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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마더'

힘없는 자 희생시키는 빗나간 자식사랑

  • 웹출고시간2011.03.27 18:18:3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스산하다. 갈대밭에서 춤을 추는 마더의 표정과 주변 풍광에서 알 수 없는 기괴함이 바람과 함께 몰려온다. 영화 '마더'는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다 결국 스스로 그 벽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초상(肖像)을 독특한 심리 스릴러의 기법으로 풀어낸다. 연출자는 관객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화를 통해 분노의 살결을 섬세하게 저며 보여주고, 만져 보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내재된 분노를 자신만의 형법으로 재단하고 처단한다. 문제는 이 해결방식이 정당한 것인지의 판단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재판을 주도하는 감독은 은근슬쩍 관객들을 배심원으로 끌어들인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봉준호 감독의 마법에 걸려 어두운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고통은 고통이되, 행복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관객들은 마지막 엔딩자막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이 지독한 늪에서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현실과 꿈의 경계는 어디인가.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겨울 창밖을 보라. 자신은 안온한 거실에 있음이 행복한 적이 없었던가. 봉준호의 '마더'는 내가 마더가 아니기에 행복하다. 마더의 끔찍한 삶의 여정이 오히려 위로가 되니, 묘한 설정이다. 지독한 인간적 모성(母性)에서 출발해 본능적으로 새끼를 잃지 않으려는 어미늑대의 처절한 광기로 빠져드는 '마더'의 형상은 부조리의 밑바닥이 어딘가 가만가만 짚어보게 된다.

지방 약재상을 하는 마더 혜자(김혜자)는 홀로 지적 장애아인 아들 도준(원빈)을 키우며 산다. 그런데 뜻밖에 동네의 여고생이 피살되자 도준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만취 상태였던 도준은 그날 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여고생이 피살되던 날 밤, 여고생의 뒤를 따라 갔던 정황이 인정되고 결정적으로 사건현장에서 도준의 이름이 새겨진 골프공이 나와 범인으로 몰린다. 마더 혜자는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려 백방으로 노력해보지만, 사회의 벽은 단단하기만 하다. 힘없는 자의 몸부림은 그저 허망할 뿐이다. 아무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자, 마더는 스스로 진범을 찾아 누명을 벗겨줄 결심을 한다.

면회실에서 사건 당일의 장면을 회상하는 아들 도준의 증언은 애매모호하다. 아들 도준은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미리 예단한 상태에서 '나 안 죽였어.'라고 한 도준의 몽롱한 고백(告白)은 마더에겐 견고한 진실의 벽(壁)이 되었다. 그 벽의 균열에 또 다른 부조리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늘 삶의 양면(兩面)을 도마에 올려놓고, 저울질한다. 영화의 스토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슬쩍 자신의 시선을 끼워 넣는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를 도마에 올려놓고 관객들의 묵인 하에 봉준호 식 폭력을 휘두른다. 벤츠를 몰다 바보 도준을 친 지식층인 대학교수와 건달 진태와 도준을 통해서이다. 사회적 약자인 진태가 골프장에서 기득권층인 대학교수들(지탄 받을 만한 행동과 말로 관객들의 미움을 받음)을 마구 폭행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또한 진태는 자신이 대학교수들이 탄 벤츠의 사이드미러를 부숴놓고 결국 자신보다 약자인 바보 친구 도준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렇게 얽히고 설켜 있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비판한다. 또 다른 기득권층인 변호사, 검사, 정신병원장을 봉준호 감독은 퇴폐한 룸살롱으로 한꺼번에 쓸어 넣는다. 결국 소외계층인 마더는 룸살롱에 연출된 그들의 모습을 통해 넘을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를 체험한다. 그 불신의 벽은 결국 '이제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라고 아들에게 속삭이지만, 결국 이것은 세상을 향해 토해내는 마더의 분노였던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이 만들어낸 법과 도덕을 마더는 이미 폐기처분했다. 아들이 살인범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마더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을 갖고 범인을 추적하던 끝에 얻은 진실……아들이 진짜 범인임이 밝혀지자 마더는 또 다른 부조리의 집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던 숭고한 모성애에서 오로지 새끼를 보호하려는 한 마리 어미늑대로 변해버리고 만다. 어미의 맹목적인 사랑이 만들어낸 딜레마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카뮈는 '원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인간은 좌절을 겪게 되며 결국 부조리는 당연히 반항적 인간을 낳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들 대신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종필을 면회하는 마더의 표정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자신의 아들과 너무도 닮은 바보 종필이다. 힘없는 자에서 좌절했던 마더는 아들을 위해 또 다른 힘없는 자(바보 종필)을 이용해야 하는 마음이 황망하다. 이렇듯 복잡한 내면의 마음을 단지 표정과 눈빛으로 연주해내는 마더의 연기는 소름이 돋는다. 마더는 죄 없이 갇혀있는 고아인 종필에게 '너, 엄마 없어·'라고 묻는 그 표정이 복잡하고 아련하다. 엄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러가며 견고한 세상과 맞서지만, 그녀가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엄마조차 없는, 또 하나의 버려진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뿐이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엄마의 모성은 단단하지만, 그 모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조리 앞에 마더는 좌절한다.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했던 부조리의 전형이 결국 마더에게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성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났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관객들은 공감하기도 한다. 힘없는 자를 좌절시키고 가둬버리는 사회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가증스럽게 피워낸 또 다른 부조리와 속죄가 혼재된 마더의 오열은 영화 내내 울린다. 아마도 대사에는 없었지만, 혼자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수없이 외쳤으리라.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마더 혜자는 갈대숲에서 홀로 괴기스런 춤을 춘다.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은 그때서야 비로소 처음 장면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이상한 춤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들의 범행을 알고 있는 목격자를 살해하고, 말끔하게 증거인멸을 끝낸 뒤에 벌인 황망한 저주의 굿판인 것이다. 홀로 갈대숲에서 벌이던 굿판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 할 때, 관광버스 안에서 여러 명의 어머니들과 함께 어울려 막춤을 추는 마더 혜자의 모습은 늦가을 바람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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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