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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순정만화'

'6천만 클릭' 강풀만화 원작…세대간 소통 충실한 교감 돋보여

  • 웹출고시간2011.05.08 18:13:1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슬픈가 하면 미소가 절로 떠오르고, 우습다가도 눈물이 찔끔 나온다. 톡톡 튀는 여고생의 재기 발랄한 풋풋함과 어눌하고 순박한 공무원 아저씨와의 순정(純情)은 관객들을 풋풋한 감성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에서 만화 한 편을 보았다. 강풀 원작의 '순정만화'였다. 프로만화가가 아닌 아마추어 만화가처럼 세련되지 않은 그림이었지만, 내용은 달랐다. 일상적 삶에서 어느 날 우연히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의 표정처럼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풀의 만화는 그야말로 '순정의 블랙홀'이었다. 원작자 강풀의 '순정만화'는 2003년 10월 24일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첫 연재를 시작한 이후 2004년 4월 7일 총 42회로 연재를 마칠 때까지 총 페이지뷰 6천만 클릭, 1일 평균 페이지뷰 2백만, 50만 리플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온라인 만화는 단편 일색이었던 당시, 강풀은 최초로 웹 장편만화인 '순정만화'를 시도하며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이다.

강풀의 '순정만화'가 다시 4년 전 류장하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관객동원에는 실패했다. 73만 명에 그쳤던 것이다. 이제 다시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흘러간 영화 '순정만화'를 우연히 만나보니 과거의 느낌과 확연히 다르게 가슴을 물컹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처음 포털 사이트에서 만난 그 신선함이 다시 밀려든 것이다. 2차원인 평면적 공간에서 느끼던 만화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만난, 3차원의 영상으로 나타난 영화 '순정만화'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만화에서 등장했던 주인공들이 다시 살아 환생한 것처럼 영화 '순정만화'는 내 앞에 생생한 현실로 나타나 잃었던 순정의 둑을 마구 허물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 출근 길, 엘리베이터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영화 '순정만화'는 그 곳에서 번뜩이는 인연을 만들어낸다. 우연히 아래층 여고생과 마주친 서른 살 평범한 공무원 연우는 '덜커덩'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리는 사고를 만난다. '혹시 어린 여학생이 겁이라도 먹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연우의 귀에 귀엽기만 한 여고생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들려온다. "에이 씨발, 조땐네!"

엘리베이터안의 풍경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고 핵심이다. 욕설을 내뱉는 여고생을 비난하기보단 따뜻한 시선(욕이 아닌 그 또래집단의 일상적 언어)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소통을 만든다. 욕이 일상 언어화된 여고생의 모습을 연우는 오히려 발랄함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물은 욕 뒤에 숨겨있는 예쁘고 순수한 여고생의 마음(아픈 아저씨를 위해 대담하게 저녁식사를 지어주는 수영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먼저 이해하니 소통이 되고 결국 배려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표현할 길 없었던 여고생들은 영화 '순정만화'를 보며 위안을 받고 환호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다른 존재 이 시대의 '아저씨 그룹'도 소녀시대가 바라보는 것처럼 세속적이고 찌든 이미지 이면에 따뜻한 순정이 있음을 표현할 수 있어 행복했을 것이다. 영화는 세대와 성별 그리고 나이를 초월하여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30살의 평범한 동사무소 공무원과 18살의 여고생과의 쉽지 않은 만남은 순수가 잉태한 작은 꿈처럼 조금씩 영글어간다.


18살 여고생의 도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교복 넥타이를 깜빡 잊은 사실을 깨달은 수영은 아까 마주쳤던 '아저씨'에게 다짜고짜 넥타이를 빌리고, 아직 엘리베이터에서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연우의 심장은 당돌한 그녀의 접근에 마구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계산이 많다. 연우와 수영이 손을 잡고 걸어오다 수영의 엄마와 마주치자 여고생 수영은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수영 엄마는 서른 살의 어른 연우에게 반대의사를 표현하자, 연우는 순순히 물러나고 만다. 여고생 수영은 연우에게 "저 어른 되는 거 별로예요. 어른 되면 비겁해지는 것 같아서요."라며 "난 아저씨가 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의미가 아프다. 사랑의 시련을 겪고 난 후, 연우가 '자신의 사랑에 대해 비겁하지 않으려' 다시 수영에게 나타났을 때, 수영은 "이제 아저씨 착하지 않기로 했어요·"라고 물으며 서른 살의 어른 연우를 반긴다.

공무원 연우와 여고생 수영과의 사랑과 함께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의 또 다른 사랑은 다분히 추상적이며 몽환적이다. 막차를 기다리는 텅 빈 지하철 역. 스물두 살의 공익요원 강숙은 방금 스쳐 지나간 긴 머리의 하경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배어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망설이던 강숙은 막차가 막 떠나려고 하는데 찰나에 도무지 탈 기색이 없는 하경을 충동적으로 손을 잡아끌어 지하철에 태운다. 그리고 나눈 그들의 대화는 뜬금없이 쿨하다. "난 스물아홉. 너는?" "스물 두… 다섯인데요!" "그래? 그냥 말 놔!" 요즈음 젊은이들은 정말 그렇게 한 번에 말을 트나?


주인공 연우와 수영의 사랑이 맑고 투명하다면, 강숙과 하경의 사랑은 몽환적이고 날이 서있다. 이제 막 만난 강숙에게 "우리 미리 헤어지자"며 알 수 없는 제안을 하는 하경이다. 하경은 잃어버린 옛 애인이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을 반복하면서 아픈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하경의 아픔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해하며 치유하려는 강숙의 캐릭터는 실익을 따지지 않는 젊은이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세대 간의 소통장치가 충실하다.

성공한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안정장치이기도 하지만 대박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영화의 중요 요소인 반전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미 다 알려진 스토리 그대로 다시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71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힘은 순전히 강풀의 '순정만화'덕분이다. 하지만 영화 '순정만화'를 독자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질 무렵인 2011년 현재 시점에서 개봉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만화 원작에서 영화로 옮겨지면서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은 만화가 갖고 있는 '순수'라는 정서였다. 영화 '순정만화'의 원작자 강풀은 "영화 주인공인 연우와 순정 그리고 강숙과 하경은 내 만화의 주인공과 같다. 하지만 조금 다른 상황, 조금은 다른 인연으로 만났을 뿐이다. 상황이 다른데 느낌이 같은 이유는 내가 순정만화를 그릴 때, 품었던 감정이 그대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순정만화'는 원작의 제목 그대로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 그리고 가장 순수한 마음의 교감을 상큼하고 풋풋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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