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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가 아닌 동쪽으로 간 까닭, 이인좌 동생 능좌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3.10 16:02:00
  • 최종수정2015.03.10 16:01:57

조혁연 대기자

1728년 무신란이 일어났을 때 영조가 특히 마음 아파한 부분이 있었다. 반란의 주동자들이 하나같이 명문가의 후손들이었다. 같은 지배층임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충성하기를 거부하고 칼을 겨눴다.

이인좌는 한 때 남인의 영수였던 윤휴의 외손이었고, 청주 신천영(申天永)은 신숙주의 후손, 정행민이라는 인물은 정인지(鄭麟趾·1396-1478)의 후손이었다.

무신란은 반노론 세력들이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일으킨 반란으로 충청도는 이인좌, 호남은 박필현, 영남은 정희량이 맡았다. 정희량(鄭希亮?-1728)은 정온(鄭蘊·1569-1641)의 직손이었고, 그의 외가쪽 사위가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尹拯)이다.

정온은 대사간, 대제학을 지낸 남인계 인물이고, 윤증은 정치와 학문적으로 우암 송시열과 자주 대립했다. 정희량은 명문가의 후손답게 경제력이 비교적 풍족했다. 실록은 이에 대해 '온 도에서 그 호부(豪富)함이 알려졌으며, 장획(臧獲)과 전택(田宅)이 매우 많았다.'(영조실록 4년 3월 27일자)라고 기록했다. 장획은 잘 쓰지 않는 말로 노비를 일컫는다.

그는 부석사 근처에서 할아버지묘를 이장하는 것처럼 위장한 후 동전과 곡식을 비축하고 반군을 모병했고, 반란에 쓰일 깃발을 준비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그 방법이 조금은 치졸했다. 그는 지금식으로 표현하면 양민을 상대로 속칭 '네다바이' 수법을 썼다.

'먼저 은(銀) 한 봉을 내어 맡기고 수십필을 가지고 오게 하여 빛깔과 품질을 보고는 내일 아침 공평한 값으로 사들이겠다고 약속하니, 시장 사람들이 믿고서 물건을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가서 보니 그 사람이 그 채단을 모조리 가지고 새벽을 틈타 도망해 간 곳을 몰랐다.'-<영조실록 〃>

안의현(아래)과 거창현 표시가 보인다.

그러나 정희량은 3월 20일 안음현(반란후 안의현·그림)에서 기병해 경상도 여러 고을을 휩쓸었으나 일부 부하의 배반으로 4월 3일 거창에서 관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된 후에도 "영조는 숙종 임금의 아들이 아니며,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 거의는 정당했다"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그러자 정희량에게 아버지를 잃은 이우방이라는 인물이 원수 갚기를 청하였고, 이를 허락받았다. 영조실록은 그 다음 내용을 소름끼치게 적어놨다.

"정희량 등이 부도(不道)의 말을 많이 꺼냈으므로 분함을 견디지 못하여 칼을 가지고 손수 목을 베려고 하였는데, 이술원(李述源)의 아들이 원수를 갚으려고 종군(從軍)한 이유로써 스스로 목을 베고 간(肝)을 쪼개어 마시기를 청하였으므로 우하형이 이를 허락하였다고 한다."-<영조실록 4년 4월 2일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이인좌의 동생 능좌(能佐)는 형을 따라 청주읍성으로 가지 않고 송면(지금의 괴산군 청천군 송면)에서 동쪽 방향의 경상도로 말을 몰았다. 바로 순흥의 정희량과 합세하기 위함이었다. 이날 이인좌의 동생 능좌도 정희량과 함께 참수됐고, 그들의 머리는 한양으로 보내졌다.

《무신역옥추안》, 《승정원일기》 등 나머지 자료에 의하면 정희량의 아내 송씨는 교형, 며느리 안씨는 함경도 명천부로 유배, 정희량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서울 당고개 및 안음에서 각각 처형됐다.

이밖에 나이 어린 막내 아들 철흥(鐵興)과 정희량의 칠순 노모인 안동권씨는 추자도로, 딸 상화(尙花)는 진도로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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