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웹출고시간2012.05.06 18:11: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판타지같은 현실

아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동물원을 통째로 사버린 아빠가 있다. 그냥 구입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물원에 온 가족이 입주해 버렸다. 아빠는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란 명성도 포기하고 과감히 동물원장으로 재취업했다. 이러한 영화 내용이 실화라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집에 들이는데도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우리네 보통의 가정으로는 선뜻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험같은 이야기는 이제는 영국 데본의 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다트무어 동물원'의 실제 이야기다.

특별한 동물들이 선사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

가족을 제외하고 아이들이 태어나 제일 처음 익히는 얼굴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닐까. 아기를 위한 그림 낱말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자라 부모와 외출할 즈음이 되면 역시 가장 먼저 가는 나들이장소도 대부분 동물원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동물원은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인간의 유희를 위해 동물들을 가두어 놓는다는 비정한 인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비현실적 생명체를 접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기에 동물원만한 곳이 없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가축이 아닌 코끼리, 기린 등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생명에 대한 신비함을 느끼고 부모와의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동물원에서는 평소 엄격했던 아빠도 잔소리가 심했던 엄마도 천진난만한 동심이 되어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엄마의 죽음 이후 목에서 피가 뿜어지는 시체와 같이 온통 그로테스크한 그림만 그리고 절도까지 저지르는 등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아들 딜런을 위해 아빠 벤자민 미가 동물원을 선택한 것은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 것이었다.

상실의 자리에서 싹트는 또 다른 사랑

삶은 하나하나 놓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맨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 너무도 커서 아빠는 엄마를 잃은 아들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급기야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아들을 데리고 그는 새로운 집을 찾게 되고 동물원 부지가 딸린 집으로 이사를 결정한다. 하지만 황폐화되어가고 재정난에 시달리는 동물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관람객을 받지 못한 채 몇몇 직원들에 의해 겨우 동물들의 목숨만 유지되고 있는 형편인 동물원에 들어온 벤자민 가족을 보며 동물원 스텝들은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벤자민은 그들에게 자신의 고통과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보여주며 헌신을 다해 동물들을 돌본다. 사육사 켈리는 그런 벤자민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온 가족이 공작새의 알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체를 바라보며 따스한 교감을 나눈다.

실제 벤자민 미 가족이 동물원을 인수하는 데만 2년, 재개장하는 데 다시 수 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니 영화보다 실화의 인물들이 벌인 분투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다채로운 동물들, 아름다운 사람들

위풍당당한 사자 솔로몬, 신장병을 앓고 있는 호랑이 스파, 탈출했다가 돌아온 북미곰 버스커 등 동물들과 인간의 대면은 긴장감과 동시에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동물원에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에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특별한 악역이 없다. 모든 인물들에게 유일한 미움을 받는 동물원 개장 검사관조차 꼼꼼한 환경 검사로 오히려 동물원 개장에 도움을 준다. 냉철하고 분별력 있으며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젊고 매력적인 사육사 캘리 포스터, 그녀는 벤자민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다가간다. 아들 딜런을 좋아하는 순박한 시골 소녀 릴리는 동물원에 식물성의 싱그러움을 더한다.

또한 어린 딸 로지의 천진하고도 어른스러운 모습은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직 달나라에 토끼가 있다고 믿는 7살짜리지만 아빠와 오빠보다도 엄마 잃은 슬픔을 의연히 극복해낸다. 어쩌면 가장 어리므로 지금 보이는 주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세상을 누릴 줄 아는 동심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이 영화에서 새롭게 발견한 인물은 벤자민 미 역의 맷 데이먼이다. '굿 윌 헌팅'과 '본'시리즈의 액션물에서는 생성되어 있지 않았던 시간의 지층이 보기 좋게 그의 얼굴을 받쳐 주고 있었다. 나이 먹는 것이 곧 늙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그윽한 관록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어 마음이 넉넉해졌다.

누군가를 돌봄은 자기 정화 작업

호랑이와 뱀과 곰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은 매우 힘들지만 그 생명체를 돌보는 과정을 통해 벤자민 가족은 엄마 잃은 상처를 자신도 모르게 치유해 나간다. 영화에서는 아내의 죽음 이후 동물원을 사게 되지만 실제 벤자민의 아내는 동물원 개장 준비 과정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하고 개장 과정에서 아내를 잃은 슬픔에 대해 실제 주인공 벤자민 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손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매일 보살펴 주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덕분에 슬픈 상황에서도 멀리 내다보고 인생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물원은 상처를 치유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드디어 동물원을 개장하기로 하고 며칠째 폭우가 내려 모두가 마음을 졸이지만, 개장 당일 하늘은 눈부신 햇살을 담아 축복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단 한 명의 관람객조차 없다. 하지만 동물원 입구에 가보니 나무가 쓰러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

동물원 식구들이 쓰러진 나무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가슴 벅찬 것이었다. 화사한 나들이옷을 입은 인파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으로 가득찬 동물원 풍경, 지역 사회 사람들과 더불어 벤자민 가족은 진정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