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4.12.04 17:55:02
  • 최종수정2014.12.04 17:54:55

조혁연 대기자

도내에서 구한말~일제 강점기를 산 역사적 인물로는 단재 신채호의 지명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인물로 괴산출신 이능화(李能和·1869∼1943)가 있다.

이능화는 당시 괴산군 이도면 수진리(현 괴산읍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원긍(李源兢·1849-1919)은 문과에 급제한 후 경상도관찰사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는 1990년대 후반에야 시작됐다.

권평 씨는「이능화와 조선기독교及외교사」(1999, 연세학술논집)에서 이능화의 생애 마디를 ①어린시절(1869-1889), ②외국어 공부 시기(1889-1897, ③외국어 교수 시기(1897-1910), ④한국종교사 연구 시기(1912-1920), ⑤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수관 또는 편수위원 역임(1921-1937) 등으로 분류했다.

생전의 이능화 모습.

그는 ①에 대해 '이 시기의 이능화는 한문을 공부하며 과거를 준비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가학으로 공부를 한 셈으로 훗날 수많은 한문전적의 분석과 방대한 한문저술의 초석이 이때 이뤄졌다'고 밝혔다.

②에 대해서는 '상경하여 영어, 중국어, 불어 등 3개 국어를 배워 능통하게 된다. 그가 양반의 자제로서 외국어를 공부한 것은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와 국제문문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함이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김관호 씨는는 「상현거사 이능화 선생」(1978년 17쪽) 글에서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선생은 약관에 서울에 올라가 농공상부의 주사직에 취임했으나 하루는 '이런 가시밭에는 鳳 이 깃드는 것이 아니다. 대장부가 어찌 구구한 명리에 얽매이야. 세계를 주유하고 풍속을 관찰하여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남아의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주사를 사직한 후 그로부터 영어, 불란서어,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하여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③과 관련해서는 1897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불어를 가르쳤고, 1906년 관립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09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 학제가 변경되자 학감으로 취임하여 1910년 학교가 폐쇄될 때까지 불어를 교육하였다.

④-⑤와 관련해서는 '이능화는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의 각종 종교사를 처음으로 썼다. 또 1912년부터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수위원회의 편수관, 편수위원이 되어서 한국사 관계의 많은 관변사료를 섭렵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후 16년 동안의 편수관, 편수위원의 시기는 그가 일제에 부합했던 시기라고 비판을 받는 걸림돌이 되는 부담의 시기가 된다'고 밝혔다.

이상에서 보듯 이능화는 보통을 뛰어넘는 천재성을 지녔고 역사에 천착했으며 또 많은 저서를 남긴 점 등은 단재 신채호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대로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수관이 됐다는 점은 옥의 티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경무는「이능화의 한국학」(호서문화논총 제 16집)에서 '이능화는 개인적으로 우리 문헌과 사료의 자유로운 열람의 기회로 삼아 최대한 국학에 활용하고자 했다. 그는 민족문화 보존을 위해 사료열람 및 자료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한편 올바른 민족사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자 했다'고 반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능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계속 역사적인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