쁨을 준다. 코스 중간에 버려진 쓰레기는 노여움을 느끼게 한다. 오
우암의 생가지인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을 지나 영동으로 가는 국도변인 원동리 야산에 이르면 작은 무덤과 비석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비석 제원은 높이 86cm, 폭 41cm, 두께 17cm의 화강암이다. 비문에는 '贈 領議政 睡翁宋公(증영의정수옹송공) / 乳母憲菲之墓(유모헌비지묘) / 子姜수文墓在左(자강수문묘재좌) / 崇禎六十一秊 二月立(숭정육십일년이월입)'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석하면 '영의정으로 증직받은 수용 송공의 유모 헌비의 묘소이다 / 그의 아들 강수문의 묘소는 좌측에 있다 / 숭정 61년 늦은 2월에 세우다' 정도가 된다. 전회에 우암 송시열의 부친이 송갑조(宋甲祚·1574~1628)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선조~인조 연간을 살면서 광해군대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그러나 과거합격 직후 인목대비를 배알했다는 이유로 유적(儒籍)에서 제적됐다. 그러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는 강골의 겸비한 문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송응기(宋應期)로, 이윤경의 딸인 광주이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는 연약한 몸으로 다섯번째 아들인 송갑조를 출산한 후 몇년 지나지 않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같은 환경에서 송
송시열의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1574~1628)라는 인물이다. 그는 선조~인조 연간을 살면서 광해군대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소과의 일종인 생원시는 지금으로 치면 논술, 진사시는 경전해석을 묻는 시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합격한 직후 송갑조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같이 합격한 동과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목대비를 찾아 혼자 배알, 즉 인사를 했다. 당시 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의 친모이나 광해군이 집권하면서 서궁에 유폐된 상태였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인목대비를 찾았다는 것은 여간한 강골이 아니고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즉각 파문이 일어났다. 이영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과거합격 동기생들이 그를 유적(儒籍)에서 삭제하는 운동에 나섰다. 실록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송갑조(宋甲祚)가 정사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나서 혼자서 서궁에 숙배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흉도들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며 많은 선비들을 협박하였는데, 갑조가 옷자락을 뿌리치고 가버리므로, 흉도들이 그의 성명을 탐문하여 중상할 계획을 쓰자….'- 송갑조는 이같은 분위기에 고분고분할 성격은 아니었다. 그도
얼마전 형식이 다른 본보의 기사를 통해 조선 세종 때 한양도성을 수축할 당시 충청도 사람도 총 5만6천여명이 동원됐고, 이때 이들이 새긴 각자(刻字) 성돌이 10개 가량 현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적으로는 32만2천400여명이 동원됐다. 조선시대 인구를 감안하면 이같은 규모는 전국 모든 장정들이 총동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동원됐고 충청도는 그 다음인 17%를 차지했다.충청도 각 고을에서 동원된 수축군은 지금의 혜화문-낙산-흥인문 구간을 맡았다. 성돌에 지명을 새긴 것은 사후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실록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더러 등장한다. '선지하기를, "도성을 수축한 후에 혹시 돌 한 개라도 무너져 떨어지는 것이 있으면, 즉시 그 방면의 감독관으로 하여금 수보(修補)하게 하고, 모두 논죄할 것이다" 하였다.'- 세종대의 한양도성 수축공사는 농번기가 끝난 겨울철에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 토목공사를 주도한 인물은 세종이 아닌 상왕 태종이었다. '도성 수축 도감에서 계하기를, "성을 쌓는 군사가 도망하는 자는, 처음 범하면 곤장 1백 대를 치게 하고, 두 번 범하면 참형에 처하게 하소서" 하니, 태상왕이 그대로
괘서(掛書)는 남을 모함하거나 나라를 비방하는 내용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붙이거나 투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괘서 행위는 대부분 익명으로 행해지면서 선량한 사람을 무고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고 따라서 조선조정은 괘서행위를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들어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괘서사건이 전국적으로 42건이나 발생했다. 이런 괘서사건은 순조 이후 특히 많이 일났다. 순조가 11살 나이에 등극하자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에 나섰다. 이후 성장한 순조가 직접 정치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장인 김조순(金祖순·1765∼1832)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료들은 절대 부패해졌고, 농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갖지 못하면서 유랑민이 되는 등 국가 말기적 현상이 나타났다. 전회에 청주읍성 북문에 괘서를 붙인 김치규(金致奎)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본래 청주사람은 아니었다. 김치규는 평안도 중화 출신의 가난한 지식인으로, '충청도에 풍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우리고장 청안 땅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당시 청안 토호였던 이원기(李元基) 집에 기거하며 그의 아들 훈장 노릇을
정감록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했던 예견서를 말한다. 도참, 도교, 풍수지리설적인 사상이 혼합돼 있다. 그러나 정감록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이본(異本)이 존재하고 있다. 이중 원전 정감록으로 일컬어지는 '감결'은 조선의 선조인 한륭공의 두 아들 이심·이연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鄭氏)의 조상이라는 정감(鄭鑑)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그 내용은 조선 이후의 흥망대세를 예언하여 이씨의 한양 도읍 몇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 도읍 몇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趙氏)의 가야산 도읍 몇백 년을 논하고 있다. 또 그 다음은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몇백 년과 왕씨(王氏)의 재차 송악(성) 도읍 등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무슨 재난과 화변(禍變)이 있어 세태와 민심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하고 있다. 정감록에 이씨 조선 이후의 왕도로 등장하는 계룡산은 풍수적인 입지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산태극 물태극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돌아겨 나가고 있고, 물길 또한 그 모습을 하고 있다. 계령산 암반 곳곳에는 정감록과 관련된 여러 글자가 각인돼 있다. 이중 가장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