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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현감 조문보는 왜 이인좌 편이 됐을까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6.23 16:26:08
  • 최종수정2015.06.23 14:56:10

조혁연 대기자

1728년(영조 4) 무신란에 참여한 인물 가운데 조문보(趙文普)가 있다. 그는 노비, 상인 등 하층민이 아닌 보은현감이라는 고위 관료이면서도 무신란에 참여했다.

게다가 그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적인 사표였던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직손이었다.

그는 무신란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이른바 홍성룡 옥사에 연루되어 옥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영조는 칼을 풀어주도록 하는 등 특별히 배려했다.

'임금이 묻기를, "조문보는 누구의 집 자손인가"하였다. 민진원이 말하기를, "선정신 문정공 조광조(趙光祖)의 봉사손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특별히 칼[枷]을 풀어 주도록 하여, 내가 현자(賢者)를 존경하는 뜻을 보이라." 하였다.'-<영조실록 2년 12월 20일자>

칼은 전통시대 죄인에게 씌우던 형틀의 일종으로. 두껍고 긴 널빤지의 한끝에 구멍을 뚫어 죄인의 목을 끼우고 비녀장을 질렀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 옥중에서 쓰고 있던 형틀도 칼이었다.

이처럼 영조가 죄인을 각별하게 대우한 것은 그가 조광조의 직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통을 지닌 조문보가 무신년 역모에 가담한 것은 민원보와 관련이 있다.

1872년 보은군지도 부분, 읍내와 삼년산성이 보인다.

민원보(閔元普)는 충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조총, 환도, 철편 등을 준비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민원보의 집에 둔 것은 조총 20여 자루와 환도 10여 자루와 철편 20여 자루이고, 군복은 민원보 일가 중의 이교항 진사라고 칭명하는 사람의 집에 만들어 두었으며, 번번이 서로 모의하기를, '이 일이 성공하면 우리들은 벼슬하여 영달할 것이다.' 하였습니다."-<영조실록 4년 5월 13일자>

어떤 사람이 이같은 역할을 한 민원보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체포된 조문보는 심문이 시작되자 민원보와의 관련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의 진술은 달랐다.

"3월 17일에 민원보가 봉서(封書) 하나를 주며 말하기를, 보은 원[수령]이 바야흐로 괴산에 머물러 있으니 이 글을 급히 전하고 답을 받아 오라 하므로 괴산에 갔더니, 보은 원이 향교동 이생원 집에서 권진사 등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고, 답을 받아 밤에 돌아왔는데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영조실록 4년 5월 10일자>

또 반란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조세추(曹世樞)도 "보은 현감 조문보는 승도들을 이끌고 온다고 했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 이때의 승도는 속리산 법주사 스님들을 의미할 것이다.

이 진술이 조문보에게 결정타가 되었다. 그는 1728년 5월 22일 한양에서 심문을 받다가 심한 매질로 인해 장살되었다. 그가 고위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역모에 가담한 것은 민원보 일파와 당색이 남인으로 같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훗날 영조는 조광조의 제사를 모시는 후손이 사라진 것을 걱정해 그의 조카인 조엄(趙日+嚴)을 관료로 특채했다.

'조엄으로 대임하라고 명하였다.(…) 문정공의 후손 조문보가 무신년에 반역으로 죽어 그 가문이 폐기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문정공을 생각하여 이 명을 내린 것이다.'-<영조실록 43년 10월 20일자> 그가 바로 일본서 고구마 종자를 갖고 온 조엄(1719-177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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