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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도가니'

눈을 감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

  • 웹출고시간2011.10.16 18:07:5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전 국민을 충격과 울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영화 '도가니'가 안방까지 찾아올 때를 기다릴 수 없어 이번만큼은 영화관으로 직접 나섰다.

◇장애는 곧 불행과 결핍이라는 편견

"저봐, 에비 에비, 너 계속 울면 저 사람이 잡아간다."

영문학자 고 장영희 교수가 백화점에서 갑자기 '아이 잡아가는 사람'이 되었던, 황당한 경험을 그의 칼럼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젊은 여자가 선천성 소아마비로 인해 목발을 짚은 장영희 교수를 가리키며 위와 같은 말로 우는 아이를 달래더란 이야기다.

요즘 영화 '도가니'에 대한 사회적 파장을 보면서 문득 장영희 교수의 경험담이 떠오른 것은, 무엇보다 문제의 근원은 장애에 대한 질기고도 뿌리깊은 편견이라는 점이었다. 신체적이든 지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결핍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 이것은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편견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절름발이 지성'이니 '곱사등이 정책'이니 하는 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나 동화에서 악당들은 모두 못생기거나 신체적 기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야수는 멋진 왕자님이 되어야 하고, 심봉사는 반드시 '눈을 떠야' 한다.

신체적 결함은 다만 의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다'는 속담이 있어왔듯, 우리의 장애에 대한 선입견은 오랜 '전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따라서 법제나 제도의 개선보다 장애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문제가 근절될 수 있다.


◇안개 속 터널 같은 사회

영화는 안개로부터 시작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보듯 무진은 안개의 도시다. 삶의 모순과 사건의 은폐를 상징하기 위해 감독은 실제사건의 발화지였던 광주가 아니라 안개의 도시 무진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애학원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된 인호가 차를 몰고 무진에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맞닥뜨린 것은 자욱한 안개와 긴 터널이었다. 마주 오던 트럭의 상향등에 눈부셔하던 그는 산짐승을 치어 죽이게 된다. 순한 눈을 가진 짐승이 피투성이로 널브러진 것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그가 장차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미리부터 감지할 수 있다.

학교의 분위기는 어쩐지 석연치 않다. 아이들은 눈길을 피하고 아이들 특유의 밝은 웃음이 없다. 아무리 청각장애아들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의 눈망울은 너무도 음울하다.

아이들은 마음을 닫고 미술시간에도 백지를 놓고 앉아 멍하니 있을 뿐이다. 그중 인호는 지적 장애까지 있는 유리에게 서로를 그려보자며 친근하게 다가간다. 인호가 그려준 자신의 예쁜 얼굴에 비로소 환한 웃음을 짓는 유리……. 어느 날 인호는 유리가 높은 창턱에 아슬아슬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본다. 유리를 안전하게 옮기고 인형을 쥐어주자 유리는 인호의 옷깃을 잡아 끈다. 드디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가 인호를 데려간 곳은 지하의 세탁실이었다. 사감인 윤자애 선생이 연두를 세탁기의 물 속에 집어넣으며 폭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두를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사건의 면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두는 자신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성폭행에 시달려 왔음을 밝힌다. 심지어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민수의 남동생도 교사의 성폭행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듯 기찻길에서 어린 목숨을 놓아버린다. 인호와 무진인권단체 간사 서유진은 서둘러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법정 드라마적 양상을 띠어 간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연두의 진술은 결정적 쐐기를 박는다. 교장이 유리를 성폭행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연두가 음악소리에 이끌려 교장실로 갔다고 하자, 상대편 변호사는 청각장애인의 위증임을 의기양양 강변한다. 하지만 당시 들었던 노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를 법정에서 다시 틀어준 결과, 들을 수 있음이 밝혀졌다. 청각장애는 주파수의 문제인데 고주파소리만 듣는 이도 있다고 한다. 대를 이어 청각장애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이 그러한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법정에서의 싸움이 아이들의 구체적이고도 진정성어린 진술로 불리하게 되어가자 가해자측은 인호의 은사를 이용하여 인호를 유혹한다. 거액과 함께 보장하겠다는 교수자리, 노모와 아픈 딸아이를 거느린 홀아비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갈림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뛰쳐나와 차창의 유리를 주먹으로 한풀이하듯 치는 것으로 그 유혹을 떨쳐내고 만다.

유진과 인호는 교장실에서 성폭행 장면이 들어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여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만 믿었던 검사의 배신으로 결국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만다. 그날 밤 민수는 자신을 성폭행해 왔던 박보현 교사를 찌르고 그와 함께 달려오는 기차에 목숨이 스러지고 만다.

민수의 영정을 들고 거세게 쏟아지는 물대포에 쓰러지는 인호의 모습은 주류사회의 권력에 희생되는 이 시대 약자의 자화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보다 더 참혹한 현실

몇 군데 영화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실화를 고스란히 옮겼다. 아니 오히려 실제의 사건이 더 끔찍하다. 원작자 공지영 소설가의 말에 의하면 수련회에 가서도 교사들이 아이들을 번갈아 성폭행했다고 한다. 또 관계자에 따르면 학교에서 체벌로 성추행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고 하니, 학교가 곧 야만의 도가니였던 셈이다. 이런 내용은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부분이다.

"6시간에 걸친 증인 신문 시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익히 들었지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걸 알기에…. 서점에 들렀다가 결국 구입하고 빨려들 듯 읽어버렸다. 가명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아, 그 아이구나, 그 아이구나…."

2007년 3월 12일 당시 공판검사였던 임은정 검사가 자신이 쓴 일기를 최근 공개했다. 당시 2차 재판을 맡았던 부장판사는 "양형의 적정성 판단을 떠나 이 판결로 소수 약자가 감내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받은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제도와 법의 진정성

광주 인화학교 문제에 대한 시민단체의 농성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가해자들과 한통속이었던 경찰,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했던 시청 교육청의 공무원들,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종교집단, 사법부의 내적 유착관계 등은 아이들에 대한 제2의 폭력이었다.

이제 영화가 상영됨으로써 정부와 산하 각 단체들은 도가니의 광풍으로 회오리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차원의 장애인 사회복지시설 인권침해에 대한 일제 실태 조사, 광주시교육청, 광주시, 광산구청의 대대적 감사, 학교 감사, 경찰의 전면 재수사, 또한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 투명성 및 인권 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도가니 방지법(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갑작스런 이 움직임들이 전시행정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하는 기우가 든다. 다만 모든 열정적 시도의 저변에 영화 속 연두의 손을 잡은 인호의 이 마음이 꼭 스며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네 자식보다 그 애가 더 소중하냐?"는 노모의 힐난에 인호는 이렇게 말한다.

"나, 이 손 놓으면 솔희의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요."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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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