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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피에타'

인간 구원의 제의(祭儀)
**이 글은 '스포일러'의 기능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12.16 18:37: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부모된 자의 숙명

옛날 어느 농부가 새끼뱀 세 마리를 죽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아내가 태기가 있어 세 아들을 차례로 낳았다. 아들들은 부모의 뜻에 순종하고 효심이 지극하며 학문 또한 높아서 모두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아들들이 입신양명하여 모든 걸 이룬 순간, 첫아들이 원인모를 병으로 세상을 떴다. 곧이어 둘째 아들이, 그리고 막내아들마저 시름시름 앓다 눈을 감았다. 노부부는 정신을 놓고 실성할 지경이었다. 어찌 아니 그럴 것인가. 생때같은 아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부부의 꿈에 큰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죽인 내 자식들이 너의 아들들로 태어나 복수'를 했노라고. '자 이제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고통을 알겠느냐'고…….

영화 '피에타'를 보고나서 저절로 떠오른 우리의 전래 설화다. 영화는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김기덕이라는 제사장의 제의(祭儀)와도 같았다.

돈이 뭘까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지

김기덕의 영화는 '영화'라기보다 '영상언어', 즉 문학에 가깝다. 한 편의 잘 짜여진 단편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 삶의 현장에 놓여 있는 인물들이라면 평범하게 대처했을 상황에서 영화의 인물들은 극단적이고 과장된 형태로 대응한다. 현실 속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하고 머리 속에서만 상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강도' 또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사채업자의 사주를 받아 채무자에게 인정사정없이 돈을 받아낸다. 엄격히 말하면 돈보다 그들의 신체를 갈취하여 보험회사로부터 돈을 지급받는 인물이다. 그의 '고객'들은 주로 청계천의 영세 상인들이다. 그들의 일터는 차가운 기계들과 부속품들로 어지러운, 채 한 평도 될 것 같지 않은 을씨년스런 가게들이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또한 가슴을 할퀴는 듯한 금속성 굉음들뿐이다. 계절적 배경 또한 겨울이라서 유록빛 부드러움이나 햇빛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시청각적 불편과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따스한 목질의 느낌이나 화사한 온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채무자들은 기계를 돌려가며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다. 잔인무도한 강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팔을 잘리고 다리를 잃거나 아내를 팔기도 하며 자살로 내몰리기도 한다. 삼백만 원이 불과 몇 달 만에 눈덩이같은 이자가 붙어서 삼천만 원이 되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들의 신체는 한낱 자본주의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채무자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도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기계적인 냉혈한이다.

원시적 모성과 부성

산 닭을 한 마리 사들고 집에 돌아오던 강도는 골목길에서 놓친 닭을 주워 주는 한 여자와 만난다. 이후 여자는 강도의 집에까지 찾아와 집을 치워 주고 따스한 밥상을 차려 주며 엄마라 주장한다. 처음에는 엄마임을 증명하라며 심한 욕설과 함께 여자를 내치지만, 결국 정에 굶주려있던 강도는 무조건적인 모성애에 굴복하고 만다. 어쩌면 외롭게 살아온 그에게 여자가 친엄마인가의 여부는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로 살아있는 것들을 요리해 먹는 그의 원시적 습성 그대로 모성에 대한 갈구 또한 본능적으로 강렬했던 것이다.


강도가 울부짖듯 엄마임을 증명하라며 "내가 여기로 나왔다구? 그럼 다시 들어가도 돼?"라고 외치는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얼핏 근친상간적인 요소도 보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잔혹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였던 강도 또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은 절절한 고백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갖가지 반찬이 놓여 있는 오밀조밀한 밥상, 노릇노릇 구워놓은 장어구이, 식사하는 아들을 털실로 뜨개질하며 지켜보는 엄마의 흐뭇한 미소, 둘이 오붓하게 쇼핑하며 외식하는 즐거움,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는 이마에 얹혀지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 제아무리 천하에 잔인무도한 강도라 해도 이것들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는 엄마를 위해 옷을 사 오고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행각으로 인해 엄마에게 위해가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의 채무자에 대한 태도 또한 많이 달라진다. 한쪽 팔을 없앨 의도로 갔던 젊은 노동자가 다음 달에 아빠가 된다는 소식에 그는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아기를 위해 돈이 필요한 예비 아빠는 스스로 기계에 팔을 집어 넣는다.

인간 구원의 씻김굿

어느 순간 휴대폰으로 들려온 비명소리만 남기고 엄마가 사라진다. 누군가의 복수를 의심한 강도는 그동안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 채무자들을 찾아다니지만 어느 누구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엄마를 찾아나선 것이지만 그간의 행적을 되짚어가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 속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자신이 남편의 오른팔을 잘라버린 어느 부부는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며 부인의 트럭행상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다시 나타난 강도를 보고 부부는 겁에 질리지만 아내는 '내 트럭으로 밟아버리고 싶다'며 분노에 치를 떤다.

결국 엄마의 행방은 휴대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보고 알게 된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높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곧 떠밀리게 될 듯 '살려달라'며 애걸한다. 그 장면을 본 강도는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며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엄마는 강도의 눈앞에서 떨어져 숨이 끊어진다. 이로써 여자는 강도에게 가장 무서운 복수를 실현한 셈이다. 진정한 복수는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다.


처절한 울부짖음 끝에 강도는 전에 엄마가 말했던 대로 소나무 밑에 묻기 위해 땅을 판다. 거기에서 엄마가 평소에 짜던 스웨터를 입은 한 청년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 청년은 과거 자신의 채무자였다. 강도는 모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도는 엄마의 옆에 눕는다. 소나무 밑 구덩이에 과거의 죽음(엄마의 아들), 현재의 죽음(엄마), 미래의 죽음(강도)이 나란히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강도는 엄마의 팔을 껴안고 있다.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도 엄마의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그 얼마간의 짧고 따스했던 생이 강도에게는 삶의 전부였으리라.

아들의 스웨터를 입은 강도는 새벽같이 트럭 행상을 나서는 여자의 트럭에 자신의 몸을 묶고 길바닥에 눕는다. 트럭은 그렇듯 인생의 순교자를 매단 채 기나긴 피의 여로를 남기며 먼동이 터오는 새벽길로 나아간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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