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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 - '라이프 오브 파이'

내 안의 용맹스런 조력자인'나'

  • 웹출고시간2013.01.20 18:23:4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호랑이 이야기

깊고 긴 겨울밤, 음률을 넣어 할아버지가 나지막이 읽으시던 책에는 유난히 호랑이가 많이 등장했다. 토끼의 꾀에 번번이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호랑이, 사람의 말을 믿고 인간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해 효성을 다하는 호랑이, 인간이 되는 단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굴에서 뛰쳐나오는 참을성 없는 호랑이 등 설화 속 호랑이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대개의 호랑이가 우습고 어리석은 존재로 희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는 호랑이가 그만큼 현실에서 범접하기 어렵고 두려운 존재라는 반증인 셈이었다.

그러나 첨단의 문명을 일군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호랑이의 위상은 옛 신화시대와는 분명 달라졌다. 인간에게 포획되어 동물원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로 떨어진 호랑이는 영락(零落)한 귀족처럼 애처로움마저 불러일으킨다.

태국의 동물원에서 호랑이서커스를 보았을 때의 씁쓸한 느낌이 다시 되살아난다. 먹이로 길들여진 수십 마리의 호랑이들이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묘기를 보여 주는 것이었는데, 그 위엄 있는 육신들의 생기 없고 틀에 박힌 몸짓은 참 보기 민망한 것이었다. 호랑이가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훈련으로 길들여진 몸짓을 하면 그에 맞춘 댄스곡을 틀어서 마치 호랑이가 자발적으로 춤을 추듯 연출한 서커스는, 다른 동물과 달리 그 대상이 호랑이였기에 어쩐지 끝까지 보고 싶지 않아서 도중에 나와 버렸다.

이렇듯 이제는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호랑이지만 만약 인간과 단독자로 마주선다면 여전히 호랑이는 두렵고 경외로운 존재로 군림한다.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 인도 소년의 정식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친척 아저씨가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깨끗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수영장 명칭을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 수영장 이름에서 빌어온 사람 이름이라니…. 아마 작명법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물이 담긴 하늘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답다. 지상과 하늘을 합친 듯한 이런 장면은 나중에 소년이 바다에서 표류하는 상황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지워버린 이안 감독의 능란한 연출법은 경탄을 자아낸다.

소년 피신은 이름이 영어 '피싱(오줌싸다)'과 발음이 비슷해서 오줌싸개라는 놀림을 받는다. 새 학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파이'라는 것을 칠판 세 개에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해 보임으로써 전설적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수학에서 파이는 단정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무한한 값을 가지는 숫자이다.

소년 파이는 이후 그의 이름처럼 진실과 환상, 믿음과 의심, 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종교 등 확실히 규명지을 수 없는 상황들을 보여주게 된다. 파이는 종교를 3개나 가지고 있다. 천주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각 종교의 어느 장점도 버리기 쉽지 않아서다. 심지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는 대학에서 유대교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사실 이들 종교는 그 연원이 모두 같으므로 파이의 이런 믿음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파이를 인터뷰하는 소설가는 '종교에 대한 의심을 해본 적은 없는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어른 파이의 대답은 이렇다. '의심은 믿음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너와 나의 공존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원에서 파이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에게 손을 내밀어 먹이를 주려다 아버지로부터 잔인한 상황을 목도해야 되는 벌을 받는다. 아버지는 철창 앞에 사슴을 묶어놓고 호랑이가 어떻게 잡아먹는가를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아버지는 파이에게 호랑이와의 낭만적 우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이 본질이고 이성인가를 가르쳐 주려 했던 것이다. 이 교훈은 훗날 그가 바다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 표류하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된다.

정부로부터의 지원이 끊겨 파이 가족이 일본 화물선에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 이민을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게 된다. 생과 사의 엇갈림은 기이한 것이어서 파이는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소년다운 호기심으로 즐기러 갑판에 나왔다가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구명보트에는 채식주의자인 가족들에게 모욕을 주었던 주방장, 선량한 불교 신자 등이 이미 타고 있었다. 그러다 풍랑이 다시 휘몰아치자 배의 생존자들은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등으로 바뀌어 있다. 이어 파이가 사람인 줄 알고 밧줄을 던져 구조한 것은 다름 아닌 호랑이였다. 밀림의 맹수답지 않게 호랑이는 수영을 꽤나 잘해서 결국 보트에 올라타고야 말았다. 먹이사슬의 위력은 이 조그만 보트의 세계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하이에나는 오랑우탄과 얼룩말을 죽이고 호랑이는 하이에나를 잡아먹었다.

파이는 보트 옆에 조그만 뗏목을 만들어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거리를 유지하며 목숨을 버텨 나간다. 그를 살아 있게 한 것은 무엇보다 보트에서 발견한, 바다에서 조난 시 생존법이 담긴 서바이벌 책이 유효했다. 책의 수칙을 지키면서 파이는 생존법을 터득해 나가고 보트에 담겨 있던 식량으로 살아 나간다. 그러나 다시 폭풍우와 풍랑이 휘몰아치고 그마저도 다 잃어버리고 만다. 굶주린 호랑이와 인간 사이에는 이제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생겨난다.

한 배 안에 공존할 수 없는 두 생명체가 바다 위 각자의 영역에서 노려보며 삶을 지탱해 나간다. 호랑이의 배가 불러야 자신의 목숨을 노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파이는 낚시로 물고기를 잡고 빗물을 받아 리처드 파커에게 먹인다. 즉 호랑이의 본능이 파이를 긴장시키고 호랑이를 돌봄으로써 결국 자신이 살게 되는 것이다.


철학적 3D의 아름다움

이 영화의 장점은 흡사 애니메이션처럼 아름다운 3D 영상을 가진 영화가 매우 철학적인 질문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다. 수백만 마리의 미어캣이 살고 있는 식인섬, 바다를 거대한 놀이공원처럼 수놓은 심야 생물의 서늘하고도 화사한 아름다움, 별이 깔린 우주인지 심야 생물이 반짝이는 바다인지 경계가 지워진 환상적 공간 등 영화 '아바타' 못지않은 영상미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어른 파이가 소설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끝나고 과연 보트 위의 파이와 함께 했던 생명체는 동물들이었는지, 인간들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관람객을 위한 열린 결말이다. 어느 쪽을 믿고 싶은 지는 자신의 자유 의지이다. 이는 이 영화의 본질이 호랑이와 소년의 단순한 생존기이거나 호랑이와 우정 운운하는 유치하고 낭만적 이야기가 아님을 말해 준다. 다만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이 영화에서 자연의 섭리이자 인생의 이치를 드러내는 상징체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파이라는 이름처럼 인류가 존속하는 한, 우리 삶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한 생의 의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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