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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40대 초반까지 삭힌 홍어를 먹지 못했다.

삶은 돼지고기에 김치를 싸서 먹어도 보았지만 전혀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입에 넣었던 홍어를 몇 번 씹다 도로 뱉어내는 모습을 보고 선배들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며 놀려댔다.

그러나 홍어와의 악연은 그리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유달리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후배, 친구는 물론이요 가깝게 지내는 출입처 사람들까지 상당수가 홍어 예찬론자들이었다.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이 일품이란다.

먹는 방법도 다양했다.

홍어 삼합은 입문 수준. 홍어찜, 홍어회, 홍어부속, 홍어 샤브샤브, 홍어탕 등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나에게 홍어는 가깝고도 먼 음식이었다.

그랬던 홍어가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친근한 음식이 돼버렸다.

'거지왕 김춘삼'이 그랬던가. 한여름 장날 길바닥에 버려진 썩은 동태 대가리를 입에 대고 쪽 빨면 그 맛이 천하일미가 따로 없다고 회고했다.

김춘삼은 그의 자서전에서 극심한 굶주림을 못 이겨 주워 먹었지만 복통을 일으켜 서너 번 기절하고서야 썩은 동태 대가리의 참 맛을 알았다고 썼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어의 톡 쏘는 상쾌한 암모니아 맛을 알기까지 수없이 많은 구토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마다 단골집이 생길 정도로 '홍어 마니아'가 됐다.

청주 토박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청주구도심에 위치한 유명 홍어집이 있다. 그런데 그 집의 홍어 맛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탱탱하고 꼬들꼬들한 식감도, 시원하게 톡 쏘는 향도 덜해졌다. 손님상에 몇 번 오르내린 음식처럼 신선하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찾았지만 여전했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지인들의 생각도 같았다.

주인장이 바뀌었나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그 집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장사가 잘되다 보니 '초심(初心)을 잃었다'는 말로 귀결됐다.

대대손손, 수십년을 성실하게 일했어도 초심을 잃는다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는 게 '장사'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어찌 식당일만 있겠는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가 다 그러할 것이다.

요즘 우리지역에서 초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당선자와 낙선자간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그러했고, 오는 7월부터 시작되는 후반기 지방의회 의장단 선출을 앞두고 소리없이 벌어지고 있는 후보자간 경쟁상황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우리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경험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이든 어찌됐든 4선 중진 의원들이 허무하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낙마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당사자들은 억울함과 분노를 나타냈지만 이 또한 본인들의 탓임을, 초심을 잃은 대가임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 이를 목격한 초선의원들은 초심을 잃으면 어떻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충북도의회를 비롯해 11개 시·도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출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도 다를 바 없다.

의장이라는 자리에 욕심을 내기 전에 그동안 나의 의정활동이 동료의원들이나 지역민에게 어떻게 비쳐졌고, 평가받았는지부터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상당수 동료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괜한 욕심을 부렸다가는 훗날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역시 초심이 주는 교훈이다.

중앙으로 눈을 돌리면 대통령의 초심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초심의 중요성과 무서움을 아는 지도자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기 중반을 넘어섰는데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50~60%대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청와대는 최근 의전비서관들을 대거 교체했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모습으로 읽힌다.

3대째 냉면집을 운영하다 몇 년 전 문을 닫은 주인장이 필자와 가진 저녁자리에서 "이제서야 원인을 알았다"며 술을 연방 들이키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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