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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블랙 스완'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도발

  • 웹출고시간2011.06.26 17:03: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내 안의 선과 악

먼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탈리 포트만은 우선 아름다운 배우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선과 악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커다란 눈과 선이 잘 잡힌 입술에선 순수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인하고 저항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턱에 있으리라. 또렷한 이목구비를 반듯하고 강한 선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그녀의 턱을 보면 노희경 드라마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는 턱없는 여배우들로 넘쳐나서 쓸만한 배우가 없다." 한결같이 갸름한 턱선을 만들기 위해 약간만 턱이 각져도 모조리 깎아버리니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레옹'의 마틸다, '블랙 스완'의 니나 배역으로 나탈리 포트만 이외의 배우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배우가 가진 이러한 중층 이미지 때문이다.

뉴욕발레단의 무용수 니나는 어렵게 '백조의 호수' 주연에 낙점된다. 하지만 문제는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는 본인의 평소 모습과 어울리지만 사악하고 열정적인 흑조를 표현하는 것이 문제이다.

대부분의 평자들이 니나가 흑조를 표현하기 위해 성적으로 농염해지는 팜므파탈의 관능미를 거론하지만 필자가 볼 때 흑조는 결국 니나 안의 잠재된 남성성의 표출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자신들이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을 첫 장면과 엔딩에 두는데, '블랙 스완'의 처음 장면은 그리하여 니나의 심리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니나의 아니무스

첫 장면에서 춤추는 니나 뒤로 흑조의 이미지를 가진 남자가 보이지 않게 움직인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교묘히 몸을 숨기며 니나의 몸과 겹쳐지는 안무로 움직인다. 융의 심리학으로 들여 보자면, 이 남자는 니나의 아니무스(여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남성)이다. 영화에서 니나가 움직이는 생활 반경을 보면 모두 협소하고 어두운 공간들이다. 아주 좁은 골목길, 밤늦은 지하철안, 좁은 복도의 아파트 실내 등이다. 이는 아직도 어머니의 좁고 어두운 자궁 속에 있는 듯 어머니로부터 아기처럼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니나의 상황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모녀의 삶에서 아버지라는 남성으로부터의 상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니나가 흑조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성적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재이다. 발레단장과 몇 번의 의도적 성적 접촉이 있지만, 일정한 선을 결코 넘지 않는다. 이는 이성에 대한 성적 갈망이 아니라 니나 안의 '남성성'을 뒤흔드는 계기가 된다. 단장의 존재 그 자체로서 '남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단장과 함께 할 때는 늘 넓은 공간의 연습실, 환하고 커다란 광장 이 함께 하고, 이는 어머니하고의 생활공간과 대척점을 이룬다.

'나'를 넘어서


니나가 동성애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상 속에서일 뿐이다. 니나는 그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는 연약한 심성을 지녔다. 따라서 삶의 갈등과 분노는 자신의 몸을 해하는 것으로 분출된다. 등과 손의 피맺힌 상처들은 니나의 내면적 분열과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흑조의 역할에 몰입하려 애쓰던 어느 날 등의 상처에서 까만 씨앗 같은 것이 맺힌다. 손으로 뽑아보니 작은 깃털이었다. 이제 검은 깃털을 몸 안에 내재하였으니 흑조를 표현해내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흑조를 추는 장면에서 살결에 점차 흑조의 깃털이 돋아나는 것은 압권이다.

지극한 예술의 방점을 찍기 위해서는 나의 임계점을 넘어서야 한다. 인간의 신체는 하나의 개체로서 단독자이지만 정신적 자아는 여러 모습으로 분열될 수 있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의 원래 자아로서는 표출되기 어렵다. 백조가 흑조로 바뀌는 데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자아가 탄생해야 한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선과 악의 내면적 대립세계를 그리고 있는 유명한 소설 '데미안'의 문장 중 인구에 회자되는 구절이다. 니나는 자기의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환상 속에서 동성애를 경험하고 살인을 저지르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자신의 신체를 무너뜨렸다. 공연의 마지막 무대에서 자살을 택하는 역할을 위해 뛰어내린 니나의 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자 니나가 말한다.

"난 느꼈어요. 완벽함을"

새롭게 깨어난 니나가 던진 말이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작은 깃털이 화면에 흘러 다닌다. 그것은 처음에는 검은 색이기도 하고 흰 색이기도 하다. 여기서 검은 깃털이냐 흰 깃털이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를 넘어서 '또 다른 나'를 예술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 신이 주신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의 개체를 창조적으로 분열시켰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를 넘어선 육체와 정신은 깃털처럼 가볍다. 해탈된 정신은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다.

혹자는 살인과 환상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영화를 스릴러물이라고 평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또 다른 나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가는 지난한 여정이며 성장극이다. 일상에서 분열된 자아는 '정신이상자'가 되겠지만 예술(발레)에서 분열된 제 2의 자아는 '깃털'처럼 승화된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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