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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26 17:14: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심신을 위무하는 만화의 따뜻함

가끔 TV에서 방영하는 '톰과 제리'를 보곤 한다. 대개 중학생 아들 녀석이 소파에 누워 낄낄거리며 보고 있을 때면 슬그머니 한쪽에 자리잡곤 하는데, 사실 그 내용보다 어린 시절 흠뻑 빠져들어 흑백TV로 보던 톰과 제리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만약 '톰과 제리'이야기가 만화가 아닌, 실제 고양이와 쥐의 세계를 다룬 다큐였다면 제작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지금까지 안방극장을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는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색채 위에, 강자가 오히려 약자의 재치에 쩔쩔매는 위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껏 편한 자세로 만화의 주인공들이 권선징악의 내용에 따라 재롱을 펼치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세파에 시달린 피곤한 심신이 따뜻한 위안을 얻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있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더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정서를 그나마 공유하고 있다는 안도감이랄까.

사실 우리 고전문학의 가장 근복적 정신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었다. 권선징악적 요소를 기본 구도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이런 우리 선인(先人)들의 정신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상업성이나 예술성의 시비로 공박의 여지는 있지만 우선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주인공의 고난에 다소 마음을 졸이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우여곡절과 갖가지 사연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 사실 냉철하게 보자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많지만,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삶의 상식이나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 들어 있다.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질서가 있고, 잔혹하고 엽기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충격적 결말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진짜 마법은 진실한 사랑

머리카락은 욕망과 자아의 상징이다. 이는 굳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서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멀지 않은 근대사에서도 단발령에 죽음으로 항거한 선비들이 있었고, 중고생들의 복장 규제에서도 두발 문제는 가장 첨예한 사안이다. 미용실들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까지 번성하고 기업화하는 것도 머리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한다.
이런 머리카락을 주인공 라푼젤은 21m가 넘을 정도로 길게 늘어뜨려 끌고 다닌다. 라푼젤에게 머리카락은 무기가 되고 생활의 도구가 되며, 결정적인 것은 젊음을 되살리고 상처를 낫게 하는 마법까지 부린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라푼젤은 또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다.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젊음을 탐하는 마녀에게 어린 시절 납치된 것.

잃어버린 딸을 못 잊어 왕과 왕비는 해마다 공주의 생일이면 수천 개의 등불을 띄워 올린다. 높은 탑에 갇힌 라푼젤에게도 등불은 꿈의 불빛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 등불을 가까이 보러 바깥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마녀 고델에게 라푼젤의 그런 꿈은 곧 자신의 소멸을 뜻하기에 결사적으로 라푼젤을 막아 나선다.

어느 날 왕실 경비대에게 쫓기던 좀도둑 플린 라이더가 우연히 탑에 들어오게 되고 라푼젤은 그를 통해 바깥 세상을 구체적으로 꿈꾼다. 둘은 숲과 도시에서 모험과 시련 속에 사랑을 키워가지만, 고델의 방해 공작으로 플린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라푼젤은 자신의 머리로 플린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는데, 플린은 자신의 생명을 자르듯 남은 힘을 간신히 모아 연인의 마법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린다. 그녀를 마녀 고델로부터 살리기 위해서였다. 라푼젤은 절망의 눈물을 흘리지만 그 떨어진 눈물 방울이 또한 플린의 상처를 치유한다. 진정한 사랑의 힘은 서로에게 생명을 나누어주게 되는 것이다. 죽어가던 사람이 어떻게 눈물 한 방울로 살아날 수 있느냐고,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눈물은 진실한 사랑의 상징성이다.

"우리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야."
왕궁의 부모 앞에서 라푼젤은 다짐하듯 연인에게 속삭인다. 마치 수많은 동화의 흔한 결말을 패러디하듯. 그것이 상투적이고 흔한 결말이면 또 어떤가. 각박한 현실에 '영원히 행복한' 판타지라도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들은 현대의 이상적 여성상을 구현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생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 여성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뮬란'이나 '포카혼타스' '인어공주' 등 모두 안일한 삶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추동해내는, 적극적이고 의지가 강한 인물들이다. 라푼젤 또한 그림 형제의 원작에서처럼 탑 안에서 우연히 왕자에게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꾸고 삶의 목표를 실행해 나갔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설화에도 이런 매력적 여성상들이 많이 있다. 바보 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주역 소서노, 중국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친 허난설헌 등 세계적 스토리텔링 이야기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라푼젤 못지 않은 애니메이션으로 개발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 본다.


◇명품 조연의 동물들

라푼젤의 유일한 친구 카멜레온 '파스칼'의 깜찍함과 왕실 경비마 '막시무스'의 표정 연기는 일품이다. 유사 이래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말이라는 동물에게 많은 빚을 져왔지만, 말은 존재 자체로도 등 위에 있는 인간을 빛나게 해준다. '라푼젤'에서 정의감과 충성심이 넘치는데다 장난스런 표정에 유머까지 곁들인 막시무스의 매력 또한 볼거리다. 라푼젤과 플린이 보트에서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등불을 바라보며 부르는 'I see the Light' 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을 정도로 영화의 음악 또한 아름답다. 과연 해리포터의 아성까지 무너뜨렸다는 명성이 헛되지 않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등불들이 하늘로 유영하는 장면만큼은 3D로 보았더라면 더욱 환상적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2억 6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어간 것인 만큼 상영관에서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했을 것 같다.

하지만 거실에서 아이들과 서로 몸을 기대고 뒹굴듯이 본 것도 나쁘지 않다. '라푼젤'의 엔드 크레딧 위로 'Somthing That I Want' 음악이 흐르니, 멋진 놀이동산에서 아이들과 하루 잘 놀다 돌아온 것 같은 달콤한 평화가 집안에 깃든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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